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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Dec 05. 2020

파르테논 신전

서양 문명의 기원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적, 정치적 중심지로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지은 성채이자 신들에게 바치는 성소를 이야기하며 높다는 뜻의 그리스어 아크로(akros)와 도시라는 뜻의 폴리스(polis)가 결합된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 대부분은 아크로폴리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스에서 아크로폴리스라고 말하면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의미한다.



아크로폴리스를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이 곳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노천 극장으로 보통 낮에는 시민들이 모여서 정치 회합을 가졌으며 저녁에는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공연과 축제를 열었다. 2만 명 규모의 공연장은 별다른 음향 설비 없이도 객석 끝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인 프로필레아와 니케 신전이 나타난다.



높이가 약 9m인 프로필레아는 전면과 후면에는 남성적인 도리아식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쪽은 여성적인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만들어졌다.


프로필레아 왼쪽에 보이는 것은 아그리파 기념비로 원래는 이 곳에 당시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가 네 마리의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다. 프로필레아 오른쪽에 보이는 아테나 니케 신전은 기원전 431년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신전이다. 여기서 아테나 니케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테나 여신의 별칭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언덕 아래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이 이렇게 완만하지 않았으며 아래에서 현관문까지 곧바로 길이 가파르게 뚫려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이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힘들게 언덕을 오르면서 잡념을 떨쳐버린 후 프로필레아 문을 통과하게 하였다.




프로필레아 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왼쪽으로 에릭테이온 신전이 보인다.



에릭테이온 신전은 아테네 건국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왕이자 영웅인 에릭테우스에서 이름을 가져온 신전으로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에렉테이온 신전을 받치고 있는 여섯 명의 여인은 2m 크기로 오른쪽 세명의 여인상은 오른쪽 무릎을 굽히고 왼쪽의 세 명의 여인상은 왼쪽 무릎을 굽히고 있다.


여인 조각상의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포즈의 여인 조각상은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옷 주름과 함께 고대시대의 신중심의 예술에서 벗어나 지구 상에 처음으로 인간 중심의 시대가 왔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여인상은 모두 모조품으로 진품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으며 이 곳에 없는 한 명의 여인은 영국박물관에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테네의 수호신을 정하는 경합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참가한다. 경합에 참가한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샘물이 솟게 하여 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반면 아테나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리브 싹을 틔우는 기적을 일으키며 자신을 아테네의 주신으로 뽑아 주기를 요구한다. 결국 아테네 시민은 올리브를 선택해 아테나를 아테네 수호신으로 결정했다. 현재 아테나 신이 선물해준 올리브 나무가 에릭테이온 신전 근처에서 자라고 있으며 포세이돈의 내실에는 그가 벽면을 삼지창으로 찍었던 자국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제 아크로폴리스의 하이라이트인 파르테논 신전으로 이동하자. 장중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자랑하는 파르테논 신전은 2,500년 동안 서구 건축의 모델이자 원형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신전은 교회와 회교 사원 그리고 터키 군대의 무기고로 사용되면서 많은 손상을 입었다.



이러한 손상을 보다 못한 유네스코는 파르테논을 첫 번째 세계 문화유산으로 삼아 보호했으며 더 나아가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마크로 파르테논 신전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신전에 모셔진 아테나가 지혜의 여신이어서 더 큰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한 기념으로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 기원전 448년부터 기원전 432년까지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건축가의 설계로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파르테논 신전 중앙에는 상아와 황금으로 만든 12미터의 거대한 아테네 여신이 있어 매일 새벽 동쪽 입구에서 해가 비치면 여신은 황금빛 모습으로 신성하면서 찬란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하지만 거대한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 규모와는 달리 압도적이지 않고 마치 하늘을 날 듯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는 인간의 시각에서 아름다움을 실현한 신전의 설계와 건축 때문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균형미와 비례미를 느끼게 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눈에 비치는 절대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절대적 아름다움은 사물의 조화에서 나오며 조화는 질서에서 가시 질서는 비율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적용된 비율은 우리가 아는 황금비율이 아니라 9:4 비율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비율로 이 비율을 적용해 파르테논 신전을 완성하였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엄격한 비율과 질서 외에 인간이 눈에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착시현상을 감안해 신전을 지었다. 예를 들어 파르테논 신전의 모든 기둥은 우리나라 무량수전처럼 배 흘림 양식을 하고 있다. 신전 기둥들이 수직으로 서 있으면 중앙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둥 중간 부분을 두껍게 만드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해 균형감을 돋보이게 하였다.


또한 이처럼 엔타시스 기법은 파르테논 신전의 대들보와 기단 그리고 기둥 들 모든 곳에 적용되어 모든 신전을 미묘한 곡선으로 만들어 인간의 눈에 완벽한 직선 형태로 보이게 하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르테논 신전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지었다. 이외 기둥 간격이 양측 모서리로 갈수록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모서리 부분의 기둥간격을 좁게 만들었다. 실로 파르테논 신전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신 중심의 건축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건축인 파르테논 신전을 지으며 민주주의를 실현한 당시 최고 통치자인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왔다. 우리의 정체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 되며 추첨보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가난 때문에 능력자가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다. 우리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아테네가 가지는 도시의 힘이다.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양쪽 삼각지붕 부분이다. 가장 눈에 잘 띄는 이 곳에 가장 상징적인 조각상을 배치한다. 그래서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삼각 부분에는 아테나의 탄생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아테나는 여러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을 한채 탄생하여 승리의 월계관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아테나를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이라 한다.


아테나의 탄생 장면이 있는 동쪽 삼각 부분 반대편인 서쪽 삼각 부분에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경합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경합에 참가한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샘물이 솟게 하여 아테네 시민들에게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반면 아테나는 아크로폴리스의 큰 신전에 올리브의 싹을 틔우는 기적을 일으키며 자신을 아테네의 주신으로 뽑아 주기를 요구한다. 아테나의 뒤로 올리브 나무가 보인다.


해상 무역 국가였던 아테네 시민들은 왜 막강한 부를 가져다주는 바다를 지배할 힘을 거부하고 작은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을까?  올리브는 아테네 여신의 상징물인 만큼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그 기름을 바름으로서 특별한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슬링 선수들은 올리브기름을 몸에 발라 상대방의 손아귀에 잡힐 확률을 낮추었다. 또한 올리브기름은 마사지 재료로 피부와 근육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여 물로 된 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지중해 사람들에게 올리브는 중요한 영양원으로 올리브를 통째로 갈거나 오일로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이 올리브나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연료의 원천으로 올리브 열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그리스에서 등잔불을 밝힌 것이 올리브 열매였다. 이는 지적 능력이 무지의 암흑을 물리치듯이 올리브 열매를 태워 어둠을 물리칠 빛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인은 자기네 도시를 물질적 부가가 아니라 지적 에너지로 채워 황금시대를 열었으며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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