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소리를 담다.
체코가 잘 생긴 남자의 뒷모습 같다면 뮌헨은 세미 정장을 한 이지적인 남자의 모습이다. 뮌헨의 거리는 이지적인 남자의 모습처럼 언제나 깨끗하고 기품이 넘친다. 뮌헨에서 가장 이지적인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면 렌바흐 하우스로 가야 한다. 렌바흐 하우스는 19세기 말에 활약한 화가 프란츠 폰 렌바흐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아틀리에에 지어진 미술관으로 여러 차례 문을 닫았다가 1957년 여성 화가 가브리엘 뮌터가 칸딘스키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면서 본격적인 미술관이 되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덴마크 출신의 설치작가인 올라프 엘리아슨의 작품인 유리로 만든 거대한 회오리 작품이 천장을 향해 뻗어 있다. 짙은 노란색과 하얀색으로 구성된 미술관의 실내공간이 회오리의 반짝거리는 단면에 파편적으로 담겨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세상의 여러 가지 이면을 보여준다.
렌바흐 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가브리엘 뮌터의 초상>이다.
독일의 표현주의 여성화가인 가브리엘 뮌터는 베를린에서 태어나 1901년 뮌헨에 정착하였으며 이듬해 칸딘스키를 만났다. 사제지간이었던 둘의 관계는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으며 유부남이었던 칸딘스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헤어질 때 결혼을 약속하며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그가 다른 여인과 재혼하게 된다. 깊은 충격을 받은 그녀는 40여 년간 혼자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칸딘스키의 작품을 나치가 몰수하기 전에 지하실 깊이 숨겨두었다가 나치가 물러난 후 이곳에 전시하여 오늘날 렌바흐 하우스를 만들었다.
렌바흐 하우스에서 다음으로 만날 작품은 프란츠 마르크의 <청마>이다.
프란츠 마르크는 동물을 사랑하였으며 특히 말을 좋아해서 자주 그렸는데 이전의 화가들과는 다른 식으로 그렸다. 동물들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 마르크는 동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색으로 그가 느끼는 대로 그렸다. 작품에서 배경에 보이는 노란색은 부드러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붉은색은 열정을 상징한다. 또한 천상의 색으로 표현한 푸른색의 말은 땅보다 하늘에 가까운 존재로 보인다. 마르크는 평소 동물이 사람보다 순수하여 천국에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후 그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느끼는 대로 그린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으며 칸딘스키와 더불어 청기사파를 만들었다.
이제 렌바흐 하우스에서 가장 유명한 칸딘스키의 작품을 감상하자. 이곳에는 칸딘스키가 추상의 길로 들어가기 전의 작품부터 완전히 추상의 길로 들어서서 완성한 대작까지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추상의 길로 들어서기 전의 작품인 <말 위의 연인>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말을 타고 가는 젊은 남녀가 보인다. 남녀는 금방 결혼식이라도 마친 듯 러시아 전통의상과 머리 장식을 하고 있으며 말위를 덮은 옷감 역시 다양한 색채와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남녀의 머리 위로 자작나무가 쏟아질 듯 반짝거리고 그 뒤로 양파 모양의 머리를 한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과 첨탑이 성안에 보인다. 본격적인 추상으로 들어서기 전의 이 작품에서 형태는 보이지만 형태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형태 그 자체가 색채와 어우러져 화가의 대상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칸딘스키는 1886년 20세에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배웠으며 이후 교수가 되었다. 안정된 생활을 하던 칸딘스키는 189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건초더미>에서 형태와는 상관없이 오직 색감만으로 화가의 감정을 전달하는 인상주의 스타일에 감동한 칸딘스키는 많은 고민 끝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30세의 나이에 독일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사건으로 추상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08년 어느 날, 화실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표현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 폭의 그림과 마주쳤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면은 오직 색채의 찬란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이젤 옆에 거꾸로 세워놓은 나의 그림이었다.
이후 그는 회화를 대상의 형태나 색에서 벗어나는 추상화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음악이 보이지 않는 소리를 조합하여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미술 역시 음악처럼 대상의 재현이 아닌 추상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인상 3>이다.
1911년 1월 1일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연주회에 참석하여 <현악 4중주>와 <3개의 피아노 소품>을 듣고 감동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감동을 표현한 <인상 3>을 발표한다. 작품의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점차 번지는 노란색은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검은색과 중앙에서 만난다. 피아노 앞에는 피아니스트가 앉아 있으며 그 뒤에는 몇몇 청중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리고 빨간색과 흰색 기둥이 여기에 리듬감을 더하고 있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서 노란색은 고통스러운 자극을, 검은색은 미래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침묵의 소리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후로 칸딘스키는 점점 색채와 형태의 내적 구성에 주목하는 추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것의 절정체가 다음에 감상할 작품인 <노랑 빨강 파랑>이다.
이 작품에서 색의 3원 색인 노랑과 빨강 그리고 파랑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으로 된 점과 선이 보인다. 그리고 원형으로 된 무늬들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화면의 왼쪽은 직선으로 사람의 얼굴을 노랑으로 표현하였으며 화면의 오른쪽은 자유로운 곡선들과 파란색의 원이 보인다. 또한 화면의 중심에는 빨강을 배치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 칸딘스키는 곡선과 직선 그리고 면과 색채를 단순히 배열한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화면에 보이는 음악적 부호를 가볍게 춤추는 것처럼 표현했다.
음악이 우리에게 다양한 감동을 주듯이 칸딘스키는 색채나 형태를 통해서도 음악처럼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랑은 높은음을 보여주고 파란색은 낮은음을 표현하며 초록색은 바이올린의 음색을, 붉은색은 북소리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작품을 보면 그의 작품이 마치 음악을 듣는듯한 리듬감과 울림을 준다.
칸딘스키는 색과 형태가 주는 회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색과 형태 안에 담긴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회화의 목표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화가는 자신이 체득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받을 수 있다. 화가의 개성적인 아름다움이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울린다면 칸딘스키나 고흐의 작품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렌바흐 하우스를 나와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자 이지적인 남자의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는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지하철역 안 모든 벽면이 칸딘스키의 작품과 여러 명작들로 장식되어 있다. 여행자는 한적한 지하털 역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이지적인 남자가 주는 선물을 가슴에 두고두고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