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여행

부산시립미술관

불안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

by 손봉기

부산 시립미술관에 갔다. 친구의 권유로 가야지 하면서도 망설이다가 드디어 오늘 가게 되었다. 오래된 친구들과 동료들 심지어 가족도 미술관에 같이 가자고 하니 고개를 내 저었는데 그는 전화 한 통으로 선뜻 동행했다.


코로나로 미술관은 미리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어 급히 예약을 하고 미술관에 갔는데 다행히 입장이 되었다. 미술관 관람은 3층에서 시작해 한 층씩 내려오면서 관람하게 되어 있어 편리했다.



미술관에 입장하자 하얀색 벽의 단순함이 복잡한 머릿속을 지우개로 지우듯이 시원하게 한다. 하얀 벽을 지나 전시실로 입장하자 커다란 벽에는 한 작품씩만 전시되어 있다.



근대 이전 왕과 귀족을 위한 서양 미술이 복잡하고 화려하였다면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이 주인인 된 현대 미술은 단순하면서 시민의 일상을 주제로 하였다. 그래서 현대 미술은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를 다루는데 부산 시립 미술관은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굳이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작품 하나하나마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는 일상의 모습이 섬세하게 강조되어 있다.


본관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푸른 정원을 지나 별관에 있는 이우환 전시실로 이동한다.



이우환 전시실로 입장하자 시원한 점과 선의 행렬이 눈을 즐겁게 한다. 묵직한 점과 유려한 선이 마치 고려청자를 보듯이 시원하게 비상하고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전시실의 하얀 벽을 구비구비 헤치고 들어가자 전시실 중앙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놓여 있다.



홀로 단단하면서 고집스러운 돌의 무게감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나는 더 이상 유연하지 않고 단단한 불안 속에 갇혀있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자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자아 둘이 변하지 않는 강철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작품명은 대화이다. 서로 단단히 굳어진 상황에서 대화는 소외된 우리들의 마지막 절규이자 어쩔 수 없는 고립감을 보여준다.



미술관을 나와 처음 도착한 버스를 타자 버스는 태종대로 향한다. 한적한 태종대를 산책하다가 바닷가에 있는 해녀들의 술집으로 갔다. 소주와 더불어 멍게와 해삼 그리고 산 낙지를 시키자 금세 나왔다. 그리고 잘 먹고 가라며 해녀분들은 우리를 바닷가에 남겨 두고 가버렸다.


대자연에 고립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바다 위로 비치는 빛을 안주삼아 술잔을 들이켰다.



평생 처음 미술관을 갔다는 그는 이우환 작가의 유명세에 놀랐고 작품 속 사람들의 눈 빛에서 두려움을 느꼈으며 미술관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재밌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노을이 지고 바다에 어둠이 찾아왔다. 둘은 그림 속 소재가 되어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들으며 존재의 결핍을 채우고자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짙은 바다와 어둠 속에 완벽히 갇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형도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