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화가들을 만나다.
트레티야코프 갤러리는 상인이자 미술 작품 수집가였던 파벨 트레티야코프가 1852년부터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서 국가에 기증하면서 국립 미술관이 되었다. 러시아 미술을 총망라한 이 곳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의 재미는 물론 러시아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8번 방으로 이동하여 키프렌스키의 작품 <푸시킨의 초상>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이 생각이 가득한 모습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머리 뒤로 살짝 비치는 후광과 오른쪽 뒤편에 보이는 뮤즈상 그리고 조지 바이런을 연상시키는 어깨에 두른 천 등을 통하여 그가 천재 시인임을 상징하고 있다.
푸시킨의 시를 보면 한 번에 써 내려간 것처럼 단순해 보이자만 그의 초고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작품의 한 줄 한 줄을 위해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는 이미지를 불과 몇 개의 단어로 독자들에게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능력은 뛰어났다. 또한 그는 섬세하고 세련된 유머감각으로 황제와 귀족들을 겨냥한 독설이 담긴 풍자시를 쓰기도 했는데 그로 인하여 몇 년간 유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푸시킨은 혁명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의 보장을 원했고 당국의 검열에 맞서 싸웠다. 그는 러시아인이 끝없이 추구해온 지향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세상에 행복이란 없다.
하지만 평안과 자유는 있다.
다음으로 10번 방에 들어서면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이 보인다. 1837년부터 1857년까지 20년에 걸쳐 그린 이 작품은 그 크기가 가로 7m, 세로 5m이다.
작품에서 광야의 고난을 끝내고 저 멀리 언덕에서 군중들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그리스도가 보인다. 언덕 아래에는 그를 향해 손을 들어 경배하고 환영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인다. 작품 중앙에 십자가를 든 세례 요한의 보이고 그의 왼쪽에는 세 명의 성자가 예수를 향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오직 고골리만 눈을 감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노예가 웃음을 보이며 예수의 구원을 기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바노프가 20년의 청춘을 바쳐 그린 작품으로 지식인과 민중을 죽음으로 내몰리는 조국의 현실에서 그들을 구원할 진리와 정의가 반드시 이 땅에 도달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16번 방으로 이동하여 바실리 푸키레프의 <원하지 않는 결혼식>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신부를 곁눈질로 쳐다보는 60대의 늙은 신랑과 20대의 우울한 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결혼식은 러시아 정교 교회에서 열리고 있으며 노인은 당시 상류층으로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다. 그 주위로 탐욕에 젖은 인물들이 결혼식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이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다. 작품의 맨 오른편에서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진 남자가 이 작품을 그린 푸키레프이다. 그는 돈과 힘에 휘둘리는 불공정한 결혼식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품에서 그는 시대를 저항하는 작가의 자화상처럼 보이기 위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제 20번 방으로 이동하여 이동파의 창시자인 크람스코이의 <미상의 여인>과 <광야의 예수>를 감상하자.
작품에서 눈 내린 넵스키 대로의 마차 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베레모와 옷을 입고 오만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붉은 립스틱과 볼터치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그녀가 상류층 인사의 정부일 거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을 그린 것으로 그녀는 고위 관료의 부인이면서도 불륜을 저지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19세기 러시아 미술계의 변혁을 가져다준 이반 크람스코이는 주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의 초상화 속에는 인간 내면의 깊은 관조가 담겨 있다. 톨스토이는 그의 그림에 반해 자신이 그의 직접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어서 <광야의 예수>를 감상하자.
아침 동이 트는 시간 바위투성이의 황무지 바위에 예수님이 앉아 있다. 그분의 주위로 살아 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돌무지 황야이다. 지난밤을 세워 기도를 한 예수님의 모습은 초체하고 피곤해 보인다. 또한 바위와 흙 투성이의 땅에 맨발로 그 스스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특히 굳게 잡은 두 손은 열렬한 기도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작품 속 예수님의 고뇌는 바로 작가의 고뇌이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러시아는 사회적 지위와 부 그리고 종교가 민중을 억압하는 시대로 그 현실을 비판하며 희망을 찾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사명임을 작가는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 고뇌를 하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25번 방으로 이동하여 시슈킨의 작품 <소나무 숲의 아침>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힘차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그 속에서 뛰노는 곰들의 모습이 보인다. 평화로운 숲 속의 아침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러시아 이동파의 창립 멤버였던 시슈킨의 작품으로 그는 주로 러시아 숲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을 그렸다.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서 탄생한 이동파는 기존의 왕과 귀족의 중심의 권위적인 미술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모든 민중들에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도시로 옮겨 다니며 전시회를 연다는 취지에서 그 단어가 탄생하였다. 미술계의 민주화 운동을 펼친 이동파 화가의 활동은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지만 러시아 미술계에서는 이들을 이단아로 취급하면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물론 정부의 지원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품 수집가이자 상인인 트레티야코프는 이들의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이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11세기 러시아 성화부터 이동파 화가들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그림을 모았으며 당시 활동 중인 화가들에게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다. 그렇게 모은 6만 점의 작품을 그는 죽으면서 모스크바 시에 기증하였으며 모스크바 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25번 방으로 이동하여 바스네초프의 <영웅들>을 감상하자.
이동파 화가인 바스네초프는 러시아의 민화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작품 속에서 러시아를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내용의 고대 서사시 <일리아 무로메츠>의 주인공인 세 명의 영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세 명의 영웅은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1 세 왕자를 섬긴 기사 트리오로 각자 재치와 용기 그리고 영적 힘을 상징한다. 특히 제일 오른쪽의 활을 든 영웅의 눈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두 명의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완전한 갑옷을 입고 광야로 나가 적을 죽이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재미있는 일은 없다.
다음은 27번 방을 이동하여 베레샤긴의 작품 < 전쟁의 결말>을 감상하자.
이동파 화가 중의 한 명인 베르샤긴은 서구에 가장 먼저 알려진 러시아 화가였다. 그는 여행을 많이 다녔으며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여러 지역에 복무하며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을 작품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에서 주로 러시아 군대의 수치와 전쟁의 참상을 그려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이 금지되는 일이 잦았다. 이 작품 역시 전쟁 후 벌판의 해골 더미로 섬뜩해 보인다. 이 작품의 부제는 아래와 같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위대한 침략자들을 기념한다
다음 28번 방으로 이동하여 수리코프의 작품 <친위병 사형 날의 아침>과 <보야르니아 모로조바>을 감상하자.
1698년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치던 표토르 대제가 군 조직 개편에 따라 친위병들의 수를 대폭 삭감하자 쫓겨난 친위병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었고 친위병들은 붉은 광장에 마련된 사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모두 사라진다. 당시 그렇게 죽어간 군인의 수만 2천 명이 넘었다.
친위병들의 처형 장면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왼쪽에 촛불을 들고 빨간 모자를 쓴 친위병의 모습과 오른쪽의 말 위에 앉아 거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는 표토르 대제의 모습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대결적 구도로 보인다. 또한 반란자를 끌고 가는 사형 집행자의 손에 들란 칼은 번뜩이며 섬찟함을 주고 있고 그 주위로 절규하는 친위병 가족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자식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다.
그러나 피터 대제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개혁에 박차를 가할 모습이며 그 옆에 서있는 외국 사신은 개혁을 반대하는 러시아인 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수리코프는 이 작품을 통해 민중과의 소통은 안중에도 없이 독선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피터 대제를 비판하고 있다.
다음 작품 < 보야르니아 모로조바>를 이어서 감상하자.
이 작품은 17세기 러시아 정교의 대분열을 보여준다.
당시 총대주교였던 니콘이 교권을 확장하려 러시아 교회의 전통적인 미사 방식을 바꾸려고 하자 전통을 중시하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반기를 들었다. 당시 교권 확장은 러시아 정교의 우두머리인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반대파에는 황제의 권력 강화에 반대하는 귀족 계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황제 중심의 신교도와 귀족 중심의 구교도가 끝까지 맞섰지만, 신교도가 승리하여 반대파를 파문하고 주동자를 화형에 처했다. 이후 이에 불만을 가진 2만 명의 구교도가 분신자살로 격렬히 저항했으며 그 정신은 수백 년 동안 도도히 흘러 마침내 황제를 몰아내는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진다.
반대파의 저항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모로조바는 황제에 맞서다 수도원에 유폐돼 삶을 마감한 역사적 인물이다. 보야르니아의 뜻은 <귀족 부인>으로, 쇠사슬에 묶인 이 귀족 여성 주위에서 일부 민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즐거워하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이 사실적이며, 하나하나 아주 세밀하게 살아 있는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수리고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30번 방으로 이동하여 레핀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과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를 감상하자.
1581년 11월 16일 광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반 뇌제는 어느 날 분노를 이기지 못해 황태자 이반의 관자놀이를 지팡이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바로 정신이 돌아온 황제의 눈에는 당혹과 후회가 가득하다.
러시아 사실주의 대가인 레핀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의 개성과 심리묘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1885년 4월 1일 작품이 처음 전시되자 당시 황제인 알렉산드르 3세가 이 작품의 전시를 금지한다. 그래서 트레티야코프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이라도 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별채를 만들어 전시하였으며 삼 개월이 지나서야 전시 금지가 해제되었다.
레핀의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의 작품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한 남자의 귀환을 그린 것으로 농노 제도의 폐지 이후 피폐해진 러시아 농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남자 주인공은 브나로드 운동(인민 속으로)을 외쳤다는 죄목으로 유배당한 후 어느 날 초췌해진 모습으로 예고 없이 집안에 들어서고 있다. 가족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그를 다정하게 맞이하기보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인간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실물 크기로 그가 그린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수많은 습작과 드로잉 과정을 통해 거쳐 그린 결과 사실적이고 사진보다 더 정확하게 개인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나오기 전에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인 <앉아 있는 악마>와 <소녀와 복숭아>를 감상하자.
먼저 32번으로 이동하여 <앉아 있는 악마>를 감상하자.
천재화가로 불리던 브루벨의 작품 <앉아 있는 악마>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러시아식 종교 그림인 이콘을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작품을 많이 남긴 그는 그는 레르몬토프의 소설 <악마>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작품에서 악마는 산등성이에 앉아서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다. 그는 세상의 악이 모두 자신의 어깨에 있음을 슬퍼하고 있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쓸쓸하고 불운한 모습이 느껴진다.
다음으로 41번 방에서 <소녀와 복숭아>를 감상하자.
러시아 인상주의의 거장인 세로프는 우아하고 감성적인 화풍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은 당시 예술가들의 공동체 마을인 아브림체보에서 철도청장의 딸인 베라를 모델로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1888년 모스크바 예술인 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내가 달성한 것은 신선함이다.
나는 실물에서 항상 느낄 수 있었지만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신선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 달 이상을 그리면서 소녀를 녹초가 되도록 그렸지만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 신선함을 유지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