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봉기 Dec 06. 2020

아테네 여행

아테나의 축복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면 고대 아테네의 생활공간인 아고라가 나타난다. 아고라는 <모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말하며 광장 주변에는 신전과 시장 그리고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물건을 사고팔았으며 재판을 받았다. 또한 정치적 회합을 가졌으며 신을 섬겼다.


이후 로마 시대에 접어들자 점차 그 기능이 로만 아고라로 넘어가자 이곳은 점차 사람들로부터 잊혔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아테나 아고라의 몇몇 장소를 방문하여 그 당시의 흔적을 느껴보자.



아고라의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기원전 5세기에 대장장이와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지어진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도리아식 기둥으로 둘러싸여 단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올림포스 12 신중의 한 명으로 그 모습이 너무 못 생겨 어머니 헤라의 버림을 받았으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남편이 된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마저 잘생긴 전쟁의 신 마르스와 바람을 피우며 에로스를 낳는다. 아테나의 창과 방패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무기 등을 만든 그는 기술과 장인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그래서 당시 신전 주위에는 수많은 도공들의 작업실과 가게가 있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에서 동쪽으로 가면 고대 아테네의 많은 관공서들이 있었다. 특히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건물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불레테리온이다. 이곳에는 국회 상임위와 대법원이 있었던 곳으로 4만 명의 아테네 시민 중 500명을 추첨으로 뽑아 운영하였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청년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다.


관공서 건물을 지나 광장 중심으로 들어가면 광장은 스토아로 둘러싸여  있다. 기둥이 늘어선 건물을 뜻하는 스토아는 아테네 시민의 만남의 장소이자 쇼핑센터로 당시 사회분위기 상 진지한 철학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며 겨울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스토아에서 제논은 스토아학파를  창설하였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모두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하며 그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길만이 인간이 행복에 이르는 길 이리라고 설파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아탈로스의 스토아는 다른 스토아와 같이 바깥 열은 도리아식, 안쪽 열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고대 아고라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고라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대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시작해 아고라를 거쳐 공동묘지로 이어진다. 천상의 세계와 저승의 세계를 잇는 이 길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적 고민에 빠져 걸어 다녔다. 아테네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아고라의 길을 걸으며 그들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여행의 재미를 선사한다.



아고라의 끝에 있는 공동묘지 지역인 케라메이코스를 방문하면 죽은 자의 생전 모습을 그린 묘비 조각과 제물의 피를 흘려보내던 좁은 수로 그리고 제사를 지내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케라메이코스에서는 골목마다 분가루 짙게 바른 창녀들이 둥지를 틀고 호객행위를 했는가 하면 담 그늘마다 돈놀이 아줌마와 포도주 장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케라메이코스는 개천을 낀 습지지역이라 물과 땔감이 풍부해서 생활 도기를 굽는 공방이 많았다. 케라메이코스라는 이름도 도공 케라모스가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 데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 식품을 보관할 용기가 마땅치 않았던 때라서 곡물뿐 아니라 식수나 올리브기름 그리고 꿀 같은 것을 채워도 새지 않는 도기는 수납과 저장 그리고 운반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었다.

이제 고대 아고라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로만 아고라로 이동하자.



로만 아고라는 그리스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난 후 고대 아고라 옆에 생겨난 곳으로 이곳에 새로운 신전과 대형 건축물이 생기면서 고대 아테네 아고라는 상업성을 잃었다.



로만 아고라에 있었던 하드리안 도서관은 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만든 도서관으로 현재는 코린트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둥들만이 보인다. 당시 하드리안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고 공부하는 용도뿐 아니라 극장과 콘서트홀로도 사용하였다.


고대 여행을 충분하게 즐겼다면 아테네의 현재를 볼 수 있는 플라카의 계단으로 이동하자.



플라카 계단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계단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여행자의 휴식처가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를 등지고 노천카페에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유로운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밤이면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이 더해져 더욱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플라카에서 긴 휴식을 취하였다면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으로 이동하자.



기원전 4세기, 아테나 신께 바치는 판아테나 제전이 열렸던 이곳은 2세기경 이로디온을 지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재건한 경기장이다. 언덕의 경사 위에 대리석으로 관중석을 만든 이곳에서 1896년 첫 번째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관중석 중앙의 제일 앞자리에는 등받이가 있는 귀족석이 있는데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같은 칸의 사람들의 티켓을 모두 사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사용하였던 선수 입장 홀과 시상대 그리고 트랙 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경기장을 나와 제우스 신전으로 향한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그리스 신전 중 최대 규모의 신전으로 원래는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이 총 104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6개만 남아있다. 그러나 높이가 17m이며 지름이 2m가 넘는 기둥 앞에 서면 당시 웅장한 신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제우스 신전은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완공되었는데 이를 기념해 신전의 입구에 <하드리안 아치>라고 불리는 아치문이 세워져 있다.


제우스 신전을 지나 오늘 아테네의 중심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이동한다.



1843년 그리스 군사들과 시민들은 헌법을 요구하며 이곳 의 궁전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1844년 그리스 공화국의 첫 헌법이 만들어진다. 이후 궁전 광장은 <헌법>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가 붙은 신타그마 광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장 한 면을 꽉 채운 건물은 국회의사당으로

원래는 왕궁이었으나 1935년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타그마 광장을 지나면 아테네 국립대학교 옆에 있는 아카데미가 나온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은 아테네 국립학술원으로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1885년에 완공한 건물로 신고전주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학술원 앞으로 아테네와 아폴로 동상이 있어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 아테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필로파포스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중간쯤 소크라테스의 무덤이 나온다.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이 무르익은 고대 그리스에서 당신이 진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사회에서 교육받은 것이나 책에서 본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고민해서 내린 답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정답보다는 내 답이 있어야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문답을 통한 무지에 대한 자각은 당시 많은 젊은이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기득권과 관습에 빠진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를 두려워했다. 그가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리를 빼앗아 갈 것 같았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선동죄로 바로 이 감옥에 가두었으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시 상황을 보면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망명가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독약을 마셨다. 그는 자신이 도망을 간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이야기 한 철학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라면 죽음마저 자신이 이야기한 진실을 위해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통하여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필로파포스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자 그의 기념비가 보이고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필로파포스는 기원후 100년경에 로마시대에 아테네를 위해 헌신했던 로마 집정관이었다. 아테네 인들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가 죽은 후 추모탑을 세우고 탑이 세워진 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여 필로파포스언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크로폴리스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언덕의 정상에 서니 아테네 중심에 우뚝 솟은 파르테논 신전이 붉은 노을에 물들인 채 여행자를 압도한다. 잠시 후 칠흑 같은 밤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무지로 가득한 세상에 한 송이 올리브유의 등불을 켜자 파르테논이 보석같이 반짝거린다. 한참을 넋이 빠진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여행자의 마음에 아테나의 축복이 내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르테논 신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