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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ul 16. 2021

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베니스

숙명적인 욕망의 도시

베니스에  도착하면 누구나 사랑에 빠진다.


호수 같은 바다 위로 일렁이는 에메랄드 빛 물결과 살랑거리는 곤돌라 그리고 무심한 듯 바다를 횡단하는 바포레토.

늘 반복되는 베니스의 일상이지만 이곳을 처음 방문한 여행자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바포레토를 타고 석호 위에 떠 있는 고색 찬연한 궁전과 성당 그리고 집들을 지나다 보면 누구도 베니스의 매력 앞에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는 화려한 건물과 바다가 내뿜는 싱그러움 그리고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는 것만으로도 베니스 여행의 절정을 맛본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가 476년 로마가 멸망하자 로마에서 도망친 무리들이 바다가 모래에 막혀 생긴 호수 위에  흙을 쌓아 만든 114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섬들을 400여 개의 다리로 이은 곳이 베니스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베니스는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베니스가 십자군 전쟁 이후 지중해 전체를 호령할 정도로 최고의 해상무역국가로 성장하다가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후 쇠락의 길을 가고 있을 무렵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들이 피땀으로 세운 섬들이 점차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베니스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화려한 건물들을 지으며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려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본다면 베니스의 벼랑 끝 아름다움에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때 이후로 배니스는 점차 가라앉고 있으며 한 때 여행자의 방문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사람들의 욕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베니스 여행의 백미인 화려한 건물 뒤로 이어진 작고 어두운 골목들을 지나다 보면 지구 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베니스 사람들의 운명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베니스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이 골목길을 걸으며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더불어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황홀감을 맛보기도 한다.  


뒷골목만큼 베니스의 매력을 주는 것은 성당이다.


진흙바닥이었던 이곳에 신약성서의 저자인 마가의 유해가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 바구니에 담겨 도착했을 때 베니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척박한 땅 위에 필사적으로 세운 자신들의 고향인 베니스에 구원의 상징인 마가의 유해가 도착한 것은 마치 천국이 열린 듯 베니스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렇게 세워진 성당이 성 마르코 성당이다.



2,0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성당의 중앙제단 아래에예수님의 승천 이후 혼란에 빠진 신도들을 위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알기 쉽게 이야기로 풀어낸 마가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곳에 들러 마가의 유해 앞에서 명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성 마르코 성당을 나오면 이전에 총독관저로 사용한 두칼레 궁전이 있고 궁전을 지나면 바다 너머로 산 조르주 마조레 성당이 보인다. 이곳은 사람을 잡아먹는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하고 공주와의 결혼을 마다하고 교회를 지어달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난 산 조르주 성인을 모시는 성당이다. 성당 뒤에 붙은 마조레는 <위대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 있었던 베로네제의 작품인 <가나의 결혼잔치>는 나폴레옹이 가져가서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명성을 날리며 전시되어 있다. 대신 성당 안에는 빛과 구도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가장 믿고 아끼던 제자들이 배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과 함께 만찬을 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사랑의 힘이 느껴진다.


틴토레토의 작품과 더불어 이곳 성당의 압권은 종탑이다. 종탑에 올라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가히 유럽 최고의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베네치아 도시를 둘러보고 미로 같은 길을 따라서 역으로 가다 보면 아카데미 미술관이 나오고 미술관 너머 산타 마그리타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5분 거리에 산로코 성당이 나온다.


전염병으로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가난하고 아픈 자를 돌보다가 그 역시 페스트에 의해 순교한 산로코는 이후 아픈 병자의 수호신으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페스트 등 전염병을 비롯하여 아픈 시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한 성당 옆의 대신도 회당에는 20년 넘게 작업한 틴토레토의 작품이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희망과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나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담은 천장 장식화와 죄 많은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일생을 보여주는 신약성서의 내용을 담은 벽의 장식화는 극적인 연출과 빛의 사용만으로도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베니스의 화려한 경관은 물론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하다 보면 매년 수 백만 명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베니스는 그 아름다움조차 허망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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