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주 박물관

by 손봉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으로 약 250개의 박물관과 50개의 극장, 80개의 미술관이 있으며 한 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그래서 이 곳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00여 개의 전시실에 300여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에르미타주는 1700년대 중반 예카테리나 여제가 겨울 궁전 옆에 유럽에서 구입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작은 궁전을 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에르미타주는 러시아말로 <은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작품을 1분에 하나씩 하루 8시간씩 관람한다면 1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거대한 박물관을 효율적으로 감상하려면 먼저 하얀 대리석 벽 위로 황금 도금을 한 요르단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황실 가족들이 사용했던 방들이 줄지어 나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홀이 198번 전시실의 게오르기 홀이다.



이 곳은 로마노프 황제의 권력과 번영을 나타내는 곳으로 하얀 대리석이 좌우로 도열한 듯이 서 있고 그 한가운데에 황제가 앉는 옥좌가 빨간색의 독수리 문장 카펫을 배경으로 놓여 있다. 16종류의 나무로 구성된 바닥을 지니고 있는 이 곳에서 러시아 황실의 공식적인 행사가 열렸다.


다시 입구로 나와 204번 전시실로 이동하면 파빌리온 홀이 나온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작은 정원이 딸인 이 홀은 1850년에 만들어진 방으로 이탈리아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장식이 돋보인다.



이 방에서 가장 빛나는 전시물은 황금 공작 시계이다. 시계는 황금으로 된 나무 위에 황금으로 된 공작새와 닭 그리고 새장 속의 올빼미로 이루어져 있다. 공작은 우주를, 올빼미는 밤을, 수탉은 낮을 상징한다. 시계는 4시간마다 공작의 깃을 펴고 시간을 알려주는데 분침은 아래의 버섯 속에 숨겨져 있다. 현재는 목요일과 특별행사시에만 작동을 한다.


영국에서 제작된 이 시계는 18세기 말 러시아의 외교관이자 장군인 포템킨이 런던에서 구입하여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선물한 것으로 당시 포템킨과 예카테리나 대제는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파빌리온 방을 지나 214번 전시실로 들어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리타의 성모>가 나온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리타 마돈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지 많은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이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확신하고 있다. 작품의 예술적 수준이 너무 뛰어나서 다빈치의 추종자들이 그림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우아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나 아기 예수의 한 손에 자신의 수난을 예견하는 붉은 새가 쥐어져 있다. 특히 아기 예수의 시선은 관객을 쳐다보고 있으며 이러한 시선의 교감을 통해 관객은 그 그림의 내면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작품은 가장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보여주면서 배경의 산과 구름을 통해 원근법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다음으로 227번 전시실의 라파엘로 회랑을 감상하자.



이곳에는 라파엘로의 그림과 벽화가 가장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 1783∼1792년에 걸쳐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 곳은 라파엘로가 1516∼1518년 사이에 바티칸 궁의 회랑에 그린 프레스코화를 모사하도록 지시하여 만들어졌다. 라파엘의 성경이라 명명된 이 천정화는 성경의 주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계속해서 237 전시실로 이동하여 카라바조의 작품 <류트 연주자>를 감상하자.



카라바조는 대담한 명암과 빛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이다. <음악과 연관된 사랑과 조화>를 보여주는 이 작품 속의 젊은 연주자는 카라바조의 친구이자 이상적인 자신의 자화상이다. 그는 비스듬한 반신상으로 류트를 연주하고 있으며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입술을 반쯤 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관객들과 영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연주자 앞 책상에는 꽃과 과일 그리고 악기와 악보가 보인다. 1500년대의 곡을 담은 악보에는 다음과 같은 같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여러분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아는가



이제 네덜란드 전시실인 254 전시실로 이동하면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렘브란트 말년에 제작한 <돌아온 탕자>는 렘브란트가 젊은 시절 잘 나가는 화가였지만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뒤 비참한 자신의 심정을 성경 속 이야기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감정의 고조를 끌어내기 위해 검은색으로 칠해져 고요한 정적이 느껴진다. 그리고 여인과 노인 이 보이는 희미한 벽에서 점차 밝아지면서 화면의 주요 인물인 아버지와 탕자를 그리고 탕자의 형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술과 여자 등으로 유산을 다 써버린 후 돌아온 탕자가 수염을 기른 반 실명 상태의 아버지의 품에서 참회를 하고 있다. 황금빛의 옷을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며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온화한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는 누더기 속옷을 걸쳤으며 낡아 빠진 샌들이 벗겨진 탕자의 왼발은 상처투성이로 그의 고난을 보여준다. 탕자의 머리는 죄수처럼 삭발한 모습으로 아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탕자와 아버지 곁에서 탕자의 형은 못 마땅한 듯 부자를 노려보고 있다.



세로 185cm, 가로 203cm의 이 대형 그림 앞에 서면 무엇보다 눈부신 여인의 나체가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 여인이 바로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다나에다.


공주는 있으나 왕자가 없어 걱정을 하던 아크리시우스는 예언자를 찾아갔다가 자신이 외손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겁이 난 아크리시우스는 아직 처녀인 딸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청동 탑에 가두었다. 그러나, 우연히 다나에를 발견한 제우스가 금빛 황금비로 변장하려 방으로 스며든 뒤 다나에를 임신시켰다. 다나에는 곧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많은 화가들이 다나에와 제우스의 만남을 그림의 소재로 사용했지만 렘브란트가 그린 이 작품에서는 아직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가 보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다나에는 노파가 열어젖힌 커튼 아래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곧 다가올 사랑을 기다리면서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내면적인 떨림이 느껴진다.


렘브란트는 만남 자체보다는 만남 직전의 기다림을 묘사하면서 육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여인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밝혀진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이 그림을 렘브란트가 나중에 덧칠로 고쳤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 다나에의 얼굴 아래에는 아내 사스키아의 얼굴이 있었으며 그녀 위로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사스키아의 얼굴과 손 역시 제우스가 있는 하늘을 향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 이 작품을 렘브란트가 그릴 때 제우스를 맞이하는 다나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렸으나 아내인 사스키아가 죽자 화가는 다니에의 얼굴을 화가를 헌신적으로 돌보아주던 연인 핸드리케의 얼굴로 바꾸면서 포즈와 그림 내용 모두를 바꾸었다. 결국 이 그림에는 두 개의 시간과 두 명의 여인 그리고 두 명의 렘브란트가 공존하고 있다.


이 작품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885년 6월 15일 중년의 남자가 <다나에> 그림에 황산을 뿌리고 칼로 난자해버렸다. 그는 마이기스라는 이름의 리투아니아인으로 소련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 사건 미술관 측에서는 <다나에>를 살릴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이냐 하는 두 의견이 충돌했지만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작품을 복원하는데 무려 12년이 걸렸다.


이 훼손 사건과 복원 작업 덕분에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지금도 에르미타슈 박물관은 <다나에>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247번 방으로 이동하여 <도둑맞은 키스>를 감상하자.



프랑스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프라고나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랑스혁명 이전 귀족사회의 취형과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소녀의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와 꽃무늬 카펫 그리고 문 뒤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부인들의 모습은 귀족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의 충동적인 행동과 소녀의 당황한 얼굴, 쇼울을 잡아당기는 몸짓으로 순간의 생생한 긴장감을 우아하면서 익살스러운 시선으로 표현하였다.


에르미타주 구관을 나와 신관으로 이동하여 마티스의 작품을 감상하자.



신관 2층에 있는 마티스의 <춤>은 모스크바에 있는 세르게이 슈킨의 집을 꾸미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작품 속에서 5명의 여인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작품의 배경으로 녹색의 대지와 터키석 하늘이 수평을 이루며 수직의 사람들과 대비되고 있다. 이러한 수평과 수직의 만남 그리고 자연과 인간들의 만남에서 인간들은 춤을 통해 무한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마티스는 춤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야수파의 거장인 마티스는 역동적이고 강렬한 구도와 색 그리고 대담한 생략을 통해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붉은색의 조화>이다.



1908년에 그린 이 작품에서 바탕의 빨간색이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는 오른쪽에서 식탁을 차리는 검은색 상의를 입은 여인에게로 시선을 향하게 한다. 식탁에는 술과 과일이 놓여있고, 그 앞과 뒤로 파란색의 넝쿨무늬 장식이 빨간색 바탕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이 작품에서 흥분을 조금은 가라앉히게 하는 것이 왼쪽 위로 나있는 창문이다.


창문 밖은 초록의 자연이 담겨 있는데 자세히 보면 초록의 평원에 하얀 나무와 살색의 집이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왼쪽 아래에 의자는 소품 역할을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화>를 감상하자.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1900년대 모스크바 슈킨 대전의 응접실에 걸렸던 작품으로 마티스가 60세가 넘어서 완성한 걸작이다. 당시 마티스는 색상으로 인물과 사물에 자유로운 에너지와 감정을 담고자 했다.


마치 초등학생이 사생대회에서 그린 듯 단순하고 평면적 이 작품에서 파란색 벽을 배경으로 남성과 여성이 보인다. 두 인물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대화를 하고 있다.


여인이 앉아 있는 의자가 배경과 동일한 색이며 남성이 서 있는 바닥 역시 수평이 맞지 않으며 인체 묘사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가만히 보면 강렬하고 아름다운 청색은 공간뿐 아니라 감성조차 차갑게 만들고 있다.


또한 창문 넘어 보이는 연둣빛의 나무와 길이 남성과 여성의 갈라놓고 있다. 창 틀 난간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non(안돼)’이란 글자로 두 인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상대방에 꽂히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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