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봉기 Nov 21. 2020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3

유럽과 미국 회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2층으로 이동하여 유럽회화 및 미국 회화를 감상할 차례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유럽의 중세 회화부터 르네상스와 인상파를 거쳐 현대회화까지 방대한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회화는 앞서 뉴욕 현대 미술관 편에서 살펴보았으니 여기서는 중세시대부터 후기 인상파의 작품까지 시대별로 한 작품씩만 감상하자.  


유럽회화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작품은 베르린기에로의 <성모자>이다. 회화가 그 자체로 예술로 인정받는 것은 중세시대를 지나서 르네상스 시대부터이다.



신 중심의 중세시대 회화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성경 속 이야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회화로 <성모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3세기 소박하고 경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아기 예수의 손은 축복을 내리는 자세로 권위를 상징하고 있으며 왼손의 두루마리는 성경의 말씀을 상징한다. 또한 성모의 양 어깨에 수 놓인 별은 그녀가 동정녀임을 나타낸다. 예수와 성모 위로 그들이 성자임을 나타내는 둥근 후광이 보인다.  


다음으로 신 중심의 중세시대 말에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조토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감상하자.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은 중세시대의 상징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어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실재감을 높였으며 중세시대에 보이지 않았던 인간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화면 중앙에 바위산과 마구간을 합쳐 놓은 듯한 장소를 배경으로 막 출산을 마친 성모가 누워있으며 그 주위로 동방 박사들과 목동들이 각각 천사에 이끌려 예수에 경배하고 있다. 동방 박사는 권력의 상징인 왕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 있다. 그 옆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손을 모은 자세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예수에게 바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신성을 그리고 몰약은 죽음을 통한 희생을 뜻한다.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로 알려진 조토는 이 작품에서 최초로 성경의 이야기를 기존의 상징적인 모습이 아니라 실제 생활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또한 그는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이용해 그림에 깊이와 거리감은 물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조토가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로 인정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처음으로 무표정한 인물들이 가로로 나열되어 있었던 기존 회화에서 벗어나 작품 속 인물들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왼편 하단에 보이는 양과 염소도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술에 최초로 인간성을 불어넣은 조토는 평생 거장으로 칭송받았으며 그 이전의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명성과 부를 얻었다.


다음으로 본격적인 인간증심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인 피터 브뤼겔의 <추수하는 사람들>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한 무리의 농부들이 나무 그늘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먹는 음식은 기껏해야 죽과 빵 한 조각이다. 한 농부는 피곤하진 그냥 대자로 드러누워 자고 있다. 또 다른 농부들은 밀을 베고 짚단을 옮기는 등 여름의 무더운 태양 빛 아래서 힘들게 일하고 있다. 빈 물 항아리를 들고 밀밭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는 곧 지쳐 쓰러질 듯하다.


<계절> 연작 가운데 하나인  브뤼겔의 작품에서 더 이상 중세의 상징과 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신이 아닌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는 궁핍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의 투박하고 끈질긴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브뤼겔의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자연과 풍경이다. 브뤼겔은 그 특유의 뛰어난 사실성과 놀라운 감성 그리고 숙련된 빛의 사용을 통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음 감상할 작품은 17세기 유럽을 지배한 절대 왕정과 종교 세력을 위해 그려진 바로크 시대의 작품으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작품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촛불만 켜져 있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촛불이 가르는 명암 때문에 촛불을 응시하는 마리아의 시선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마리아의 무릎에는 해골이 보이며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두 손을 해골 위에 두고 있다. 마리아가 해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녀 자신이 지금 내면을 응시하면서 믿음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해골로 상징되는 죽음을 넘어서서 내면의 눈으로 촛불이 가리키는 영혼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응시하고 있다.


갈릴리 호수 연안에 위치한 막달라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자신에게 붙어있던 7마리의 귀신을 쫓아준 예수에게 감사하여 그를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생존을 위해 몸을 팔다가 바리새인에게 잡혀 죽을 뻔하였으나 예수가 나타나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고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도망갔으며 마리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된 그녀는 예수가 체포되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예수를 부인하고 달아나는 상황에서도 예수의 곁을 지켰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후 삼 일이 되는 날 그녀는 예수의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찾아갔다. 그때 예수가 부활하였다. 그녀는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라고 불렀을 때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만한 사랑의 힘을 느꼈다. 이후 예수가 승천하자 그녀는 죽을 때까지 사막에서 고행의 삶을 살았다.


다음은 왕중심의 바로크 시대에 귀족 중심의 우아한 로코코 시대의 작품을 남긴 부셰의 <비너스의 몸치장>을 감상하자.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예술문화 후원을 통해서 베르사유를 유럽 예술의 수도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 유명한 작품은 그녀가 파리 근처에 있는 그녀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인 푸티들로 둘러싸인 비너스이자 퐁파드르 부안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채 한 팔을 괴고 침대에 앉아 푸티들의 도움을 받아 한창 단장 중이다. 그녀의 침실은 벨벳 커튼과 비단 침구로 치장되어 있으며 진주와 리본 그리고 금그릇과 은쟁반 같은 호화로운 장신구들이 꽃들과 함께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배경에 보이는 대리석 기둥 역시 그녀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준다.


작품 속 비너스는 한없이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창백한 그녀의 피부만큼이나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다. 이는 비너스의 신성한 사랑의 의미보다는 로코코 시대에 추구했던 오직 아름다움과 즐거움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비너스로 분한 퐁파두르 부인의 매혹적인 자태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려진 이 작품에서 부셰의 화사한 색채와 감각적인 표현 그리고 풍부한 세부묘사가 인상적이다.  


다음은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프랑스혁명의 시대에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작품을 감상하자. 이성에 바탕을 둔 신고전주의 양식은 분명한 주제의식과 고대 그리스의 비례와 대칭을 규범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작품인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감상하자.  



이 작품은 1787년 프랑스혁명 2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프랑스혁명을 고취하는데 가장 좋은 소재였다.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오른손은 독배를 잡으려 하고 왼손은 하늘을 가리키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진실을 설교하고 있다. 화면 안의 빛은 소크라테스를 비추어 그의 모습을 더욱 신성시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이 무르익은 고대 그리스에서 당신이 진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교육받은 것이나 책에서 본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고민해서 내린 답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정답보다는 내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문답을 통한 무지에 대한 자각은 당시 많은 젊은이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기득권과 관습에 빠진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를 두려워했다. 그가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리를 빼앗아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선동죄로 감옥에 가두었으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시 상황을 보면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망명가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독약을 마셨다. 그는 자신이 도망을 간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이야기 한 철학들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라면 죽음마저 자신의 진실을 위해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통하여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다음은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근대회화의 출발점이었던 인상파의 작품을 감상하자. 이번에 감상할 작품은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모네의 <생 타틀레스의 테라스>이다.



이 작품은 1867년 프랑스 피서지에서 모네가 보름간 머물면서 그린 것으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버지 아돌프이며 그 옆의 하얀 우산을 쓰고 있는 여인은 숙모이다. 또한 테라스에 서 있는 여성은 사촌인 잔 마그리트 르카 드로이며 그 옆은 그녀의 남편이다.


작품에서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의 미묘한 균형감각과 깃발로 인해 시점이 위로 향하는 절묘한 구도가 돋보인다. 또한 햇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는 순간을 모네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기차와 물감 그리고 카메라의 발명 때문이었다. 특히 카메라의 발명으로 화가는 더 이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카메라가 담을 수 없는 자신의 느낌과 순간을 화폭에 담아야 했으며 이는 휴대가 가능한 물감과 기차를 이용해 야외로 나아가 보다 생동감이 넘치는 빛의 물결을 그리는 인상파를 탄생시켰다. 작품에서 강렬한 햇살을 다루는 모네의 붓놀림은 형태가 분명하지 않지만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생동감이 넘치면서 빛나는 꽃을 탄생시켰다.


다음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인 고흐의 <자화상>을 감상하자.



불꽃같은 긴 터치의 배경위에 야성적인 한 사내가 있다. 부릅뜬 눈과 꼭 다문 입술 그리고 움푹 밴 볼과 붉은 수염에서 긴장감과 비장함이 보인다. 눈은 초점을 잃었지만 그의 눈초리에서 격렬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는 강박적이며 병적인 마음과 정상적인 마음의 경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경계에서 한 발 짝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는 또 다른 자신과의 싸움에 용맹하게 돌진한다. 그 싸움의 무기는 색이었다.


모델을 살 돈이 없어서 그리고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고흐는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화가처럼 색을 사물을 재현하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색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 특유의 긴 터치와 불꽃같이 타오르는 색으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사물을 그리는 이전의 작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현대회화의 길을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인 작가 사전트의 작품 <마담 X>를 감상하자.



루이지애나 태생의 파리 명사인 코트로는 그녀의 기품이 넘치는 있는 외모로 유명하였다. 사전트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그녀의 초상을 그려 전시하였다. 그는 그녀와 합의하여 관람자의 눈에 잘 띄도록 하기 위해 대담하게 그녀의 어깨끈을 흘러내린 것처럼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1884년도 파리 미술 전람회에서 퇴폐적이라며 비웃음을 샀다.


당시 비너스의 누드화는 아무 말 없이 보던 사람들이 어깨끈 하나 가지고 왜 그랬을까 싶지만 상류층 부인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사실적인 배경 속에서 살짝 흘러내려간 어깨끈이 신화적인 배경 속의 노골적인 나체화보다 더 에로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시회가 끝난 후 사전트는 어깨 끈을 다시 칠한 다음 초상화를 들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돌아와야 했으며 코트라는 숨어 지내야 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메트로폴리탄에 이 초상화를 팔 당시 그는 모델 이름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만든 작품 중 최고입니다.



마담 X 초상화를 보면 고트로 부인은 전형적 미녀는 아니다. 코도 좀 큰 편이고 피부는 화사하게 하얀 것이 아니라 창백하게 하얗다. 하지만 그녀는 화사해 보이려고 애쓰는 대신 옅은 보라색 파우더를 사용해 창백함을 강조하였다. 보석 끈이 달린 검은 벨벳으로 만들어진 드레스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당장 내일이라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고 나가도 좋을 만큼 현대적이다. 또한 도발적인 표현으로 당대에는 물의를 일으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담함이 결코 우아함을 손상시키지 않았으며 요란하거나 천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고트로 부인의 시대를 앞서가는 미적 감각이 사전트를 매혹시켰으며 사전트 역시 이 초상화에서 그 매력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사전트는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의 매력을 정확히 포착해 활달한 필치로 그 매력을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살려 표현해 냈다. 이후 이 작품은 우아함과 관능미 그리고 파격을 조화시키려고 애쓰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크리스찬 디올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그의 2008년 봄 여름 파리 컬렉션이 마담 X 에게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