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유럽의 숨은 보석
사랑한다는 의미의 슬라브어에서 유래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는 수도 답지 않게 산에 둘러싸인 전원도시로 대학교가 많아 대학도시로 불린다. 낭만과 푸른 자연이 담겨 있는 류블라냐의 여행의 출발은 도심 중앙에 있는 프레세렌 광장부터이다.
프레세렌 광장에는 슬로베니아 낭만주의를 이끈 민족시인 프란체 프레세렌의 동상이 있다. 슬로베니아 국가의 가사를 만든 그가 바라보는 곳에 그가 사랑했던 유리아의 조각상이 있다. 그는 당시에 부유한 상인의 딸인 유리아를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로 헤어졌다고 한다. 그는 유리아에게 수 십 편을 시를 써서 바쳤는데 이로 인하여 유명해졌다.
프레세렌 광장 바로 앞에 위치한 다리는 세 갈래로 트리플 브릿지라 불린다. 광장에서 구시가지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인 이 다리는 처음에는 평범한 목조 다리였으나 인구가 늘어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보행자 전용 다리를 양쪽에 추가해 현재와 같은 세 갈래 다리가 되었다.
세 갈래의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내려가면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나온다.
뱃사공과 어부의 수호성인인 니콜라스를 기리기 위해 13세기에 세워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성 니콜라의 생애를 담은 천장화가 여행자를 압도한다. 또한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정면과 측면에 보이는 청동문에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이 성당 출신의 주교 6명의 조각상이 입체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성당을 나와 계속 걸어가면 류블라냐의 최대의 시장이 열리는 보든 코브 광장이 나오고 광장 앞으로 2010년 개통한 부처스 다리가 나온다.
과거 류블라냐의 중앙시장의 정육점(Butcher)들이 모여 있던 곳에 다리가 놓여 부처스 다리라고 불려지는 이 다리는 사랑의 다리로 다리 위에는 연인들의 자물쇠로 가득하다. 특히 이 다리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날개를 한껏 치켜올린 4마리의 용들이 다리 앞을 지키고 있는데 다리 위의 용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그리스 왕자 야존이 임금님에게서 아티라는 황금 깃털을 훔쳐 바다로 달아나다가 엄청난 괴물을 만나 류블랴나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그 괴물이 바로 류블라냐의 용이었다. 야존은 용을 물리치고 성에 가두고 류블라냐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용은 류블랴나의 상징이 되었다.
류블라냐의 시내를 걸어서 충분히 돌아봤다면 구시가지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류블라냐 성으로 오른다.
류블라냐 성은 15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시절 터키의 침략을 막은 요새는 이후 감옥과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1905년에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성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붉은색 지붕들 사이로 에메랄드의 강이 흐르고 강 위로 놓인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행자는 고요한 평화를 느낀다.
류블라냐의 시내 구경을 마치고 버스를 이용해 블레드로 이동한다.
옥색 빛의 호수 가운데 매혹적인 섬이 그림같이 떠 있는 블레드는 알프스의 눈동자라고 불린다. 절벽 위의 하얀 성과 에메랄드 빛 호수 그리고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섬의 조화는 동화 속의 풍경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언젠가 보고 싶은 바로 그 모습을 블레드는 간직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가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블레드의 관광은 게으르고 한가하다. 여유를 부리며 호숫가를 산책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절벽 위에 위치한 블레드 성으로 향한다.
블레드 성이 처음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011년이며 당시에 독일의 하인리히 2세는 블레드에서 3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의 주교에게 이 성을 지어 선물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그 장면이 담긴 그림을 볼 수 있다.
블레드 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6세기로 당시 유고슬라비아 왕족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는데 티토와 김일성이 이곳 별장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자연경치 반한 김일성은 회담 후 2주간 머물다 갔다고 한다.
성 위에 오르자 블레드 섬의 풍경이 바로 눈앞으로 펼쳐진다. 환상적인 장면에 넋을 잃은 여행자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한다.
성을 내려와 블레드 호수 위에 떠 있는 섬을 가기 위해서는 전통 나룻배인 블레트나를 탄다.
햇볕을 가려주는 차양이 있는 소박한 블레트나에 오르자 친절한 뱃사공이 웃음 지으며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전한다. 오직 이 지역 남자에게만 자격이 부여되는 블레트나의 뱃사공은 자부심이 몸에 배어 있다. 배가 나아가자 호수의 푸른 물결과 우뚝 선 블레드 성의 자태가 신비롭다.
섬에 도착하자 하얀 계단 위로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그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6세기 슬라브 인들이 지바 여신을 모신 신전 자리에 세운 성당은 단순하면서 소박하지만 슬로베니아 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결혼식장이다. 성당에 있는 소원의 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려온다.
서기 1500년 블레드의 크레이그 성주은 매우 나쁜 인물이었다. 그는 주민들을 심하게 착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주가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성주는 분노한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성주의 아내인 플록세나를 새 성주로 세웠으나 그녀 역시 남편 못지않게 주민들을 학대했다. 그녀는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의 돈을 거둬들였다.
부자가 된 그녀는 그 돈으로 남편을 애도하는 종을 만들어 블레드 섬안에 있는 성당으로 올기려 하였으나 거센 비바람이 불어와 종은 호수 아래로 수장되고 말았다. 이 일에 크게 상심한 플록세나는 로마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황은 그 여인을 위해 종을 기증했는데 이 종이 블레드 섬의 성당에 걸려있는 소원의 종이다.
결혼식을 마치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 성당 앞에 있는 순백의 99계단을 오르고 신부는 침묵하며 자신의 행복을 생각한다. 그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신랑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을 치며 행복을 소망한다.
성당에 들어서니 바로 앞에 종을 치는 굵은 밧줄이 있다. 밧줄을 당기자 청아하면서 은은한 종소리가 블레드의 싱그러운 풍경들과 함께 섬 전체로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