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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Dec 15. 2020

룩소르 여행 2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에서 스핑크스 길을 따라 룩소르 신전으로 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2,5km에 달하는 스핑크스의 길 양쪽으로 700여 개의 양 머리와 사람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도열되어 있었으며 이 길 위에서 나일강의 범람이 끝나는 시기에 1년에 한 번뿐인 오펫 축제를 열었다.


축제의 시작으로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아문과 무트 그리고 몬트의 신상을 들고 나와 이들의 결혼식을 재현한 후 태양의 배에 태워져 룩소르 신전으로 옮겨졌다. 당시 신들의 결혼식은 재탄생의 의미를 갖고 있어 축제기간 중 파라오는 성대한 대관식을 치르면서 파라오 통치에 정당성을 획득했다. 축제 기간에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술과 방을 나누어주었다.  



룩소르 신전 앞에는 우람한 탑문이 있다. 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의 석상과 오벨리스크가 입구 양쪽으로 서 있었는데 1,800년에 이집트의 술탄이었던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오밸리스크 1개를 선물해 현재 1개밖에 없다. 프랑스에 선물한 오벨리스크는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다.


탑문 앞에 보이는 람세스 2세를 잘 살펴보면 이중 왕관을 쓰고 있다. 이는 그가 상하 이집트의 파라오임을 보여주고 있다. 람세스 앞으로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인 동시에 태양을 상징하는 40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람세스 2세가 만든 오벨리스크를 자세히 보면 양쪽에 있는 두 개의 타원형 안에 그의 이름이 보인다.



처음 이집트 문명을 접한 유럽인들에게 큰 문제가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이집트의 유적과 유물을 눈으로 볼 수는 있으되 거기에 담긴 속뜻을 알 수 없었다. 무덤 안의 벽화나 탑에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4,000년이나 쓰였던 상형문자를 푼 열쇠가 로제타스톤이다.



로제타스톤은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동쪽으로 60㎞ 떨어진 로제타 마을에서 발견하였다. 로제타스톤에는 각기 다른 세 가지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집트 상형문자와 이집트 민중 문자 그리고 그리스 문자이다. 그때까지 잘 알려진 셋째 단의 그리스어를 번역해 보니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 신관들이 프톨레미 왕의 공덕을 찬양한 글이었다. 그리고 로제타스톤은 같은 내용을 세 가지 글자로 써놓은 것을 알게 되자 학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스어를 아는 이상 나머지 두 가지 문자를 푸는 일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로 인해 베일에 가려있던 이집트 문명을 밝혀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당시 유럽의 학자들은 오랜 시간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그들은 상형문자를 뜻글자인 표의문자로 보고 거기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 해석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매는 왕을 상징하고 연꽃은 포로를 상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몽땅 엉터리였다. 다시 시간이 지난 후 프랑스의 언어학자 샹폴리옹은 마침내 이집트 상형문자가 뜻글자인 표의문자가 아니라 우리말이나 영어처럼 소리글자 즉 표음문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22년 9월 14일 샹폴리옹은 상형문자의 타원형의 동그라미 안에는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27개나 되는 파라오의 이름을 해독하여 그날 아침까지 그는 파라오 이름 25개를 풀었다. 마지막 남은 2개를 놓고 씨름하던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M과 SS까지 풀고 앞에 놓인 태양 그림 대신 태양신 Ra(라)라고 놓고 거기에 이집트어에서 가끔 생략되는 모음 E를 집어넣자 RAMSES가 되었다.



아! 이것은 저 유명한 람세스 대왕의 이름이 아닌가!


2m도 안 되는 이 조그만 돌덩이 하나로 인해 마침내 신비에 싸인 이집트 문명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탑문을 지나 룩소르 신전으로 입장하면 2 개의 안뜰과 2개의 열주전이 나오고 마지막에 파라오와 신을 모시는 지성소가 나온다.



룩소르 신전에서 처음 만나는 곳은 람세스 2세의 동상이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안뜰이다.



람세스 2세의 안뜰은 파피루스 모양을 한 기둥 74개가 람세스 석상과 함께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기둥이 웅장했다면 이곳의 기둥은 아름다워 보인다.


람세스 2세 안뜰을 지나면 높이 16m인 14개의 원기둥이 50m의 길이로 늘어서 있는 열주전을 만난다.  



이곳은 원래 천장이 있는 실내공간이었으나 현재는 기둥과 일부 벽면이 남아있다. 열주전은 신전의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 이르기 위해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들여서 조성한 곳으로 경건함이 느껴진다. 축제 당시 성스러운 태양의 배를 들고 행진했던 많은 악단과 무희들 그리고 사제와 군인들이 이곳에 도착해서 룩소르의 여사제에게 꽃과 헌물을 받은 후 카르나크 신전으로 돌아갔다. 열주전 중간 벽면에서 이 장면을 보여준다. 배 위에 있는 3명의 신이 룩소르의 여사제에게 경재를 받고 있는 모습이 담긴 벽화는 투탕카멘 시절에 만들어졌다.


열주전을 지나면 아멘호테프 3세의 안뜰이 나온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안뜰은 3면에 파피루스 기둥 32개가 두 줄로 배치되어 있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안뜰은 람세스 2세의 안뜰보다 약간 좁은 편이지만 탁 트인 공간감이 여행자로 하여금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안뜰을 지나면 32개의 기둥이 있는 열주전이 다시 나오고 이를 지나면 지성소가 나타난다.



신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인 지성소에는 오직 신관들과 파라오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아문과 무트신에 바치는 지성소에는 다른 신전과 달리 파라오를 위한 분만실이 있다. 이곳에서 아멘호테프 3세가 태어났다고 한다. 사후세계를 보여주는 신전에 탄생을 보여줌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불멸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소망이 느껴진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프 디엠이 하나임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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