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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06. 2021

마드리드 산책

스페인의 심장

푸짐하면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와 레티로 공원을 지나자 프라도 미술관이 나온다.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건설한 프라도 미술관은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고 전후에는 페르난도 7세에 의해 스페인 왕가의 미술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후 스페인 왕가의 방대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국립 미술관이 된 프라도 미술관은 마드리드의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



프라도를 대표하는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벨라스케스는 오늘날 화가들이 뽑은 역사상 최고의 화가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인물로 고야를 비롯하여 마네와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작품 왼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가 보이고 벨라스케스 옆으로 시녀 한 명과 마르가리타 공주가 보인다. 시녀의 모습에서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다정하고 친밀한 모습이 느껴진다. 공주 오른쪽으로 다른 시녀 한 명과 두 명의 난쟁이가 보이는데  난쟁이는 공주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고용되었다. 그 뒤로 서 있는 두 사람은 왕비의 시녀와 수행원이다.


화면 중앙에 보이는 거울 속에는 국왕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가 보이며 거울 옆에 열려 있는 문에 서 있는 사람 역시 왕비의 시종이다. 거울과 열린 문을 통해 공간을 넓게 확장시키는 방법은 벨라스케스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작품에서 거울 안에 반사된 국왕 부부는 그림의 모델로 서 있고 공주가 부모님 앞으로 가려고 하자 시녀가 공주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붉은 테라코타 병으로 만든 향수를 건네고 있다.


따스한 궁중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화가는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주와 시녀들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 화가는 국왕 부부를 그리고 있는데 작품에는 국왕 부부 맞은편에 있는 공주와 시녀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작품의 관람객인 우리는 어느덧 국왕 부부의 자리에 서서 작품 안으로 들어가 내가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인지 작품 속 인물들이 나를 보고 있는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어느덧 우리는 생생한 궁중의 일상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클림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 세상에 화가는 2명만 있다.
벨라스케스와 나이다.



프라도를 나와 15분 정도 걸으면 솔 광장이 나온다. 마드리드의 중심인 이곳에 16세기까지 스페인의 영광을 보여주는 태양의 문이 있어서 솔 광장이라고 부른다.



솔 광장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 있는 곳은 곰과 마드르뇨 동상이다. 마드리드의 옛 지명이 우르사리아로 곰의 땅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이곳에 곰이 자주 출몰하여 시의 상징으로 곰동상이 세워졌다. 곰의 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많은 여행자의 손길로 곰의 발 부분이 유난히 반짝인다. 곰 동상을 지나면 광장 중앙에는 무역과 산업의 성장을 통해 스페인을 번영으로 이끈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서있다. 또한 솔 광장 한편을 차지하는 왕립 우체국 앞에는 스페인의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제로 포인트가 있다. 이 석판 위에 두발을 올리고 기도하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솔 광장에서 5분 정도 내려오면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추로스 가게인 산 히네스가 나온다.



1894년부터 시작되어 12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에 들러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을 달콤한 초콜릿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마드리드가 일순간 달달해진다. 특히 깊으면서도 기분 좋은 초콜릿의 맛은 여행자에게 잊지못할 감미로움을 선사한다.


추로스로 적당히 배를 채웠다면 바로 앞에 보이는 마요르 광장으로 이동하자. 아홉 개의 문 중 하나를 택하여 광장으로 입장하면 장엄한 건물들로 둘러싸인 마요르 광장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왕궁과 가까이 있어 과거부터 왕의 취임식을 비롯하여 종교재판과 사형집행 등이 이루어진 마요르 광장의 한복판에 펠리페 3세의 동상이 있다. 그는 스페인의 수도를 톨레도에서 이곳 마드리드로 옮긴 인물이다.


펠리페 3세 동상 뒤로 카를로스 플랑코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밸레와 바쿠스 그리고 큐피드를 그린 건물이 보인다. 뾰족탑과 프레스코화가 특징인 이 건물은 옛날 빵 굽던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왕실 행사 시 왕가의 관람석으로 사용되었다. 건물 중앙에 황실 문장이 보이고 북쪽 시계탑의 벽면에는 세르반테스의 초상이 있다.


마요르 광장 바로 옆에 산 미겔 시장이 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철골구조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산 미겔 시장은 재래시장으로 신선한 음식과 다양한 음료들을 판매하고 있다. 배고픈 여행자라면 싱싱한 굴이나 간단한 타파스를 하나시켜 맥주와 함께 먹으면 좋다.


산 미겔 시장에서 왕궁 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비야 광장이 나타난다.



16세기에 지어진 시장 공관과 붉은 벽돌로 길게 이어진 구 시청사로 둘러싸인 광장은 각기 다른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어우러져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광장 중앙에 보이는 동상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지휘했던 알바로 데 바잔으로 그는 오스만 군대와의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하여 스페인에게 큰 영광을 안겼다.


비야 광장에서 다시 조금 내려오면 왕궁과 연결된 알무데나 대성당이 나온다.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스페인 왕실의 성당인 알무데나 대성당은 16세기에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지어진 곳으로 새로운 수도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과 실내 장식을 자랑한다.


알무데나는 아랍어의 알 무다이나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채를 의미한다. 712년 이슬람군대가 쳐들어와 마드리드가 함락되기 전날, 시민들은 마드리드를 에워싼 성벽 안에 도시를 보호해 주기를 기도하며 성모상을 감추어 두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11세기가 되자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마드리드를 탈환한 로마 가톨릭 병사들은 성벽 속에 숨겨 놓았다고 전해지는 성모상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후 기도의 날이 지나고 아침 해가 밝았을 때 성벽의 벽이 저절로 허물어지면서 성모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맞은편 계단을 올라가면 성모상을 바로 내 앞에서 만날 수 있다.


전통적인 고딕 양식과 현대의 심플한 건축양식이 조화로운 성당은 왕실의 보물과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화려한 실내 장식으로 많은 여행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 여행지인 왕궁은 왕실 성당인 알무데나 성당과 광장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다.



펠리페 5세가 어릴 적 머물렀던 파리의 루브르 궁전을 본떠 1753년부터 짓기 시작한 왕궁은 스페인의 다른 왕궁과는 달리 하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아주 밝고 날렵해 보인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얀 왕궁 안으로 들어가면 왕실이 소장했던 예술품과 테피스트리 그리고 보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스페인은 영국과 같이 입헌군주제로 현재의 왕실 가족은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사르수엘라 궁전에 주거하고 있다.


왕궁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한다.



광장 중앙에는 돈키호테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 곳은 다른 도시들과 같이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의 동상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국민들의 반대로 그 계획이 무산되고 돈키호테 동상이 들어섰다고 한다.  


돈키호테 옆에 있는 두 여인은 한 사람으로 오른쪽은 돈키호테의 상상 속 여인인 둘네시아이고 왼쪽은 빨래를 하고 있는 현실 속의 둘시네아이다. 델 토보소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인 둘시네아를 돈키호테는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으로 여기고 충성과 사랑을 맹세하였다.


당시 낭만적인 기사 문학은 중세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꿈꾸는 여인을 향해 거침없이 모험을 하는 기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꿈꾸고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드리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보탄을 찾았다.



헤밍웨이의 단골집이기도  보틴은 새끼돼지 통구이인 코치니요 아사도가 유명한 곳이다. 식당에 들러 겉은 바삭하고 안은 야들야들한 아기돼지를 입안에 넣는 순간 상상이상의 풍미와 맛이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음식과 함께 포도주에 소다수와 레몬즙을 넣어 만든 달콤한 샹그리아 한잔을 곁들인다면 끝이 보이는 스페인 여행의 낭만에 여행자는 저절로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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