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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28. 2021

체스키 크룸로프 산책

보헤미아 숲 속의 보물

프라하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로 출발한다. 이른 시간이라 버스에 타자마자 졸다가 눈을 떠 보니 푸른 언덕과 초원이 펼쳐진 도로 위로 체스키 크룸로프의 표지판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망토의 다리를 만난다. 3층으로 된 아치 모양의 망토 다리의 낮은 통로는 극장 무도회 홀과 연결되어 있으며 위쪽 통로는 성 정원으로 통한다. 예전에는 이 복도를 통해 성의 지붕과 프란체스코 수도원까지 갈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폐쇄되어 있다.



다리 옆으로 이어진 언덕을 오르면 자메츠카 정원이 나타난다.  왕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이 정원은 아름다운 분수대와 잘 정돈된 조경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히 감싼다. 유럽에서도 큰 정원으로 손꼽히는 이 정원은 과거 왕과 왕의 가족 그리고 왕이 특별히 초대한 사람 이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래서 왕족이 된 기분으로 정원을 거닐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원에서 성 쪽으로 이동하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면 도시 한가운데로 블타바 강이 S자 형태로 흐르고 골목마다 로코코 풍의 밝은 색을 가진 집들이 즐비한 체스키 크룸로프의 동화 같은 전경이 펼쳐진다. 또한 전망대에서 망토의 다리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영화 세트장 같은 난간 사이로 체스키 크룸로프의 환상적인 풍경이 계속해서 나타나 여행자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망토의 다리를 지나 성안으로 들어서면 과거 영주나 귀족들이 거주했던 화려한 안뜰이 나온다. 안뜰 주위로 벽에 석회를 바르고 마르기 전에 파내는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장식된 무도회의 방과 예배당 그리고 바로크 극장들이 둘러싸고 있다.   


13세기 대 영주였던 비트 코백 백작이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돌산 위에 건립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15세기 이곳을 지배한 로젬 베르크 가문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증축되었다가 17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유가 되자 화려한 바로코와 로코코 양식으로 탈바꿈하였다.


안뜰을 지나 성 입구로 내려오면 흐라데크 탑이 나타난다.



흐라데크 탑 안에 있는 162개의 계단을 오르면 체스키 크롬로브의 동화 속 전경이 다시 한번 펼쳐진다. 붉은 기와지붕으로 사이로 시원하면서 깨끗한 블타바 강이 흐르고 눈부신 하늘 아래 뾰족이 솟은 교회와 광장이 서로 만나 찬연한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있다.


보헤미안의 낭만이 가득히 흐르는 이곳에 누구든 들어서면 일상이 동화가 된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스키 크룸로프를 감상하기 전에 성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파파스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즐기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스테이크는 체코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음식이다. 특히 파파스 식당의 등심 스테이크는 담백하고 육즙도 풍성하여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식감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이 보이는 시원한 야외 테라스에서 앉아서 이 고장의 맥주인 버드와이저와 함께 스테이크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체스키가 사랑스러워진다.  


식당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이발사의 다리로 이동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동상과 체코의 수호성인 네포무크의 동상이 있는 이발사의 다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려온다.


17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혈통이자 성의 영주인 루돌프 2세는 이발사의 딸을 보고 반해 결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채 발견된다. 광기에 사로잡힌 루돌프 2세는 아내를 죽인 범인이 잡힐 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이 끔찍한 학살을 보다 못한 이발사는 딸을 죽인 범인이 자신이라며 거짓고백을 하기에 이르고 영주는 학살을 멈춘다. 그 후 이발사를 추모하여 세운 다리가 바로 이발사의 다리이다.


이발사의 다리를 지나면 마을에 중앙에 있는 스보르노스티 광장이 나온다.

 


광장의 중앙에는 1715년 흑사병을 퇴치한 기념으로 세운 삼위일체의 탑이 보인다. 탑의 정상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있고 탑 아래에는 흑사병을 퇴치한 수호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광장 주변에는 시청사를 비롯한 호텔과 기념품점 그리고 식당들이 둘러싸고 있다.


중앙광장에서 5분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에곤 실레 아크센터가 나온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에곤 실레의 미술관이 여기 있는 이유는 1911년 빈에서 그의 충격적인 누드 그림이 비판을 받자 실레는 그의 연인이자 모델 발리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으로 와 머물렀기 때문이다.


잘생긴 외모의 에곤 실레는 어려서부터 메독으로 죽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광적으로 누드화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의 누드화는 에로틱하다기보다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거칠고 자괴감에 차 있다.



커다란 눈은 도발적으로. 감정의 응축되어 있으며 비틀거리듯 구불구불한 그의 나신은 극심한 불안감과 연민을 자아낸다. 명확한 윤곽선과 비자연적인 거친 색으로 몸이 표현하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실험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깨끗해지고 있다. 예술가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예술가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은 싹이 트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죽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 6개월 된 아내 에디트가 사망하자 비탄에 잠긴 실레는 3일 후에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맞은편 길로 올라가면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에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사면 도시 중앙에 솟아 있는 히랄다 탑과 체스키 성이 붉은 지붕으로 이어진 마을과 푸른 강과 더불어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여행자에게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추억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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