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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16. 2020

뉴욕 현대 미술관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

네덜란드의 화가 몬드리안은 1940년 예순여덟의 나이로 뉴욕에 도착했다. 반듯하게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와 마천루로 이루어진 뉴욕의 경관은 그가 꿈꾸던 도시였다. 그는 뉴욕에 도착한 첫날 <부기우기> 음악을 듣고 뉴욕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경쾌함을 나타내는 노란색 선을 사용해 빨강과 파랑 그리고 회색이 어우러지게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는 활기와 명랑성이 터질 듯 넘치고 요란한 비트와 변화무쌍한 리듬이 작품 전체에 가득하다. 이 작품이 몬드리안의 최대 걸작 <부기우기>이다. 바로 뉴욕이다.



2019년에 새 단장을 마친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는 최고 부자 도시의 미술관답게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유명한 현대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티스, 칸딘스키, 고흐, 고갱, 샤갈, 달리, 피카소, 잭슨 플럭, 쿠닝, 뒤샹 등 명장의 작품들이 놀라울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끄는 작품은 샤갈의 <나와 마을>이다.



지금까지 고흐의 작품이 가장 화려하고 인상 깊었는데 샤갈의 작품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작품에는 파랑과 빨강 그리고 초록의 대비 속에 멀리 자신의 고향을 상상하는 교회와 집들이 그려져 있다. 그 옆으로 농구를 짊어진 농부와 우유를 짜는 여인이 등장하며 아래쪽에는 꽃이 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화면 앞으로 암소의 머리와 샤갈 자신의 얼굴을 크게 그려 놓았다. 샤갈은 자신의 얼굴을 초록색을 사용하여 그리운 고향을 암시하고 있다. 초록색은 샤갈에게 그리움을 나타내는 색이다. 작품 전체에는 동화 같은 시적인 정서가 한없이 펼쳐진다.


샤갈과 함께 시적인 서정성으로 여행자를 꼼짝 못 하게 하는 작품이 루소의 <잠자는 집시>이다.



넓은 광야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보이지 않는다. 집시 여인은 만돌린 병을 곁에 둔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사자가 다가와 냄새를 맡지만 여인은 꼼짝하지 않는다.


작품 속 사자가 여인의 꿈속에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사막에 비치는 달빛이 너무 서정적이어서인지, 작품은 아름다운 꿈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환상적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그려진 시이자 시적인 대상이며 직관과 성실함이 낳은 기적이다.


다음은 고흐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을 감상한다.



이 작품은 고흐가 죽기 1년 전에 정신병을 앓고 있을 당시 그린 작품으로 그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듯 어두운 밤하늘에 강렬한 색상과 회오리치듯 꿈틀거리는 형태들이 넘쳐나고 있다. 고흐는 늘 사물자체의 색보다는 자신의 느낀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작품에서 별과 달은 노란색으로 그렸으며 밤하늘과 마을은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표현하였다.


작품 상단의 구름 아래에 4개의 별과 구름 위로 7개의 원형 별이 흩어져 빛나고 있으며 가장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가장 크고 밝은 별 안에 눈썹 모양의 달이 그려져 있다. 작품의 하단에는 하늘과 대조적으로 평온한 상태의 마을이 보이는데 마을 중앙의 교회 첨탑은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연상시킨다. 또한 작품의 왼쪽 편에는 하늘과 대지 사이에 마법의 성처럼 보이는 검은색의 거대한 사이프러스가 보인다.


서양에서는 사이프러스는 나무를 자르면 다시는 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이 작품에서 고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려 넣었다. 표현하고 하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아름다음으로 인하여 고흐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세잔의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테이블 위에 있는 오렌지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물병은 옆에서 보는 시점으로 그렸으며 오렌지들을 더 잘 보이게 하려고 탁자를 앞으로 기울여 표현하였다. 실제 탁자가 저 모습이라면 위의 오렌지와 접시는 앞으로 굴러 내렸을 것이다. 또한 세잔은 오렌지 표면의 질감과 색조 그리고 미세한 명암까지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견고한 색감과 다시점을 사용한 세잔의 오렌지는 플라스틱 오렌지처럼 완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고흐와 세잔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파의 시대를 지나면서 근대 회화는 정점에 이른다. 이후 근대 회화는 야수파와 입체파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두 사조 모두 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다. 입체파의 대표적인 화가 피카소는 세잔의 다시점의 구도에서 영감을 받아 사물을 한 가지 시점이 아닌 여러 가지 시점으로 보는 입체적 기법을 만들었다. 그는 컵을 그리면서 위에서 본 장면과 앞에서 본 장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았다.


그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감상하자.



화면의 배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로 멍한 표정을 한 다섯 여인들이 관람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인들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체형이 이상하게 표현돼 있다. 여인들의 몸은 원근법도 무시한 채 구와 원뿔 그리고 원기둥 등 기하학적인 형태로 묘사되어 있으며 여인들의 얼굴 역시 앞모습과 옆모습을 결합시켜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피카소는 세잔의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시점에서 본모습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아 표현하는 입체주의 화법을 탄생시키며 근대회화의 거장이 되었다. 피카소는 입체적인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감정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피카소가 세잔의 영향을 받아 입체파를 탄생시켰다면 마티스는 고흐의 영향을 받아 색을 사물을 표현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화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야수파를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 <붉은색의 조화>를 감상하자.



작품에서 상상의 세계처럼 사물의 모습을 무늬처럼 남겨 놓은 채 실내 공간을 붉은색으로 채워 놓았다. 작품 전체는 입체감과 음영도 없이 단순한 평면이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보면서 주제와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쇼처럼 편안하게 즐기라고 한다. 결국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는 색을 대상과 분리하여 색 자체가 화가의 감정이나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플록의작품 <넘버 31>을 감상하자. 추상주의 화가가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대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면  추상표현주의는 대상 조차 없이 순수한 추상 이미지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파를 말한다.



거대한 캔버스에 붓 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플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평면의 상태에서 캔버스 위를 걷거나 한 복판에서 서 있는 상태에서 검은 페인트를 떨어 뜨리고 붓거나 튀기면서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런 식의 행동 역시 작업의 일부였다.


그러나 난장판이 된 그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일정한 규칙과 패턴이 존재한다. 실제로 플록은 수많은 시간 동안 페인트를 뿌리며 페인트가 바닥에 닿는 흐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였다소 한다. 결국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그의 독특한 예술 표현에서 격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독자적 미술이 없었던 미국은 미술시장을 소비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예술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은 미국 미술계의 심각한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미국 예술계는 미국만의 미술을 만들어낼 화가를 찾았다. 그가 바로 잭슨 플록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미국 서부 출신으로 미국이 지향하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로 대형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 놓고 붓으로 물감을 뿌리거나 거친 붓질로 작품을 완성했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작품이 스스로 완성되게 하였다. 자동기술법에 의한 그의 작품을 액션페인팅이라고 불렀다.


화가의 열정적인 감정을 담은 액션페인팅은 결과물보다는 제작과정의 행위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 저명한 미국 비평가인 로젠버그는 이것이야 말로 미국미술이라며 그를 띄웠다. 그리고 미국 화단은 CIA까지 동원하며 잭슨 플록의 유럽 전시회를 후원하였다. 유럽 전시회 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잭슨 플록은 알코올 중독과 자동차 사고로 마흔네 살에 요절하면서 전설적인 작가가 되었다.


다음으로 미국에서 잭슨 플럭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또 다른 추상 표현주의 화가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하자.



1949년 무렵 로스코의 그림에서는 형태가 사라졌다. 그가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숭고함과 무한함이었다. 무한을 담아내기 위해 유한한 형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에서 커다란 두 개의 사각형이 보이지만 그는 사각형을 그린 것이 아니다. 사각 캔버스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무형의 형태를 그렸다. 그래서 사각형이 형태로 인식되지 않도록 테두리 부분들을 스펀지로 부드럽게 뭉개 버렸다. 결국 황홀한 색채만이 캔버스에 남았다.



로스코는 자신을 단순한 색채화가로 규정짓는 것도 거부했다.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빛이 인물들의 영혼을 표현하듯이 그는 그의 작품 속 색채가 정신적 숭고함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 작품을 그리면서 느꼈던
숭고한 종교적 경험을 체험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체험 같은 것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관람자가 빠져들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렸으며 작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도록 45c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할 것을 요구했다.


잭슨 플록과 로스코와 같이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한 것이 팝아트였다. 팝 아트의 대표적인 젊은 선구자로 리히텐 슈타인과 앤디 워홀이 있다.



고급 예술과 대중예술의 간극을 없애기 위해 리히텐슈타인은 대중들이 즐겨 찾는 만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으며 앤디 워홀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한 캠벨 수프 깡통과 마를린 먼로의 모습을 복사하면서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앤기 워홀의 <마를린 먼로>를 살펴보면, 작품에서 여러 색깔의 바탕에 다양한 버전의 마를린 먼로가 웃음을 짓고 있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에 길들여져 주체성을 잃은 우울하고 비극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모마가 자랑하는 미국 작품이 전시된 방으로 이동하여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감상하자.  



호프는 1882년 뉴욕에서 태어나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소외감이나 고독을 표현했다. <주유소>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을 본 알랭 드 보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고립에 관한 그림이다. 곧 다가올 어둠 속에서 주유소가 홀로 서 있다. 작품 화면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어둠과 공포는 안전해 보이는 주유소와 대조를 이룬다. 인간의 작은 욕망과 허영의 상징인 커피와 잡지들은 바깥의 드넓은 비인간의 세계, 이따금 곰과 여우의 발에 나뭇가지 소리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여오는 넓디넓은 숲과 대립해 서 있다. 올여름에는 손톱에 자주색을 칠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주장이 담긴, 새로 구운 커피콩과 향을 맡아보라는 기계 위의, 권유문이 왠지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보는 것 같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고독과 적막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외롭고 고요한 그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과 근원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마지막으로 미니멀리즘의 대가 저드의 <무제>를 감상하자.



미니멀리즘은 형태와 윤곽 그리고 모양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조각을 말하며 감정 또는 미술가의 흔적조차 없앤 차갑고 기계적인 형식을 의미한다.


저드의 작품은 똑같은 색과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상자를 12인치 간격으로 아무런 받침대 없이 전시해 놓았다. 저드는 최대한 사물 자체에 가까운 작품에 최소한의 미적인 개입을 하고 있다.



이후 미니멀리즘은 현대 건축이나 북유럽의 일상용품 속에 녹아들었다가 지금은 전 세계로 퍼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순하면서 질리지 않고 고급스러운 휴대폰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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