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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여행

일상 여행

백수의 일상

by 손봉기

설이 가까이 오자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그와 자주 만나는 자갈치로 갔다. 우리는 자갈치 시장을 배회하다가 황제가 먹는 고래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점포는 길가의 난장이지만 들어가 앉으니 을씨년스러운 원색의 빛깔들이 우리를 반긴다.



고래고기를 먹으려다가 주인 아줌마의 권유로 상어고기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 집의 명물인 장어 껍데기 묵인 <투투>가 가장 많이 팔린다.


드디어 주문한 상어고기가 나왔다.



상어고기를 처음 먹는 그는 이것이 진짜 상어고기냐며 그럴 리 없다고 헛 웃음을 짓는다. 소주가 몇 잔 들어가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상 속의 물고기를 먹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군다. 그가 낙담하는 모습을 보며 상어보다 더 큰 고래고기를 안 먹었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어고기를 깨끗이 비운 우리는 고래를 잡으로 동해 바다대산 자갈치 앞바다로 향했다.



유럽과 아시아로 가는 국도의 첫 출발지라 그 이름을 유라시아로 지은 광장에 도착하자 그가 한참동안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구름이 떠 있는 하늘바다를 보고 있는데 그가 새우깡을 사들고 나타났다.


상어를 먹은 이유 때문인지 그는 갈매기에 새우과자를 준다. 어쩌면 그는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일상에 갈매기 너희라도 잘 먹고 마음껏 하늘을 날으라고 과자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고소한 새우 과자의 향에 갈매기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몰려든다.


유라시아 광장에는 고단한 전쟁의 역사속에서 생존한 가족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자갈치 아줌마 동상이 눈에 띈다.



그와 헤어진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영도다리를 건넜다.



노을지는 바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잠잠하다. 마치 호수처럼 해맑은 바다위로 바람이 스치우자 빗살무늬가 잔잔히 일어난다. 평생 이렇게 고요하면서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바다의 맑은 향기에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거친 항해를 마치고 쓸쓸히 서 있는 녹슨 배가 보인다. 녹슨 갑판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시퍼런 물결이 일렁인다. 그도 맑고 순수한 어린 시절과 태산 같은 파도에 맞선 청년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항구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폐공장을 커다란 아트 작업실로 바꾼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벽에는 어린 소녀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꿈과 장난으로 가득 찬 두툼한 볼로 목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소녀의 검은 눈동자와 머릿결이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반짝거린다.



어린시절 무엇을 꿈꾸었는지
흐린 기억을 더듬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은 내 인생처럼 오늘도 도시를 정처없이 배회하다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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