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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Dec 03. 2020

파묵칼레 여행

죽은 자와 산 자의 도시

하얀 건 눈이 아니라 석회질이다. 이곳을 흐르는 온천물 속의 석회질이 굳어지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새하얀 바위 언덕이 만들어졌다. 터키 사람들은 이 모습이 하얀 목련 꽃이 핀 성처럼 보인다고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파묵칼레라는 이름을 붙였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시대에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로서 파묵칼레 온천수의 약효를 보기 위해 머물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도시이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은 성경에도 등장한다. 이후 이 도시는 클레오파트라가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를 연결하는 광장을 지나 고대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면 고고학 박물관이 나온다. 고고학 박물관 안에는 히에라폴리스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스핑크스와 하데스의 동상도 있다.



히에라폴리스 사람들은 제우스는 물론 아르테미스와 아폴로의 어머니 레토 외에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과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를 숭배했다. 하데스가 살고 있는 곳은 화산활동으로 인해 유독가스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던 지하 온천지역이었다.



고고학 박물관 앞에는 땅에서 솟아나는 따뜻한 온천물을 이용해 만든 유적지 풀장이 있다. 풀장 바닥에는 로마시대의 돌기둥과 대리석들이 그대로 물속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고학 박물관을 지나 히에라 폴리스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적지가 아폴로 신전이다.



2세기 히에라폴리스의 주신이자 태양신인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아폴로 신전은 현재 기단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아폴론 신전이 이 도시 자체라고 할 정도로 중요했다. 신전에는 아폴로와 쌍둥이 남매인 아르테미스 여신을 비롯해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 등 중요한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아폴로 신전은 플루토니온이라고 불리던 유독가스를 분출하는 동굴 위에 세워졌는데 아폴론 신전의 신관은 이 동굴에 몇 분간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최면 상태에서 신탁을 행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보며 동굴을 지하 세계로 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폴로 신전 뒤로 원형극장이 보인다.



로마제국의 하드리안 황제 시절에 건축한 원형극장은 이 도시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보여준다. 2만 명을 수용한 원형극장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고대 극장의 기능과 배치를 알아보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무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각들은 예술적으로 아름다워 만은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성 빌립보 순교 기념관으로 이동하자.



신약성서에 나오는 빌립보서의 주인공이 빌립보는 시리아와 프리기아 등 소아시아 고대국가에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서기 80년께 히에라폴리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이후 그가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8 각형의 무덤과 교회를 세웠다.


이제 히에로폴리스의 출구에 있는 도미티아누스의 문으로 이동하자.



도미티아누스 기념문은  세 개의 연속 아치로 이루어진 로마 양식으로 건축된 것으로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소아시아 총독인 프론티우스가 서기 8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이문을 통과하면 죽은 자의 도시 네크로 폴리스가 펼쳐진다.



히에라폴리스 끝에 있는 네크로폴리스는 천 개가 넘는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 지역을 말한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로마시대에 병이 걸리면 온천에서 쉬면서 좋은 물로 목욕하는 것이 주요 치료법 중 하나였다. 온천으로 유명한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로마제국의 병이 오래된 환자가 많이 찾았다. 그리고 상당수는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히에라폴리스에는 도시규모보다 더 큰 공동묘지가 생겼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네크로폴리스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끝도 없이 이어진 네크로폴리스의 무덤을 보고 있으면 로마제국의 사람들이 느꼈을 인생의 허망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천년의 제국 로마가 영원할 지라도 그 제국의 일원이었던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생각에 당시 로마제국의 사람들은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덧없는 삶에서 벗어나 영원한 부활을 꿈꾸며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히에로폴리스를 둘러본 후 파묵칼레 온천지역을 통해 마을로 내려간다.



층층이 쌓인 하얀 석회암층에 담긴 옥색 온천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여행자로 하여금 빛나는 업적을 쌓은 로마제국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들 역시 이곳에 몸을 담근 채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으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야 하는 현실에 한숨 지었을 것이다.



해가 지고 노을이 드리우자 파묵칼레 언덕은 삶의 황홀함을 노래하듯 붉게 물든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어두운 밤하늘에 터키의 상징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초승달이  떠오르며 여행자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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