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초월한 시간들
마드리드를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이 조금 지나서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스페인 최고의 공항답게 크고 복잡하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곳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표지판을 따라서 잘 이동해야 한다. 처음 온 여행자들은 수화물 찾는 곳을 지나쳐 공항 라운지로 바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공항을 나서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이동하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이 나온다.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의 몬세라트는 1230미터의 험준한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카탈루냐 지방의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몬세라트 중턱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은 기괴하면서 영적이다. 버스에서 내려 수도원의 입구로 입장하면 예수의 12제자가 내려다보는 세 개의 문이 보인다.
중앙의 세 개 문은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오른쪽 복도의 문은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보기 위해 입장하는 문이다. 대성당 제단의 정상에 있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복도 문으로 입장하여야 한다.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작은 목재 조각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검은 성모 마리아 조각상은 서기 50년 4대 복음 저자 중 한 명인 누가가 만들어 이곳 스페인으로 가져왔다. 711년 이슬람 세력인 무어 족의 침입이 있자 기독교인들은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몬세라트 굴인 산 코배에 숨겼다. 그 후로 750년간 무어족의 지배가 이어지자 검은 성모상은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어느 날 어린 양치기가 성모 조각상을 발견하였다.
당시 바르셀로나 대주교는 검은 조각상을 바르셀로나로 옮기려 하였으나 이 조그만 조각상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신도들은 검은 성모 마리아가 몬세라트에 남고 싶은 것이라 해석하여 이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지어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모셨다.
그 후 검은 성모 마리아상은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소문이 나면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그 결과 세계적으로 많은 성인과 교황이 이곳을 성지처럼 다녀갔고 많은 교회가 검은 성모 마리아상에 봉헌했다.
검은 성모 마리아상이 검은 이유에 대해서는 촛불에 그을려서 그렇다는 설과 나무에 바른 니스가 세월이 지나 조각상을 검게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수도원의 섬은 성모상을 직접 보았다면 다시 본당으로 들어가 화려하면서 품격이 넘치는 성당의 실내 장식을 감상하자. 운이 좋다면 1시에 하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영혼을 맑게 하는 소년들의 맑은 음악은 여행자를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데려간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산 코베와 산 요한 산책이다.
몬세하트 수도원의 아래에 위치한 산 코베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발견한 산코베 성당까지 걸어가는 산책로로 산 중턱에 놓여 있는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차례로 환희와 고통 그리고 영광의 조각상이 나온다. 맑은 공기와 심장소리도 들릴듯한 고요한 자연 속의 산책은 온몸이 정화되는 듯 지극히 상쾌하다. 30분의 맑은 산책 끝에 나오는 산 코베 성당은 작고 소박하지만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발견한 장소답게 영적이 기운이 넘친다.
수도원에서 250미터에 위에 있는 산 요한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높은 돌산 위로 전망이 뛰어나고 평화로운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하면 몬세랏 수도원을 배경으로 검은 십자가가 나타난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기독교의 영적이 거룩함이 어우러진 전망대에 서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고 20분 정도 내려오면 몬세라트 수도원이 나온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산책한 후 수도원에 있는 뷔페 식당으로 이동하여 가서 점심식사를 즐기자.
2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바비큐 고기와 다양한 샐러드 그리고 빠에야를 비롯하여 무한 리필의 맥주와 포도주를 곁들이다 보면 마치 한국으로 돌아온 듯 음식이 모두 입에 맞다. 맛있는 음식으로 점차 배가 불러오면 식당 창으로 보이는 장엄한 경치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식당을 나와 버스에 오르면 30분이 조금 넘어 오늘 머무를 포르타 피라 호텔이 나온다.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호텔은 공항과 시내 중간에 있지만 시내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화려한 아침식사는 덤이다.
호텔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후 지하철로 람블라스 거리 끝에 있는 포트 벨 항구로 이동한다.
포트벨 항구 입구에는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때 세운 콜럼버스 기념탑이 있다. 높이 60m의 탑 정상에서 미국산 파이프를 쥐고 서 있는 콜럼버스의 손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항해 시대의 전초기지였던 포트벨 항구가 나온다. 우아한 목조 다리를 건너면 낭만적인 바다를 배경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수족관을 비롯하여 음식점과 쇼핑센터가 들어선 복합 건물이 여행자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포트벨 항구를 나와 람블라스 거리로 올라오면 1970년대에 오픈한 플라멩코 전용 공연장인 코르도베스가 나온다.
안달루시아의 동굴식 타블라오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연장으로 입장하면 시간에 맞추어 공연이 시작된다.
가수와 함께 등장한 기타리스트의 애절한 기타 소리가 무대 위로 울리자 사람들은 숨죽인 채 연주에 집중한다. 무심한 듯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슬프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이 무대를 서서히 달구기 시작한다.
기타 독주가 끝이 나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 허스키한 목소리가 여행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가수는 오직 기타와 자신이 만들어내는 손과 발의 박자 소리에 맞추어 끝없는 향수와 슬픔을 노래한다.
노래가 끝나면 무대에 어둠이 내리고 댄스의 등장을 기다린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자 원색 옷을 입은 6명의 무희가 나와 춤을 추면서 관객을 흥을 돋운다. 그리고 그들의 신나는 무대가 끝나자 남성 무희가 등장한다.
무대는 일순간 정지된 듯 정적이 흐른다. 남성 무희가 때로는 절도 있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자 관객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압도당한다.
뜨거운 열기 속에 남성 무희의 춤이 끝나면 여성 무희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그녀는 격렬한 춤을 추다가 바닥이 부서져라 앞으로 내딛는 발동작과 마음을 헤집는 듯한 화려한 손동작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어서 남녀 무희가 어우러져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바닥을 구르는 강력한 발굽소리와 칸테의 끊어질 듯 흐느끼는 애수 그리고 기타리스트의 격렬한 리듬에 맡겨 남녀 무희는 하나의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한다. 주위의 무희들은 캐스터네츠와 박수를 치면서 올레를 외친다.
무대는 절정으로 치닫자 어느 순간부터 음악소리도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두 무희가 뿜어내는 원색의 실루엣에 흠뻑 빠져 여행자는 세상을 초월해 있다.
아라비아의 열정과 아프리카 원시의 향기 그리고 떠돌이 집시들의 깊은 슬픔과 격렬한 열정이 배어 있는 플라멩코는 여행자를 어느 듯 축복과 위로의 시간으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