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코로나 이후로 친구처럼 지내는 선배의 집에서 저녁 겸 술을 한잔하는데 양고기와 더불어 고수가 나왔다. 선배는 양고기에 고수만 한 것이 없다고 권한다. 고수에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을 거절할 수가 없어 양고기와 고수를 입에 넣고 곧바로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어찌된 일인지 고수의 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양고기에 고수를 얹어 먹었는데 고수가 양고기의 기름진 맛을 중화시키며 입안을 깔끔하게 했다.
30대 초반 여행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회사 사람들과 휴가차 베트남을 갔다. 회사의 모든 분들이 여행의 달인들이라 나는 시키는 대로 여행을 따라다녔다. 당시 출근 시간에 호찌민 시에 쏟아지는 오토바이 행렬에 놀랐고 배를 한 척 빌려 수영과 맛있는 음식을 즐겼던 하롱베이의 절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베트남 여행에서 유일하게 힘든 점은 음식이었다. 정확히 고수였다. 저녁으로 베트남의 명물인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는데 고명처럼 나오는 고수의 향에 나는 한 젓가락도 못 먹고 맥주만 홀짝거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음날부터 모든 음식에 고수의 향이 느껴져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와 챙겨온 컵라면만 겨우 먹었다. 이후 고수 트라우마가 생겨 중국이나 태국 등 동남아를 여행하면 고수 향 때문에 현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 이후로 고수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 본 기억은 북유럽을 여행하면서이다.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고 국물요리가 너무나 간절해 베트남 식당에 들러 쌀국수를 먹었는데 고수를 일일이 다 들어내고 먹어야 했다.
선배가 고수를 권하면서 자신도 고수에 적응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선배는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하기 위해 고수의 거북함을 참고 먹었는데 어느 순간 고수 없이 양고기를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권하는 음식을 거부할 수가 없어 고수를 참고 먹었는데 술이 취해서인지 사람에 취해서인지 고수의 거북한 향이 점점 사라지고 조금씩 고수에 길들여졌다.
선배의 말처럼 뜨거운 국물에 넣어졌을 때 느끼는 진한 향과는 달리 생으로 먹는 고수는 깻잎처럼 양고기의 식감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고수를 경험하면서 나 역시 고수 없이 양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고수가 들어간 중국 만두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런 나를 보며 선배는 이야기한다.
니가 정말 고수의 고수다.
선배와 나는 대학 1학년 때 만났다. 같은 영도에 살면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영도가 문화의 중심지이며 나보다 책을 많이 본 사람이나 술을 잘 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농담을 하는 선배가 좋았다. 그리고 4년을 늘 같이 붙어다니다가 졸업을 하고 각자 취직을 하면서 일상은 멀어졌지만 만남은 지속되었다.
사회생활이 힘들거나 어려우면 늘 선배를 찾았고 선배 역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일상을 나와 함께 보냈다. 선배의 결혼식 날 어린 나에게 사회를 맡길 정도로 선배도 나를 좋아했다. 코로나로 직장도 쉬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멀어졌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선배를 만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와 주식에 몰두하며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쫓아가지만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고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면 행복은 멀리 있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기뻐하고 아파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할 수 없다.
고수가 있어야 기름진 양고기의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있듯삶의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헤매는 우리의 삶에, 더하면 빼주고 덜하면 채워주는 친구가 있어야 비로소 인생이 행복해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친했던 친구는 모두 돈 때문에 연락이 끊겼다. 사는 것이 어려워 돈을 빌려가지만 갚지 못하자 친구 스스로 연락을 끊었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선배 역시 어려운데 나에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사양했다. 만약 그 돈을 갚지 못하면 나 역시 선배와 연락을 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고수의 고수는 인생의 고수인 선배와 고수를 먹으면서 일상의 한 순간을 고수하며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