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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빛의 마술사 모네의 생가를 찾아서

by 손봉기

파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지베르니에 도착하여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모네의 생가로 이동하다보면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양귀비가 무척 많이 피어있다.


양귀비가 핀 푸른 들판 한가운데에 작품 속 모네의 아내 카미유와 그의 아들 장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생전 단 한 작품만을 팔았던 고흐와는 달리 모네는 살아서 오르세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될 정도로 인정받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모네 역시 젊은 시절 가난과 무명의 시대를 견뎌야 했으며 자신의 동반자이자 평생 모델이 되었던 사랑하는 부인 카미유의 사별 등 고통의 순간을 보내야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카미유의 죽음>을 그린 모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아내의 죽음은 극도의 분노와 슬픔을 주었다. 그리고 아내가 주검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의 변화를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네의 생가는 아틀리에와 침실 그리고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네의 생가에 들어서서 집안 구석구석 배어 있는 그의 손길과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생가 방문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마치 모네가 된 것처럼 그의 침실과 식당 그리고 작업실에서 창 밖을 보는 것이었다. 모네의 눈으로 본 창밖의 하늘과 정원은 그의 그림 속 풍경처럼 빛나고 있었다.


집에서 입구 반대편으로 나오면 꽃의 정원이 나온다.



수선화와 붓꽃 그리고 작약과 장미 등 다양한 식물들이 정원을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모네에게 빛은 색이었다. 꽃의 정원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빛의 향연을 펼친다.



꽃의 정원에서 색과 빛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지하통로를 지나면 물의 정원이 나온다.


물의 정원에 있는 다리를 건너 녹음이 짙은 숲 속을 지나 다리 맞은편에 도착하니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모네의 그림 속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의 정원은 일본인에게 어렵게 구한 수련을 모네가 정성스럽게 기른 결과 작약과 대나무가 어우러진 환상의 정원이 되었다.


모네는 작은 천국인 이곳에서 다양한 색채로 빛과 물 위로 반사되는 풍경이 어우러진 모습을 회화로 담았다.


성경의 창세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생겼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으며 그리고 저녁이 먼저 있었으며 아침이 나중에 있었다.


신 중심의 중세시대 회화에서 빛은 신과 성인을 표현하는 후광으로 사용되었으며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빛은 명암법으로 왕과 귀족을 위한 화려한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시민이 주인이 된 근대 사회가 되자 빛은 시민의 눈에 비친 일상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선두에 모네가 있었다.



평생 빛을 실험한 모네는 특유의 짧고 과감한 붓질로 원색을 칠한 후 밝은 색 물감으로 뜨거운 햇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빛에 반사된 그림자를 그리면서도 회색을 사용하지 않고 원색을 대비해서 사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환한 빛 속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을 재현하며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곳 지베르니에서 마지막 노년을 보내던 모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수련 2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당시 모네의 친구이자 총리를 지냈던 클래망소는 그의 뜻을 알고 총 여덟 점의 대작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총길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수련 연작 이 탄생하여 오르세 미술관 옆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평생 빛을 그린 모네의 원숙한 기량으로 빚어낸 그의 작품들은 빛과 색의 향연으로 숭고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1차 세계 대전 당시 죽어간 젊은이들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말년에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빛의 움직임과 색의 변화를 상상하여 수련을 창조했다. 그의 작품은 이후 칸딘스키 등 추상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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