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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14. 2021

프라하 산책

천년의 고도

국립 박물관을 배경으로 조성된 바츨라프 광장은 상점과 식당 그리고 호텔 등이 늘어서 있는 프라하 제일의 번화가이다. 광장보다 대로 같은 바츨라프 광장의 상단에 바츨라프 동상이 서 있다.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바츨라프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대가로 서기 935년에 암살당하였으며 이후 기독교 국가가 된 체코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바츨라프 기마상을 자세히 보면 기마상을 중심으로 4명의 보헤미아 성자들이 보인다. 그중 제일 앞의 왼쪽에 보이는 사람이 바츨라프를 기독교로 교육시킨 할머니이자 성녀인 루드밀라이다. 기마상 아래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체코 땅의 영도자이며 우리의 주군인 성 바츨라프여!!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소서.


이 말에는 체코의 격동의 식민지 역사가 담겨있다.


5세기 무렵 북쪽의 슬라브족이 세운 체코는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다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독립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나치당과 소련의 지배를 계속 받게 된다.


1968년 체코 사람들은 소련에 저항하여 시민 궐기를 일으키지만 200대의 탱크와 20만 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소련의 진압으로 <프라하에 봄>은 실패한다. 이후 소련의 감시가 더 강해지자 두 번째 <프라하의 봄>을 외치며 1969년 1월 16일 대학생인 얀 팔라흐가 이곳에서 분신자살하며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자살을 하는 이유는 소련이 미워서도, 프라하의 봄이 실패해서도 아니다. 단지 프라하의 봄이 실패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프라하 시민들에 화가 나서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얀 자이쯔가 같은 방식으로 자살하자 프라하 시민들은 다시 봉기를 일으키지만 이 역시 진압되었다.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나자 소련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1989년 12월 29일 체코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하벨 대통령과 두브체크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포옹하는 모습을 바츨라프 광장에서 지켜보았다. 체코 사람들은 이를 벨벳 혁명이라 부르는데 이는 혁명이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벨벳처럼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후 체코 공화국은 바츨라프 광장의 위쪽에 얀 팔라흐가 분신하였던 장소에 청동 십자가를 놓았으며 바츨라프 광장 중앙에 두 대학생을 기리는 무덤을 만들어 억압에 항거하며 자유를 지켜낸 그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광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구시가 광장이 나온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성 니콜라스 성당과 로코코 양식의 골즈 킨스키 궁전 그리고 고딕 양식의 틴 성당이 둘러싼 구시가 광장에 들어서면 구 시청사에 매달려 있는 천문 시계탑이 가장 눈에 띈다.



1410년에 설치된 천문시계는 현재 작동하는 천문 시계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시계는 위의 칼렌타륨과 아래의 플라네타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쪽 칼렌타륨안에 보이는 황금색 태양 바늘은 하루의 시간을 알려준다.


칼렌타륨의 가장 바깥 원에 새겨진 아라비아 숫자는 해가 진 시점을 중심으로 24시로 나누고 있으며 바늘은 해가 지기까지 남은 시간을 가리킨다. 위 사진에서 태양이 달린 손 바늘이 19시에 있는데 이는 해가 지기 5시간 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칼렌타륨의 양쪽에는 네 명의 인형이 보인다. 칼렌타륨의 왼쪽에 거울을 든 인형은 자만과 허영을 의미하고 금 주머니를 들고 있는 인형은 탐욕을 상징한다. 시계 오른쪽에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고 악기를 들고 있는 인형은 쾌락을 상징한다.


매시 정각이 되면 해골이 종을 치며 모래시계를 비스듬하게 기울인다. 그러면 그 옆에 있는 허영과 탐욕 그리고 쾌락에 빠진 인형들은 죽기 싫다면 머리를 흔든다. 동시에 시계탑 위에 있는 창문이 열리면서 12명의 사도가 행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배신을 상징하는 황금 수탉이 울면 이벤트는 끝이 난다.



아래쪽에 보이는 플라네타륨은 당시 사람들이 계절별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달력이다. 한가운데에 있는 프라하 성을 둘러싼 작은 원의 그림들은 월별로 농민들의 해야 하는 일을 보여준다. 플라네타륨 주위에 역시 네 명의 인형이 보이는데 왼쪽부터 책과 펜을 든 연대기 기록자와 대 천사 미카엘이며 반대편에는 망원경을 든 탐험가와 책을 펼쳐 든 천문학자로 당시 존경받는 위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시계탑 감상을 마치고 시계탑의 정상에 있는 전망대로 오르면 프라하의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천문시계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 각국의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할 수 있다.


구시가 광장을 둘러본 후 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베보두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즐기자.



식당으로 입장하여 차림표 중간쯤 1kg이라고 적혀있는 체코 전통음식인 꼴레노를 주문하면 훈제된 돼지족발요리가 나온다. 입에 넣는 순간 고기의 풍미가 흘러넘치는 꼴레노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2명이 먹어도 될 만큼 양이 많은 꼴레노는 1잔에 2천 원도 하지 않는 체코의 흑맥주 코젤과 찰떡궁합이다. 달콤하면서 시원한 코젤은 꼴레노의 풍미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느끼함을 잡아준다.


점심식사를 즐긴 후 구시가를 거쳐 프라하의 랜드마크인 카를교로 이동한다.



12세기 중엽에 건설된 카를교는 빈번한 홍수에 무너지기 일수였다. 이에 어떠한 물살에도 붕괴되지 않는 다리를 재건하라는 카를 4세의 명령에 따라 건축가인 피터 팔 레지가 완성한 다리로 그 이후에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516m의 길이에 두 개의 교탑과 16개의 기둥이 있는 카를 교는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30여 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그중 머리에 다섯 개의 별로 둘러싸인 네포무크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얀 네포무크는 남부 보헤미아 지방의 필젠 근처에서 태어나 바츨라프 4세의 사제가 된다. 바츨라프 4세에게는 소피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람을 피우고 죄책감에 네포무크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우연히 이 장면을 보게 된 왕이 네포무크에게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명령하지만 네포무크는 하느님과의 약속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여 거절한다. 격분한 왕은 네포무크를 카를교로 데려가 강으로 떨어뜨려 죽인다.


1323년 3월 20일에 일어난 실화이다.


다음 날 네포무크가 죽은 강에서 다섯 개의 빛줄기가 떠올라 강을 조사하니 네포무크의 시신이 나왔다고 한다. 현재 네포무크의 시신은 프라하 성 내에 있는 성 비타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카를 교에 있는 네포무크 동상 아랫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포무크가 왕비 소피아에게 고해성사를 받는 장면과 카를 교에 빠져 죽는 장면을 그린 두 개의 동판화가 있다. 동판화 속에 있는 네포무크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네포무크 동상을 지나면 네포무크가 죽임을 당한 장소가 나온다.



 장소에 네포무크가 빠져 있는 모습을 그린 동판 조각이 있다. 또한 동판 아래  다섯 개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네포무크가 죽기 전에 마지막 짚었던 이곳에 손가락 다섯 개를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카를교를 지나면 트램 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트램을 타면 프라하 성의 입구까지 갈 수 있다.


9세기 중엽에 짓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완공한 프라하 성은 현재 대통령 궁으로 사용하고 있는 궁전과 정원 그리고 성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프라하성으로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성 비투스 성당으로 이동하여 성당을 감상한다.  



600년에 걸쳐 완성한 성 비투스 성당은 프라하의 상징으로 높이 100m 길이 124m의 대성당이다. 고딕 양식으로 장식한 성당으로 입장하면 화려하게 장식된 성 바츨라프의 무덤과 네포무크의 무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알폰스 무하가 그린 현대적인 스테인드 글라스도 감상할 수 있다.  


성 비투스 성당을 나와 프라하 성안으로 들어가면 황금소로가 나온다.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색상의 작고 아담한 집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16세기 금속 장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이 거리 22번지에 있는 파란색 집에서 프란츠 카프카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 <변신>을 완성했다. 작품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평생 헌신했던 가족마저 자신을 버리자 쓸쓸히 죽어가면 삶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성을 한 바퀴 둘러본 후 프라하 성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방문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감상할 수 있다.



신학의 방과 철학의 방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을 둘러보고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전망대로 이동하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프라하 성을 내려와 구시가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해가 질 무렵 다시 카를 교로 향하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야경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프라하 성 주위의 수많은 불빛들이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프라하 성을 비추고, 별처럼 빛나는 프라하 성이 다시 강물에 자신을 비추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프라하의 여행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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