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삶
올해만 두 번째 응급실 행이다. 작년부터 수 없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왔다. 고관절로 자리에 누우신 아버지는 지병과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점차 정신을 놓고 계신다.
지난 1년 동안 한 푼도 못 번 실업자의 신세에 몸까지 아픈 요즘 아버지의 병간호는 힘들고 어렵다. 특히 함께 간호하는 연로하신 어머니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니 한 번씩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주체할 수 없는 화에 쉽게 지친다.
정오가 지난 밤, 숨 막히는 응급실을 나와 아무도 없는 병원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라운지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가만히 보니 라운지가 늦은 밤 환승을 위한 공항의 탑승 대기실과 닮았다.
비슷한 공간에 앉아 있으니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와 재작년까지 수 없이 공항에 있었던 아들과의 공통점이 보인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이다.
혈액암과 치매에 시달리며 삶의 여행 끝에 와 있는 아버지는 가끔씩 정신이 돌아와 아들을 알아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이 가엾다고 하신다. 하지만 정작 가여운 당사자는 아버지로 당신은 아들이 기저귀를 갈아 줄 정도로 자존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이다.
12시간이라는 장시간의 비행을 마친 아들 여행자는 파김치가 된 몸으로 환승하는 탑승장에 앉아 있지만 지금 유럽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기가 넘친다. 얼마 후 호텔에 도착하여 마실 시원한 생맥주 한잔에 이미 마음은 들떠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힘든 여행 끝에 있다. 아버지의 여행은 슬프고 아들의 여행은 기쁘다. 두 남자의 여행이 이토록 차이 나는 이유는 남겨진 여행 시간과 여행 끝에 찾아올 허무함과 성취감의 차이 때문이다.
어느덧 중년을 여행하는 아들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과거의 시간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거는 점차 행복해지고 현재와 미래는 점점 힘들고 두렵다는 사실을 이미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 여행자가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는 지나치게 진지했던 과거의 삶 속에서 놓쳤던 사소한 행복에 대한 기대감과 달콤함때문이다. 또한 끝까지 버티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알게 된 현재의 소중함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디에서 멈출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의지대로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주어진 나의 길을 간다.
그 길이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삶일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멈추지 못한다.
길 위에서만
진정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