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셉수트 사원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나일 강을 건너 서안 투어를 시작했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누어진다. 동안이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삶이 이어져 온 <산 자의 도시>라면 서안은 묘지와 사원들이 많은 <죽은 자의 도시>이다. 서안 투어의 시작은 멤논의 거상부터이다.
동안에서 나일강을 건너 한참을 달리자 멤논의 거상에 도착했다.
멤논의 거상 앞에 도착하니 아프리카 특유의 새벽 공기 속에 거대한 쌍둥이 좌상이 태고적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대지위에 굳게 솟아 있다. 20m 높이의 멤논의 거상의 주인공은 아멘호테프 3세로 원래는 아멘호테프 3세 사원의 정문을 지키는 석상이었는데 나일강의 범람으로 사원은 모두 파괴되어 석상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구를 지키는 한쌍의 석상이 이 정도로 거대하다면 도대체 사원은 얼마나 웅장하였을지 상상이 안 간다. 아멘호테프 3세의 석상이 멤논의 거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BC 27세기, 지진으로 석상에 금이 생겼는데 아침마다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석상에서 계속 났다. 이후 <말하는 돌>로 석상이 유명해지자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그중 그리스에서 온 여행객들은 이 석상을 보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멤논이 떠오른다며 멤논의 거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의 멤논은 에티오피아의 왕이자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트로이 군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죽은 멤논이 테베에 석상으로 출현하여 그의 어머니 에오스에게 인사하며 소리를 내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맴논의 거상은 서기 199년 로마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보수되었으며 그 후 더 이상 소리는 나지 않았다고 한다. 멤논의 거상이 특이한 점은 두 개의 석상 중 하나는 하나의 바위를 조각해서 만들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여러 개의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바위를 조각해 만든 석상의 발아래에는 아멘호테프 3세의 부인과 딸이 조각되어 있으며 돌을 쌓아 만든 석상의 다리 부분에는 아멘호테프 3세의 어머니 무템비아가 조각되어 있다.
다음은 메디나트 하부로 불리는 람세스 3세의 장제전으로 이동한다. 장제전이란 파라오의 장례식을 지내고 제사를 지내던 곳을 말한다.
메디나는 도시를 의미하며 하부는 신전이 위치한 지명으로 메디나트 하부는 거대한 신전이자 인구 5만 명이 살았던 도시였다. 이곳에는 람세스 3세의 장제전뿐만 아니라 그가 머물렀던 왕궁과 행정관청 그리고 사제들의 숙소 및 군대 막사가 있었다. 이집트 최고의 신인 아문 신이 처음 등장한 곳에 세운 람세스 3세 장제전은 요새처럼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집트에서 특이한 요새 형태의 사원은 람세스 3세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 그곳에서 본 양식을 참고해서 지었기 때문이다.
방어적 기능을 위해 좁게 만든 요새의 입구를 지나면 안뜰이 나오고 안뜰을 지나면 높이 30m의 거대한 장제전의 첫 번째 탑문을 만날 수 있다.
탑문에는 리비아를 무찌르고 감사의 표시로 람세스 3세가 아문 신과 하토르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부조는 크기도 놀랍지만 깊은 양각으로 인물의 표현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탑문을 지나면 첫 번째 안뜰이 나온다.
사원의 마당이자 왕궁의 마당이기도 했던 첫 번째 안뜰에는 저승의 신이자 왕인 오시리스 석상이 보이는데 당시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었다. 안뜰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람세스 3세의 궁전이 있었는데 대부분 무너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사원은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는 반면 궁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사후세계를 더욱 중요시하는 이집트인들의 정신세계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안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조는 적들의 잘린 손목의 수를 계산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집트의 병사들은 전쟁에서 자신이 죽인 적의 손목을 잘라 그 양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 부조에서 손목을 모아놓고 세고 있는 사람 뒤에서 파피루스에 가록하고 있는 사람이 서기관으로 그는 먀우 높은 지위를 누렸다.
제2 탑문을 통과하면 두 번째 안뜰이 나온다.
이곳 기둥에서도 오시리스 모습을 한 파라오 석상을 만날 수 있는데 모두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한 때 이곳은 이집트 기독교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인들이 파라오의 석상을 파괴해 현재 온전한 석상을 만나볼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안뜰에서 열주전으로 들어가는 현관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상의 부조를 만날 수 있다.
현관의 천장에는 날개 달린 태양과 코브라가 보인다. 이집트 신화에서 날개 달린 태양은 지상의 파라오이자 신인 호루스를 상징하고 날개 달린 코브라는 우제트로 파라오를 보호하는 존재이다.
부조에 있는 물방울 모양의 십자가 형태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물 중 가장 잘 알려진 앙크로 생명과 삶을 상징한다. 신화에서 파라오였던 오시리스가 죽자 그의 아내 이시스가 태양신 라에게 기도해 지혜의 신 토트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치유를 상징하는 앙크를 받아 오시리스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앙크가 양손으로 쥐고 있는 창은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긍정적이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안뜰을 지나 열주전이 나온다.
열주전의 모든 기둥은 밑부분만 남아있지만 높은기둥이 빼곡했던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리 웅장한 자태로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경외감을 주었을 것이다.
열주전을 지나면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성소가 나타나는데 과거에는 일반인이 절대로 못 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존 상태가 안 좋아 일반인이 안 가는 공간이 되었다.
다음으로 차를 타고 하트셉수트 장제전으로 이동한다. 입구를 통과하면 꼬마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꼬마기차를 타고 장제전까지 이동해야 한다.
신왕국 18 왕조의 5번째 파라오인 하트셉수트는 남편이었던 왕이 일찍 사망하자 후궁 소생의 의붓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였다. 특히 그녀는 교역과 상업을 장려해 국가의 부를 축적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그녀의 아들인 투트모스 3세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며 위대한 파라오가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이집트가 패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하트셉수트는 그녀의 재임 시절 자신의 사후를 위하여 대규모의 사원을 축조했는데 바로 하트셉수트 장제전이다.
장제전은 규모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태 또한 모든 신전을 압도한다. 신전의 세부 요소를 보면 자세히 살펴보면 그 우아함과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특히 기하학적인 열주가 좌우로 열을 맞추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과 각 층을 연결하는 경사로는 현대 건축물이라 이야기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경사로를 따라 테라스로 올라가면 하트셉수트의 여왕의 거상들을 마주친다. 자신의 사후를 위해 거대한 사원을 지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하트셉수트 여왕은 우아하면서 웅장하면서 위엄을 잃지 않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관람은 2층 열주전부터이다. 2층의 열주전은 탄생의 열주전 Birth Colonnade과 푼트 열주전 Pund Collonnade로 나누어진다.
먼저 북쪽에 위치한 탄생의 열주전으로 이동하여 하트셉수트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 부조를 감상하자.
하트셉수트는 여성 파라오로서 자신이 이집트 제1 신인 아문 신의 딸임을 강조하는 부조로 이곳을 장식했다. 예를 들어 아몬 신이 하트셉수트의 어머니인 아모세 왕비를 유혹해서 동침하는 장면과 임신 중인 아모세 왕비의 모습 그리고 하트셉수트를 출산하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부조는 탄생한 하트셉수트를 아몬 신이 직접 안고서 자신의 친 딸임을 선포하는 장면이 있다.
남쪽에 위치한 푼트 콜로네이드에서는 여왕의 원정 사업과 업적에 관련된 내용의 부조를 감상할 수 있다. 푼트는현재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인근의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 지역은 교역을 위한 항구가 있는 도시로 오래전부터 원정대를 꾸려 출정했던 곳이다.
푼트 콜로네이드의 부조에서 원정에서 획득한 전리품인 제사 의식에 사용되는 향나무가 먼저 눈에 띈다. 이외에도 황금과 상아 그리고 표범가죽과 기린 등의 전리품도 볼 수 있다. 원정대가 귀환하는 장면에서는 투트모스 3세도 보이는데 그 역시 향료를 나르고 있으며 하트셉수트는 전리품들을 확인하고 있다.
제2 층 열주전의 양 옆에는 하토르 신과 아누비스 신을 위한 작은 신전이 있다. 먼저 하토르 신전부터 방문하자.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이자 죽은 자를 저승 세계로 인도하는 하토르는 보통 암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고대 농경 시대에 암소는 매우 소중한 가축이었는데 하토르 여신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신전의 벽화에는 파라오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하트셉수트가 무릎을 꿇고 하토르 여신으로 상징되는 암소의 젖을 받아 마시는 모습의 벽화가 보인다. 또한 신전의 뒤편으로 가면 후면 암소로 변한 하토르가 하트셉수트 여왕의 손을 핥으며 축복을 내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하토르 신전 반대편에 있는 아누비스 소신전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감상하자.
1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아누비스 신전의 내부 벽화는 아누비스와 네크베트 신에게 공양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여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의 법정에 세우는 신으로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살아생전의 행위를 판정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흰색 독수리로 표현되는 네크베트는 코브라로 표현되는 언니 우제트와 함께 파라오를 보호하는 존재이다. 벽화에서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와 죽음을 관장하며 파라오를 보호하는 코브라의 모습을 한 우제트와 흰색 독수리 머리의 네크배트가 보인다.
이외 신들에게 봉양하는 하트셉수트와 그녀의 양아들 투트모스 3세의 모습이 보이는데 하트셉수트의 모습은 많이 훼손되어 있다. 이는 그녀의 장기집권으로 많이 핍박받았던 투트모스 3세가 그녀의 모습을 일부러 지웠기 때문이다.
소신전을 나와 경사로를 따라 3층으로 이동하자.
3층 테라스에서 가장 먼저 여행객을 반기는 것은 기둥 곳곳에 채색이 남아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얼굴이 새겨진 오시리스 석상이다. 이곳을 지나면 아문신을 모시는 지성소가 나온다.
왕실 가족과 하트셉수트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만든 공간인 지성소의 첫 번째 내실에는 별이 새겨져 있는 천장 아래로 머리 부분이 없는 하트셉수트 석상이 2구가 보인다. 원래는 2구가 더 있았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석상 사이로 보이는 입구를 통하여 다음 내실로 들어가면 둥근 천장 아래 아문신의 석상이 있었다. 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뚫려 있어 새벽에 첫 햇살이 성역의 아문 신 상을 비추게 되어 있지만 현재 아문신의 석상은 보이지 않는다. 내실의 측면으로 각각 작은 내실들이 있는데 작은 내실의 벽에는 아문신과 투트모세 1세의 모습과 제례를 치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제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관람을 마치고 신전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일강이 보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이제 서안 투어의 백미이자 마지막 코스인 왕가의 계곡으로 이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