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사람들
그는 당당해 보인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우월감과 자신감으로 충만한데 이는 그의 자세에서 더욱 강조된다.
당시까지 신 외에 누구도 정면으로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모든 인간의 초상화는 비스듬한 콘트라포스터 자세로 그렸는데 당시 최고의 작품이었던 모나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면 예술은 예술가의 창조물로 신과 예술가의 위치가 같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작품에 다음과 같이 서명했다.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불멸의 색으로 지워지지 나의 모습을 그렸다.
뮌헨의 미술관 지역은 알테 피나코테크와 노이에 피나코테크 그리고 모던 피나코테크로 나누어진다. 이 중 알테 피나코테크는 옛날 미술관이라는 뜻으로 렘브란트와 루벤스를 비롯한 플랑드르 회화와 라파엘로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 그리고 뒤러를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 르네상스 회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6대 미술관인 알테 미술관에는 루벤스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 네덜란드 지방 총독으로 부임했던 선제후가 돌아오면서 외상으로 잔뜩 루벤스의 그림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중 루벤스의 <레우키포스의 딸들의 납치>를 감상하자.
작품에서 풍만한 나신의 두 여인이 구릿빛 남자들에 의해 납치당하고 있다. 여인들은 아르고스 왕 레우키포스의 딸인 힐라 에이라와 포이베이다. 그녀들의 결혼식 날 그녀들을 납치하고 있는 남자들은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플룩스이다.
웅장한 X자 구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의 중앙에 결혼을 위해 걸쳤을 황금빛 천이 바닥에 벗겨지도록 저항하는 아래쪽 여자와 붉은 천이 벗겨지고 있는 위쪽 여자 둘을 동시에 낚아채고 있는 플룩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앞으로 밤색 말에 탄 채 위쪽 여자를 끌어올리는 카스토르의 모습도 보인다. 여인들의 탄력 있는 하얀 살결이 남자들의 검은색 피부와 윤기 있는 말의 힘찬 근육과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루벤스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이 넘쳐난다. 특히 작품 왼쪽에 흥분한 상태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는 밤색 말을 잡고 있는 에로스가 보이는데 이는 두 남자들이 두 여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 납치극은 추격과 혈투 그리고 복수로 파국을 맞이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복수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형을 바라보며 아버지 제우스에게 형 대신 죽게 해달라고 플룩스가 빌자 제우스는 이들을 하늘의 별로 만들었는데 바로 <쌍둥이자리>이다.
다음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감상하자.
이 곳에 있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평생 동안 그린 90점의 자화상 중 1629년에 완성한 것으로 뮌헨에서 도제 생활을 마친 19세의 나이에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자화상들과는 달리 젊은 시절에 그린 것으로 엉클어진 머리칼에서 젊은이의 열정과 인생에 대한 호기심이 돋보인다.
다음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로코코 양식의 화가인 부세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을 감상하자.
부세의 퐁파두르 후작부인 초상화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특히 인기가 높은 이 작품에서 퐁파두르 부인은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장미꽃으로 장식한 짙은 초록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다. 손에 든 책에서 그녀의 지적 수준을 알 수 있고 방안에 놓여진 가구에서 그녀의 고급스런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권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평소 우아한 모습의 초상화를 많이 남긴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1745년 24세의 나이로 루이 15세의 공식정부가 되었으며 이후 4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약 20여년 동안 베르사유 궁정의 실세로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를 자처하며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 문화를 주도하였다.
다음으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인 무리요의 <포도와 멜론을 먹는 아이들>을 감상하자.
세비야 출신으로 17세기 황금시대를 이끈 무리요는 이 작품에서 바로크식 밝은 빛이 들어오는 가운데 허름한 행색을 한 아이들이 과일을 나눠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왼편 아이는 왼손으로 멜론 조각을 든 채 오른손으로 포도를 통째로 입에 넣고 있다. 오른편 아이는 멜론의 두 번째 조각을 먹고 있는데 이 먹은 첫 번째 조각의 껍질이 발아래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단 냄새를 맡은 파리 두 마리가 멜론의 단 속살에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가난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과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으로 이 작품이 가난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당시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열네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난 무리요는 일찍 부모를 잃고 고아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애정을 감아 자주 그렸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그가 늙어서까지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수입 대부분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비야를 비롯하여 스페인 전역에 있는 그의 성화는 스페인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으로 라파엘로의 <성 모자상>을 감상하자.
1508년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체류하던 시절에 그린 <성 모자상>은 1829년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가 구입하여 이 곳에 보관하고 있다.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는 단순한 삼각구도로 서 있지만 성모 마리아의 자애로운 표정과 아기 예수의 어른스러운 표정이 성스러움을 자아낸다. 라파엘로 특유의 화려한 색채와 우아함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로부터 이 작품이 종교화라는 사실을 깜빡 잊게 만든다.
다음은 독일 최고의 화가 뒤러의 <네 사도>를 감상하자.
1526년 뒤러가 인생의 말년에 그린 이 작품은 개성 있는 네 명의 사도를 보여준다. 작품 속 가장 왼쪽에 보이는 인물은 신약성서의 저자인 요한이며 바로 옆에 예수의 첫 번째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보인다. 그는 예수에게서 받은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다. 오른쪽 작품에는 검은색 옷을 입고 그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는 바울과 신약성서의 제자인 마가가 있다. 뒤러는 청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남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네 가지 감정인 충동과 신중 그리고 열정과 근심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화가답게 뒤러는 종교화임에도 불구하고 사도의 인간적인 개성을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 불필요한 장식이나 사소한 디테일을 생략하고 다른 성화에서 자주 보이는 후광도 넣지 않았다. 뒤러는 이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젊었을 때 나는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단순함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뒤러의 자화상을 감상하자.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이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거장들이 있었다. 이러한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독일 출신 화가가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뒤러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자화상 때문이다. 그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처음으로 자화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16세기 당시 화가는 석공이나 구두 만드는 사람들과 비슷한 화공으로 대접받았지만 뒤러는 이를 거부하며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예술가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엄격함과 치밀함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북유럽 화풍의 작품에서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재운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부드럽고 풍만한 인체 표현이 눈에 띈다. 또한 기존의 자화상들과는 정면을 응시하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의 자화상에서 유독 길고 가느다란 그의 오른손이 눈에 띈다. 이는 세상을 구원하고 복을 주는 그리스도의 손 모양과 닮았다. 그에게서 신처럼 자신 역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임을 표현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로 우울하고 아픈 시기를 보낸 우리는 새해에 세상에 하나뿐인 각자의 자존감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해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출신의 나는
2021년 불멸의 색으로 지워지지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