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1

레닌그라드

by 손봉기

러시아의 제2의 도시로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별명답게 섬과 다리 그리고 러시아 특유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 곳은 과거에 그들이 존경하던 인물인 레닌의 이름을 붙인 <레닌그라드>라고 불렀다. 혁명과 예술의 중심지이자 러시아 역사의 현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부터 시작한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있는 높게 치솟은 성당의 첨탑은 122.5m로 멀리에서 보아도 매우 인상적이다. 하지만 요새에서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강 넘어 보이는 겨울궁전과 이삭 성당 등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원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을 향한 표트르의 야망으로 건설된 도시이다. 러시아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대한 황제 표트르 1세가 만든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 열강과의 경쟁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다. 그가 주목한 곳은 모스크바에서 640km 떨어진 네바강 인근이었다. 당시 네바강변은 스웨덴 땅이었으나 스웨덴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획득한 표토르 대제는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 건설은 쉽지 않았다. 늪지대 위에 세워진 이 도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러시아 민중은 자신의 옷가지에 진흙을 담아 옮기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려야 했으며 부족한 식량과 겨울철 추위로 인해 상당수 사망하였다. 그래서 푸시킨은 그의 서사시 <청동 기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표현했다.


러시아 민중의 엄청난 희생으로 탄생하게 된 이 새로운 도시는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따서 <성스런 표트르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명명하고 1712년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1703년 표토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건설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북쪽 토끼섬 지역에 흙으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지었다. 당시 전쟁 중이던 스웨덴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신 기술로 지어진 요새는 대포로 무장하였으며 요새 한가운데에 베드로와 바울을 모시는 성당을 짓고 이들의 이름을 빌려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이라 불렀다.



제정 러시아에서 일반 미사나 세례식 외에도 황제들의 장례식이 거행된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에 입장하면 표토르 1세를 비롯하여 러시아 황제와 그의 가족들의 관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예카테린부르크에 묻혀 있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유해도 1988년 이곳으로 이장하여 만나볼 수 있다.


성당을 둘러보고 149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종루 꼭대기에서 탁 트인 요새와 도시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성당을 나와서 요새 벽을 따라 산책을 하면 시원한 절경이 여행의 고단함을 한 번에 씻겨준다.



요새에서 다리를 건너면 여름 정원이다. 1704년 표토르 대제의 명령으로 지어진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로 해외에서 수입한 오크나무와 느릅나무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다. 정원은 약 100년간 귀족들만 출입이 가능해 그 혜택을 누렸으나 니콜라이 1세 때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여름 정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화려한 피의 사원이 나온다.



이삭 성당과 더불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비잔틴 양식의 피의 사원은 동화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어 테트리스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우랄과 알타이 그리고 이탈리아 등에서 가져온 20종류 이상의 원석으로 장식된, 세계 최대 규모의 모자이크와 황금 광채로 가득 찬 실내의 풍경에 압도당한다. 피의 사원은 1881년 폭탄테러로 서거한 알렉산드르 2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853년 발발해 1856년까지 이어졌던 크림전쟁에서 러시아는 오스만튀르크,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크림반도와 흑해 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배했고 전쟁 중에 사망한 니콜라이 1세에 이어 알렉산드르 2세가 러시아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전쟁에서 패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후진성을 깨달은 알렉산드르 2세는 이를 타개하고자 사회 전반에 걸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다. 그는 특히 농노제를 폐지하고 러시아에 자본주의적 발전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는 이념적 갈등을 심화시켰고 혁명주의자들은 그를 암살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881년 3월 1일 오후, 알렉산드르 2세는 예카테리나 운하 인근에서 암살자가 던진 폭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으며 곧바로 겨울 궁전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버지를 이어 황제가 된 알렉산드로 3세는 아버지가 죽은 장소에 평소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을 모델로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성당은 24년 후인 1907년 니콜라이 2세 때 완공되었으며 알렉산드로 2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피의 사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피의 사원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궁전 광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유람선이 다니는 운하와 더불어 아담한 다리 그리고 파스텔톤 러시아식 빌딩으로 운치와 낭만이 흐른다. 누구나 이곳에 있으면 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북쪽의 베니스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도시의 중심에 넓게 자리한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의 궁전 광장은 18세기에 만들어졌다. 광장 중앙에는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50m 높이의 알렉산드로프 전승 기념탑이 있다. 기념탑 위에는 십자가로 뱀을 찌르고 있는 천사의 동상이 있는데 얼굴은 알렉산드로 1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주로 군사 퍼레이드 장소로 사용된 광장은 옛 황제들의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1905년 1월 노동자들이 황제의 군대에 비참하게 짓밟히는 피의 일요일 사건과 1917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10월 혁명이 일어났던 장소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이끌던 러시아에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민중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이 빵과 전제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자 러시아 정부는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하지만 강력한 무력 진압에도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이 계속되자 니콜라이 2세는 할 수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의회를 설치하는 등 개혁을 승인한다.


그러나 계속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민중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자 결국 노동자들은 병사들과 함께 소비에트를 만들고 1917년 2월 혁명을 일으킨다. 2월 혁명 결과 황제는 퇴위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지만 임시 정부 역시 개혁에 실패하고 전쟁은 지속된다. 이때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가 10월 혁명을 일으켜 임시 정부를 붕괴하고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한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중심 국가가 붕괴되는 사건이었다.




소비에트 정부의 최고 실권자인 레닌은 우선 독일과 강화 조약을 체결해 제1차 세계 대전을 중단하고 코민테른을 결성한다. 코민테른이란 전 세계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꿈꾸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 단체로 각국의 노동 운동과 민족 운동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당시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공산화되었으며 중국 역시 모택동이 공산당을 결성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조선 공산당이 만들어졌다.


이후 주변 소비에트 정부들을 흡수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인 소련을 만든 러시아는 레닌이 죽고 최고지도자가 된 스탈린과 흐루쇼프의 지도력으로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와 경쟁하지만 1985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무너지고 지금의 러시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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