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극장

백조의 호수

by 손봉기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러시아 최고의 발레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에서 하는 발레 감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 있어서 최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세계 유명 음악인들을 배출한 국립 음악원이 따로 있을 만큼 150년 전통의 예술도시로 그중 발레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 이름을 따서 지은 마린스키 극장은 고전 오페라와 발레를 상연하면서 19세기 후반 최고의 역사적인 장소로 거듭났다.



1673년에 발레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당시 발레를 처음 접한 러시아 황실은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즉시 무용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유럽의 훌륭한 안무가들을 초빙해 교육시킨 결과 러시아 발레를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발레의 시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였으나 오늘날 발레는 러시아 고전 발레를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발레 공연을 관람한다는 건 가장 러시아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감상할 작품은 너무도 유명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이다.


1877년 <백조의 호수>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상연되자 많은 전문가는 물론 대중으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연출이나 무대 장치가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당시 발레 음악을 담당한 차이콥스키는 두 번 다시 발레 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이후 <백조의 호수>는 여러 버전으로 다시 무대에 올려졌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반전은 우리가 오늘 감상할 장소인 마린스키 극장에서 일어났다.


198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그의 제자 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로 마린스키 버전이 나오자 백조의 호수는 최고의 발레로 호평받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시작했다.


마린스키 버전의 특별한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마린스키 버전부터 주인공 백조인 오데트와 오데트로 변장하여 지크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악마의 딸인 흑조 오딜로 역할을 주연 프리마 발레리나가 1인 2역으로 동시에 연기했다. 선과 악을 오가며 펼치는 이중적인 주연 발레리나의 섬세한 내면 연기에 관객들은 숨죽이며 빠져들었다. 또한 마리스키 버전부터 선보인 발레리나의 순백색 짧은 치마 <튀튀>는 정확하면서 우아한 다리 동작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마린스키 공연 이후로 오늘날까지 발레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연녹색의 호화로운 외관을 지나 마린스키 극장 내부로 들어서면 무대 위의 황금빛 인테리어와 화려한 조명이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1막이 시작하자 우아한 왈츠 음악이 흐른다. 화사한 무대 위에서 지크프리트 왕자의 성인식 축하연이 열리고 24마리의 백조가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우아하면서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축하연 도중 왕비가 왕자에게 내일 무도회에서 신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화려한 축하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돌아가고 왕자는 백조 사냥을 위해 무대에서 사라진다.


2막이 열리자 주인공인 오데트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정경의 음악과 아름다운 하프 소리에 바이올린의 소리를 배경으로 오보에가 <백조의 호수> 주제곡을 연주한다. 이어서 클라리넷의 2중주의 리드미컬한 선율에 맞추어 네 마리의 백조가 경쾌한 춤을 추는데 그 역동적이면서 우아한 춤에 관객들은 숨죽이며 빠져든다.



악마 로트바르트의 성이 보이는 호수 가에서 사냥중인 왕자 지크프리트가 춤추는 백조를 발견하자 왕자는 백조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한다. 이때 백조가 빛을 발하면서 사람으로 변한다. 사람으로 변한 오데트가 자신이 악마의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마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왕자님의 진정한 사랑뿐이라고 고백한다. 곧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사랑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무대 위 두 주인공 위로 목관악기의 묵직한 음과 하프의 맑은 소리가 어우러지고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의 아련한 선율이 무대를 황홀경으로 데려간다.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후 무도회에 왕비와 왕자가 입장하면서 3막이 시작된다.


무도회가 시작되고 6명의 신부 후보가 각국의 민속 음악인 6곡의 소곡에 맞추어 민속 무용을 선보인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이 헝가리 민속 무곡인 <차르다슈>이다. 빠르고 느린 리듬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음악에 맞추어 격렬한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몸짓에 무대는 점점 흥이 오른다. 춤을 마친 여섯 명의 신부 후보 중 왕비는 왕자에게 마음에 사람이 드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이때 팡파르가 울리면서 기사로 변장한 악마 로트바르트와 오데트로 변장한 그의 딸 오딜로가 등장한다.


오딜로를 오데트로 착각한 왕자가 오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약속하자 로트바르트는 오델로를 데리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때서야 왕자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숲으로 달려가면서 3막이 끝이 난다.


마지막 4막에서 어둠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백조들이 오데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절망에 빠진 오데트는 도망치듯 무대로 나오자 주위의 백조들은 불운한 결말을 암시하듯 모두 사라진다. 곧이어 오데트를 찾는 지크프리트가 보인다. 오보에의 선율이 쫓기듯이 연주하여 그의 긴박감을 높인다. 이어서 왕자의 청혼을 받지 못했기에 영원히 백조로 살아야 하는 오데트는 성 꼭대기에서 춤을 추다 몸을 던지고 그 뒤를 따라서 왕자도 몸을 던진다.



그 순간 호수 위를 맴돌던 악마 로트바르트가 죽어가고 악마의 성도 무너져 내린다.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에 악마의 마법이 풀린 것이다. 이윽고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난 두 연인의 모습에 맞추어 관현악이 음악이 흐르며 웅장한 대단원의 끝을 맺는다.



공연 내내 때로는 감미롭게 때로는 웅장하게 연주되는 음악에 맞추어 화려한 빛 속에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그리는 우아한 곡선에 관람자는 넋을 잃고 몰입하게 된다.



또한 맑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백조가 깃털을 가지런히 하며 목을 둥글게 돌리는 모습이나 날갯짓하는 모습 그리고 날개 끝이 파르르 떨리는 섬세한 움직임에 관람객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32회의 턴을 하는 프리마 발레리나의 혼신의 연기에 아름다움의 절정을 맛본다.


공연을 많이 접해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발레가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 훨씬 감동받기 쉽다. 발레는 모든 스토리와 감정을 오로지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발레를 감상하고 마린스키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눈에는 감미롭고 빛나는 세상만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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