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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May 12. 2021

암스테르담 산책

풍차와 관용의 도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알크마르행 완행열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잔세스칸스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내려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풍차가 있는 민속마을 잔세스칸스가 나타난다.  


조그만 시내를 따라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잔세스칸스 마을로 입장하면 녹색의 네덜란드 전통 가옥에서 금방이라도 하얀 모자에 빨간 조끼를 입은 네덜란드 소녀가 문을 열고 나와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입구를 지나 약간의 경사진 언덕 위로 올라가면 푸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와 함께 4개의 풍차를 만나게 된다.


네덜란드와 풍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국토가 작아 바다에 둑을 쌓고 바람의 힘으로 바닷물을 퍼올려 땅을 만든 네덜란드라는 국가 이름 자체가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풍차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치즈 공장이다.



초원이 많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 때문에 최고의 낙농국가인 네덜란드는 자연스럽게 유럽 최고의 치즈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곳의 고다 치즈는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치즈 공장을 나와 조그만 강을 지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델프트 웨어 도자기 공장이 나온다.


16세기 후반에 네덜란드 상인들은 아시아에서 금과 향신료 그리고 중국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이중 중국산 도자기가 네덜란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중국산 도자기를 모방하여 자신들의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델프트 도자기이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델프트 도자기는 지금도 그림을 손으로 직접 그려 넣는다.


도자기 공장 옆으로 나막신 공장이 있다. 다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나막신을 지나 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나막신을 깎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계를 이용해 순식간에 나막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여행자들은 그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네덜란드는 육지가 바다보다 낮아 항상 질퍽한 땅 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동할 때 가장 유리한 신발이 나막신이었다.


나막신 공장과 함께 있는 나막신 가게에는 수백 가지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나막신이 전시되어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지금 내가 네덜란드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잔세스칸스를 나와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이동하여 담락 거리를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면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먹거리인 감자튀김이 기다린다.



산더미 같이 감자튀김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마네킨피스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을 뜻하는 것으로 간판에 오줌싸개 소년상이 그려져 있다.


보통의 감자튀김보다 훨씬 두툼한 이 곳의 감자튀김은 기름진 맛에 고소함이 더해 많은 여행자의 입맛을 만족시킨다. 특히 마요네즈와 케첩을 비롯하여 20개가 넘는 소스는 감자튀김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마네킨피스 감자튀김의 유일한 단점은 양이 너무 많아 따로 점심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감자튀김을 맛있게 먹고 담광장으로 이어지는 담락 거리를 계속 내려가다 보면 여행자들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담락 거리의 왼쪽 지역은 성 매매를 하거나 섹스쇼가 열리는 홍등가이고 반대편은 식당이나 가게들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들 역시 남성의 성기로 만든 기념품이나 코카인으로 만든 과자와 초콜릿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밤이 되면 홍등가에는 매춘부가 당당하게 쇼윈도에 나와 여행자들에게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극장에서는 웅장한 음악에 맞추어 섹스쇼가 열린다. 섹스쇼 중간중간에는 어마어마한 몸매의 아줌마가 등장해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홍등가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황금기를 구가하던 17세기 이래로 네덜란드는 많은 이민자와 정치적 망명자를 받았으며 그렇게 형성된 관용의 정서는 성과 마약을 합법화하였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에서는 강간으로 인한 살인 등 중범죄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담세 능력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담광장에서 운하를 따라 20분 정도 산책하면 고흐 미술관이 나온다.



고흐 미술관으로 입장하면 1층에서 고흐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고호의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2층 전시실에서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고흐의 자화상들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또 다른 자신과 싸우며 분노하는 그의 자화상들에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고통과 아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실존에 대한 방황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고흐는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 미쳐 가고 있다.



고흐의 자화상 중에서 1888년에 농촌에서 그린 작품이 가장 눈에 띈다. 이 작품에는 다른 자화상 속에 보이는 이글거리는 정염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여백을 배경으로 수수한 모자를 쓰고 있는 고흐의 모습에서 휴식이 보인다. 하지만 만년의 작품을 보면 기우임을 알 수 있다. 이전보다 더욱 거센 정염의 불꽃들이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고흐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 작품은 그가 죽기 전  그린 <밀밭 위의 갈까마귀 떼>이다.



이 작품에 서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석양이 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넓은 들판에 서서 고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응시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강력한 색상과 꿈틀거리는 긴 터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황금빛이 넘실대는 밀밭, 황토색 짙은 길, 푸르다 못해 검은 하늘, 그 위로 떠다니는 구름, 그리고 무수히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들. 그는 <밀밭 위의 갈까마귀 떼>를 완성하고 권총 자살한다.


고흐 미술관을 나와 운하 쪽으로 걸어가면 하이네켄 체험관이 나온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체험관으로 입장하면 맥주를 만드는 과정과 방법을 생동감 있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체험관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4D 영화관이다. 4D 영화관에 들어서면 여행자가 맥주가 되어 맥주의 발효와 숙성 그리고 병에 담겨 출하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특히 숙성과정에 따라 변하는 맥주의 색과 깊이는 당장이라도 한잔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30분 정도 진행되는 체험 투어 마지막에 하이네켄 전용 바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제공되는 막 숙성된 2잔의 생맥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맛을 자랑한다.  



하이네켄 공장을 나와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똑같이 생긴 국립박물관은 선사시대 이후의 네덜란드 유적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이곳에서 단연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은 렘브란트의 <야경>과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최고 걸작인 <야경>은  네덜란드의 국보 1호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야간순찰>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밤이 아니라 대낮이며 작품에 보이는 인물들은 당시 암스테르담을 지켰던 민병대원들이다.


단체 초상화로 주문을 받았던 렘브란트는 민병대원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주위 배경들을 어둡게 처리하였으며 가상의 인물들을 배치하였다. 하지만 18명의 민병대원들은 서로 자신의 모습이 돋보이지 않자 주문을 취소하였다.  이후 렘브란트는 사람들로부터 초상화 주문을 받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빚에 쪼들리며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작품을 눈 앞에서 감상하면 그 어떤 초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민병대원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서 싸울 것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다. 특히 중앙의 인물들은 당장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으로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감상하자.



작품에서 왼쪽 측면에  창문을 통해 따스한 햇빛이 실내로 들어온다. 햇살은 창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그릇과 주전자 그리고 빵조각에 며들어 표면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실내따스하게 싼다.


식탁 옆에는 파란 치마에 노란 윗도리를 입은 여인이 신중한 자세로 우유를 따르고 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오늘 처음 하는 것처럼 여인은   방울의 우유도 흘리지 않으려는  유를 따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우유를 따르는 일상의 행위에 베르메르는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일상 역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화가는 작품을 통해 환기시켜주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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