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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an 04. 2021

베를린 여행

통일 독일의 상징

프로이센 제국의 위상을 자랑하기 위해 세워진 브란덴부르크 문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부터 동서 베를린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하였으나 1989년 10만여 명의 인파가 이 곳에 모인 가운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현재는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되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어처구니 없게도 동독 정치국 대변인으로 막 임명된 귄터 샤보브스키가 새로 바뀐 여행법에 대한 설명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기자회견을 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기자가 물었다.


서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나요?
원하는 곳이면 아무 데나 갈 수 있습니다.
그 법은 언제부터 발효됩니까?
지금 이 시간부터입니다.


당시 그는 개정 여행법을 잘 몰랐다. 동독 정부의 여행자유화조치는 몇 달간에 걸친 시위에 대한 임기응변의 조치로 과거와 다른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었다. 굳이 새로운 것이 있다면 여권 발급기간을 단축하는 정도였으며 시행 시기도 다음 날이었다. 그런데 대변인이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TV 카메라 앞에서 지금 당장 여행자유화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중앙에 보이는 그의 발언이 TV로 방영되기 무섭게 수많은 동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다. 너무 많은 주민들이 달려오자 국경수비대도 시위대를 막지 못했다. 일부 흥분한 사람들은 도끼와 망치로 장벽을 부쉈다. 그들은 마치 둑이 처진 것처럼 국경 아닌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건너갔고 그날 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물론 이러한 해프닝으로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할 수 없다. 그전에 동독의 경제적 파산상태와 여행자유화를 요구하는 동독인들의 격렬한 시위 그리고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한 소련의 붕괴가 함께 작용했다. 어쨌든 실제 독일 통일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부터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가 이를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1990년 10월 2일 동독 의회는 독일 통일을 선언한 후 스스로 해산하고 다음날인 11월 3일 동독의 서독 편입을 공식 발효하면서 통일이 되었다. 이후 말실수를 한 정치국 대변인 샤보브스키는 1995년 1월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 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3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2015년 11월 1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조금 걸어가면 떨어진 당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 나타난다. 장벽 아래 서면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된 조국이 생각나며 가슴이 물밀듯 먹먹해진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내로 조금 내려오면 공원 옆으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나온다.



이 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사망한 1,600 만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2711개의 다양한 크기의 비석이 있다. 입구에 보이는 낮은 비석들을 지나 중앙으로 들어가면 키를 훨씬 넘는 비석들이 상당한 압박감을 자아내며 여행자에게 유대인들의 두려움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관람을 마치고 공원 안으로 향하는데 비석처럼 묵직한 돌덩이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공원에 들어서서 조금만 걸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장이 나온다. 불사조를 상징하는 황금색 패널로 장식한 공연장의 외관은 다른 공연장과는 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이며 세련되어 보인다. 실내로 들어가면 V자형 콘크리트 기둥이 2층 객석을 떠받치면서 발코니를 이루고 있는 로비가 이채롭다. 알렉산더 카마로가 디자인한 원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길을 끄는 로비의 설계는 처음 방문한 관객이라도 알파벳 글씨만 따라 계단을 오르면 금방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면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객석이 음악을 중심에 두고 배치되어 있는데 어디까지가 무대이고 어디까지가 객석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공연장은 객석의 위치에 따라 듣는 음향의 편차가 없게 설계되어 10유로의 가장 싼 좌석에서도 100유로가 넘는 R석 못지않은 풍부하고 명확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 연주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공원을 나서면 포츠담 광장이 나온다.



과거 분단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베를린 장벽의 흔적들을 함께 보존해 놓은 포츠담 광장은 2차 세계대전이후 폐허였으나 통일 이후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이 곳에 후지산을 닮은 커다란 돔 지붕이 있는 소니센터가 있다. 센터에는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영화관 등이 입점해 있어 쇼핑과 여유를 즐기는 베를린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특히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으로 방문자들에게 놀라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음은 테러의 포토그래피 박물관을 방문한다.



테러의 포토그래피 박물관은 나치 독일 시절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본부 자리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게슈타포와 나치 독일 시절의 만행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옆에는 베를린 장벽과 그 아래 옛 게슈타포 본부 건물의 벽이 보존되어 전시하다. 벽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찰리 체크포인트로 이동하자.



이곳은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으로 우리로 치면 판문점과 같은 곳이다.

1961년에 소련군과 미군의 탱크가 배치되어 일촉측발의 위기사건이 있었던 이곳은 자유를 찾는 수 많은 동독인들의 탈출과 실패로 인한 죽음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후 이곳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포함한 서구의 주요 정치 인사들의 방문 등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제 지하철을 이용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로 이동한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1.3km의 벽화 갤러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이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세계 21개국 118명의 전 세계 화가들이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자 이곳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의 낙서로 인해 벽화들은 더욱 많은 다양성과 자유를 획득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러시아 화가인 드미트리 브루벨위의 <형제의 키스>이다. 이 작품은 동독과 소련의 두 대표가 실제 입을 맞춘 장면을 보여주며 두 공산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사랑이라고 비꼬는 작품이다.


이스트 갤러리 옆에는 슈프레 강을 따라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후 마지막 여정지인 알렉산더 광장으로 이동한다.



베를린 동쪽의 대표적인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는 우리나라의 남산타워와 비슷한 텔레비전 송신탑도 자리하고 있다. 이 TV 타워에 올라 바라보는 베를린의 야경은 환상적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바에서 가벼운 맥주나 와인을 한잔하면서 화려하면서도 아픈 역사를 간직한 베를린 시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70년이 넘게 갈라진 조국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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