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여행

귀깔나는 삶

가이드 양성과정

by 손봉기

유럽여행 인솔 가이드 양성을 위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모집정원 30명의 학생들이 대부분 참석하고 있다. 60시간 강의 중 나에게 주어진 21시간의 반이 지나자 큰 딸 또래의 학생들과 한층 친해졌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6시간 수업의 강행군 속에 밀려오는 잠을 쫓아내며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자세와 태도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어설프게 가이드나 돼볼까라는 생각으로 양성과정을 신청한 학생들도 있을 법한데 수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커져가는 학생들의 열정과 진지함에 매일 놀라고 있다.


현실이 그만큼 고단하고 치열하다는 반증이다.


나 역시 많은 긴장과 부담 속에 영국 박물관 가이드에 대한 내용을 강의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개방적인 지형으로 인해 잦은 전쟁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는 달리 바다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들은 나일강의 규칙적인 범람과 매일 다가오는 낮과 밤을 보면서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살았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자의 서이다.


사자의 서는 미라와 함께 매장하였던 사후세계에 관한 안내서로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에 대한 생각들을 잘 보여준다.



영국박물관 64번 전시실에 있는 사자의 서의 주인공은 후네퍼이다. 그는 위쪽에 보이는 14명의 신 앞에서 자신이 생전에 살인과 폭행 그리고 절도, 강간, 거짓말과 같은 42가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예비심판을 통과한 망자는 그 아래에 보이는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의 손에 이끌려 저울 앞으로 간다.


저울 앞에 도착한 후네퍼는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리고 정의의 신인 마아트의 깃털과 균형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의 심장은 깃털보다 무거워 저울에서 떨어지게 되고 이때 저울 옆에 있는 괴물 암무트가 심장을 먹어버리면 죽은 자의 영혼은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저울 심판을 통과한 망자는 사자의 서 오른쪽에 보이는 매의 머리를 한 이승의 왕인 호루스의 안내를 받으며 저승의 왕 오시리스에게로 간다.


오시리스 아래로 카노푸스 단지가 보인다. 이는 죽은 자의 장기를 보호하는 단지로 이를 돌려줌으로써 죽은 자는 영원하고 평화로운 사후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사자의 서는 일상이 힘들더라도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산다면 평화로운 내세를 갈 수 있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믿음과 희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죽어서 가게 될 평화로운 내세는 어떤 곳일까? 그 답은 다음 방인 65번 전시실의 네바문의 벽화에서 알 수 있다.





네바문의 무덤에 있는 네바문의 벽화는 죽은 자가 자신의 생에서 누렸던 즐거운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벽화에서 네바문은 가족과 함께 나일 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아내와 딸이 강가에서 노는 동안 부메랑을 이용해 새 사냥을 하고 있다. 네바문의 아내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으며 향신료를 담은 연회용 머리 장신구를 하고 있다. 그 아래로 네바문의 딸은 네바문의 다리를 잡고 연꽃을 꺾고 있다. 네바문의 머리 뒤쪽 상형문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형문자가 보인다.



그는 사냥을 즐기며
영원한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즐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는 내세는 현세와 다른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현세가 연장된 세계였다. 그들이 꿈꾸었던 내세는 현세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꿈꾸는 내세였다.


영국 박물관 가이드 강의를 하면서 힘든 현재의 시간들이 죽음 뒤에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고 꿈꾸는 시간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내세로 꿈꾸기에는
지금 현실이 너무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부족해 보이는 이 순간들이 지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 될 것이라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면서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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