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서안투어 2
하트셉수트 사원에서 조금 떨어진 왕가의 계곡에 도착하면 꼬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기차를 타고 파라오의 무덤들이 있는 계곡으로 이동한다.
이집트의 고왕국시대나 중왕국시대에는 주로 피라미드로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너무 눈에 띄어서 대부분 도굴을 당했다. 신왕국시대의 파라오들은 파헤쳐진 선왕들의 무덤을 보며 인적이 드문 골짜기에 무덤을 만들고 입구를 아예 봉해버렸다. 하지만 이 역시 도굴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도굴꾼들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다.
신왕국시대의 파라오의 무덤들은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18 왕조의 투트모스 1세의 무덤부터 19 왕조의 람세스 11세의 무덤까지 있다. 이 중 최근 이집트 18 왕조의 12대 왕 투탕카멘의 화려한 무덤과 고위 관리이자 서기관이었던 네바문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왕가의 계곡은 더욱 유명해졌다.
왕가의 계곡에서 무덤을 처음 발견한 존 가드너 윌킨슨은 King's Valley의 첫 자를 딴 KV에 발견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는데 지금도 그 형식이 유지되어 있다. 현재 복원된 63개의 무덤 중에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무덤은 15개 이하로 입장권을 구입하면 3곳을 방문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둘러볼 곳은 왕가의 계곡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람세스 4세의 무덤이다.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순간 관람자는 마법과 같은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무덤 안 상형문자와 벽화들이 천년이 지났음에도 그 원색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제타 스톤을 사용하여 상형 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은 왕의 계곡을 발굴하는 동안 이 무덤을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은 대부분 긴 복도와 매장실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 입구에서 매장실까지 뻗어 있는 복도의 벽과 천장에는 수많은 신에게 의식을 올리는 장례식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4세의 무덤의 복도에는 매의 머리를 한 파라오의 수호신인 호루스 앞에 람세스 4세가 서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복도 위에 있은 천장에는 파란색 바탕에 황금색 별들로 둘러싸인 상형문자가 보인다. 상형문자에는 파라오가 태양신 라와 하나가 되어 저승으로 향하는 태양의 길을 따라가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보고 끝에 있는 매장실은 거대한 석관으로 채워져 있는데 석관 위 천장에는 바람과 공기의 신인 아버지 슈가 하늘의 여신이자 딸인 누트를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트의 길고 긴 팔과 다리는 아래쪽으로 뻗어 수평선에 닿아있다. 태양신 라는 태양의 배를 타고 매일 밤하늘의 신 누트를 따라 여정을 시작하여 뱀의 모습을 한 혼돈의 신 아모시스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마침내 아침을 연다.
이는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더불어 부활을 상징한다.
석관 주위의 벽에는 장례식 장면이 보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후에 주인을 돌 볼 하인을 산 채로 묻지 않고 석관 주위의 벽에 그림으로 그렸다.
람세스 4세의 무덤을 나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세티 1세의 무덤이다. 세티 1세는 람세스 1세의 아들로 19대 왕조의 초기의 파라오로 문화와 예술 부분에서 높은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왕가의 계곡의 무덤 중에서 가장 길고 깊으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세트 1세의 무덤은 이중 구조의 복도를 가지고 있다. 계단을 통하여 무덤으로 내려가면 첫 번째 복도가 나오고 이어서 두 번째 계단과 두 번째 복도로 이어진다. 그리고 매장실이 나온다. 길게 뻗은 세티 1세 무덤의 첫 번째 복도의 천장에는 무수한 파란색의 하늘 가운데 무수한 황금별이 반짝인다. 천장 아래 벽화에는 자칼의 머리를 한 저승사자 아누비스와 지하세계를 인도하는 하토르 여신과 함께하고 있는 세티 1세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 앞에서 기도하는 세티 1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아래 복도에는 6개의 기둥이 있다.
기둥에는 여러 가지 장면의 부조가 보이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토르 여신이 저승의 문 앞에서 세티 1세를 맞이하는 모습의 장면이다. 기원전 1279년에 사망한 세티 1세가 저승에 도착하여 심판을 통과하자 하토르 여신이 그를 맞이하고 있다. 벽화에서 하토르 여신은 미의 여신답게 몸에 꼭 달라붙은 옷을 입고 관능적인 몸매를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상형문자로 디자인된 옷을 입고 있는 하토르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메네트 목걸이를 세티 1세에게 전해주고 있다. 세티 1세는 당시 유행하던 가발을 쓰고 있는데 가발 앞에 왕을 상징하는 코브라 장식이 달려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당시의 의복이 얼마나 세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속이 비치는 부분과 비치지 않는 부분이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매끈한 부분과 주름진 부분 역시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의 머리 위로 세티 1세라는 상형문자가 적혀 있으며 그 옆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형문자가 보인다.
태양신과 같이 그대도 영생을 누리리라.
마지막 매장실로 이동하자.
매장실로 들어가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아치형 천장으로 그곳에는 정교한 일련의 신들과 별 그리고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지붕 아래에는 날개를 펼친 매트 신이 보이고 그 아래로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에게 인도되어 온 세티 1세가 보인다. 심판을 통과한 그는 저승의 왕이자 신인 오시리스 신 앞에서 자신의 미라에 숨을 쉬고 먹을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그 앞에서 사제들은 제물을 바치고 있다.
원래 매장실 중앙에 아름다운 석관이 있었으며 석관에는 장례행렬을 진행하는 수백 명의 인물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나 영국인 발굴가인 벨 조니에 의해 현재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세티 1세의 무덤을 나와 람세스 9세의 묘를 방문한다.
람세스 9세의 무덤으로 내려가면 긴 복도가 이어지는데 복도의 천장과 벽에는 신과 함께 파라오의 저승 여행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비문이 그림이 보인다.
먼저 지상의 왕이자 호루스 신과 함께 태양의 배를 타고 저승세계의 항해를 알리는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장례행렬이 눈에 띈다.
그 뒤로 저승세계를 인도하는 암소 머리를 한 하토르 여신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녀의 앞으로 지하 세계에서 태양신 라의 항해를 저지하는 뱀의 형상을 한 아모시스도 보인다.
복도 끝에는 저승세계를 지키는 아모시스와 저승사자이자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 신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아래로 무수한 그리고 상형문자가 저승의 장례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긴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매장실은 원래 복도 끝에 놓여 있는 길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왕의 죽음으로 인해 급하게 만든 것으로 매우 작다. 2단으로 되어 있는 매장실의 바닥에서 석관은 발견되지 않았다.
매장실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치형 천장에는 하늘의 여신 누트가 그 특유의 노란색 몸통을 길게 드리우고 있으며 그 끝에 있는 아래 벽에는 람세스 9세가 이집트 최고의 신인 아문 과 함께 태양의 배를 타고 내세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날개 달린 태양의 형상을 한 지상의 왕이자 신인 호루스가 파라오를 보호하고 있다.
매장실의 양쪽 벽면에는 태양신 라가 지하세계의 여섯 개의 동굴을 통과하는 여정을 보여주는데 그 여정의 끝에 부활과 영생을 쇠똥구리가 보인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을 관람하고 조금 떨어진 네바문의 무덤을 찾았다.
네바문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인 B.C 1,350년경에 이집트의 서기관 겸 재물을 관리하던 재상이었다. 그의 무덤은 높은 관직을 한 사람들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바위산 한가운데에 있다. 조그만 동굴 같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면 한가운데 그의 석관이 보이고 석관 주위로 아름다운 무덤 벽화가 펼쳐진다.
무덤 벽화에는 물고기와 오리 그리고 나무들이 즐비한 정아름다운 정원도 보이고 피리를 부는 악사와 포도주 창고에서 포도주를 내어오는 여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또한 나일강가에서 가족과 함께 사냥을 하는 네바문의 모습도 보인다.
그중 네바문이 사냥하는 벽화를 자세히 보면 네바문은 나일강가의 늪지대에서 작은 배를 타고 그의 어린 딸과 부인 하트셉수트와 함께 사냥을 즐기고 있다. 벽화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네바문은 다리를 크게 벌려 걸으면서 영원한 행복과 젊음을 상징하고 있다. 주위의 기름진 늪은 부활과 에로틱함을 보여주며 많은 동물들과 장식들은 부를 상징한다. 당시 사냥을 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의 무덤 장식은 무덤 주인이 사후에도 현세의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네바문의 벽화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하는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