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도시
괴레메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추히사르는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지형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계곡이다.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갖가지 독특한 형상을 갖게 된 이곳의 바위들은 낙타와 오리 그리고 나폴레옹의 모자로 재탄생해 여행자들의 포토 포인트로 사랑받고 있지만 비잔틴제국 당시에는 무슬림 침입에 대항하는 기독교인들의 요새였다. 그래서 우치히사르의 바위산 내부에는 터널과 동굴이 벌집처럼 연결돼 있다.
과거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던 동굴은 현재 집과 식당 그리고 기념품 가게가 들어서 있으며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주변 계곡은 물론 괴레메와 아바노스 그 기고 에르지예스 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추히사르에서 나와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데린쿠유로 향한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히타이트 시대 때 만들어졌으며 로마제국 시대에 종교박해를 피해 온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이곳은 20층에 달하는 대규모의 지하도시로 최대 3만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8층까지 개방하고 있는데 머리를 숙여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동굴 안에 주거지로 사용하였던 방이나 부엌 그리고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예배당 , 신학교, 지하 매장지 등이 나온다. 또한 지하도시 곳곳에 80m의 깊이의 우물과 바깥의 공기를 빨아 당기는 52개의 통풍구가 눈에 띈다. 시험 삼아 가이드가 천장 구멍에 라이터를 켜니 불꽃이 한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 통풍구가 아직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하도시의 곳곳엔 두께 60 cm, 지름 170 cm의 둥근 돌문을 설치해 두었으며 긴급 상황 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이어져 있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면서도 그 규모와 존재 자체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데린쿠유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웅장한 으흘라라 협곡이 나온다.
으흘라라 협곡은 카파도키아 남쪽의 엘지에스 산의 수차례 분화에 의한 화성암이 침식된 16km 길이의 골짜기로 협곡을 따라 멜렌디즈 천이 흐르고 있다.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으며 협곡 안에 동굴을 만들면 겉에서 잘 눈에 띄지 않아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군인들의 탄압을 피해 이곳에 주거지를 형성하였으며 현재에도 이곳에는 수백 개의 색다른 교회들이 화성암을 뚫고 존재하고 있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는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한 때 8만여 명이 살았다는 으흘라라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하다 보면 거주지와 교회로 사용되었던 수많은 동굴들을 만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동굴 교회는 향기로운 교회이다.
동굴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위 벽에는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왼쪽 벽에서 수태 고지와 예수의 탄생 그리고 동방 박사의 숭배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오른쪽 벽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배신 그리고 십자가 처형을 볼 수 있다. 또한 천장에서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과 함께 큰 그리스 십자가를 볼 수 있으며 그 아래로 사도들이 보인다.
다음으로 테라스가 있는 교회가 나타나는데 입구 부분에 기둥모양의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으며 교회 안은 정교한 디테일과 디자인으로 표현된 프레스코 화로 덮여 있다.
으흘라라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에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셀리메 수도원이 있다.
셀리메 수도원은 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군사 중심지이자 성직자들을 위한 최고의 신학교였다. 이 곳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계곡과 주변 마을의 풍경은 압권이다.
이제 일몰을 보기 위해 괴레메 마을에서 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붉은 계곡 로즈밸리로 이동하자. 로즈밸리가 분홍색을 띠는 이유는 이곳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계곡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오솔길을 따라 트레킹을 한 후 언덕에 오르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계곡 위로 저녁노을이 드리워지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이 더욱 붉게 물들어 마치 타들어가는 가는 모습이 여행자의 마음을 붉게 달군다.
저녁 늦게까지 뒤척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으로 열기구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소지품을 챙기고 숙소를 나와 기다리던 차를 타고 열기구가 있는 들판으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마음이 설렌다.
열기구를 타는 곳에 도착하니 들판 여기저기서 열기구 풍선이 부풀려지고 있었다. 열기구의 뜨거운 공기를 만드는 가스버너가 불을 뿜자 어둠 속에서 열기구 풍선이 선명하게 빛났다. 잠시 후 가스버너 불로 공기가 달궈지면서 열기구가 들판 이곳저곳에서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일어서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내가 탄 정원 16명의 거대한 열기구 역시 풍선이 뜨거운 공기로 달구어지자 지상에서 둥실 떠오른다. 어찌된 일인지 바구니가 땅에서 벗어나는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버너를 보고 있다가 밑을 보니 벌써 아래가 저 멀리 있다. 오르는 속도가 상상 이상이지만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 전혀 없다. 다만 새벽 하늘에 벌써 100개가 넘는 열기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열기구를 내동댕이치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열기구는 바람에 순응하는 기구라 바람을 느낄 수 없다. 바람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열기구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방향을 인위적으로 조종할 수도 없다. 다만 고도에 따라 바람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버너의 화력으로 높낮이를 조종하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점점 하늘로 오른 열기구 아래로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지구라 하기에는 너무나 이색적이라 마치 화성에 와 있는 것 같다. 점점 날이 밝아오자 카파도키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태곳적 원시의 자연과 형형색색의 열기구들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내 눈앞의 환상적인 광경에 여행자는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