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여행

꼰대의 종말

아모르파티

by 손봉기

20년 동안 유럽 인솔을 하면서 많은 후배 인솔자들의 반대에 유럽 박물관과 미술관 인솔을 그만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요즘 트렌드가 먹방입니다.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유럽 박물관 미술관 인솔은 이제 인했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상념에 잠긴다.


지난 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해 일이 없어 시간을 허비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알고자 했던 부분이 무엇이며 내가 성취하고자 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싶었다. 특히 여행업을 평생 해온 나의 입장에서 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지, 여행을 가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많은 여행지를 글로 정리하면서 여행의 이유에 대한 답을 주는 곳이 박물관과 미술관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자연의 경이로움도 여행의 이유에 대한 답이 되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행의 목적이 넓은 세상을 보고 그 속에 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면 5천 년 세월을 보여주는 박물관과 미술관만큼 좋은 여행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유럽 인솔자 양성을 위한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인류 문명사와 서양 미술사가 결국 사람을 향해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신 중심의 중세시대를 지나 인간정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미술은 이후 왕과 종교세력을 위한 바로코 양식으로 진화하다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도래한 근세에 와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인 시민을 위한 미술로 탈바꿈했다.


왕과 종교를 위한 중세시대의 미술이 화려하고 입체적인 반면 장식과 허위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근대의 미술은 평면성과 본질만 남겨 놓은 미니멀리즘의 미술이었다. 그 바탕에 근대 시민혁명의 정신인 자유와 평등이 있었다.



자유와 평등에 기초하여 평면성과 본질만 남긴 근대 예술은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구 인테리어와 휴대폰에 남아 있다.


근대를 지나 백인과 남성이 이끌었던 1차, 2차 세계 대전이 참혹한 결과로 끝나자 현대 미술은 여성과 다양한 인종 그리고 성소수자 등이 공존하는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흑인 대통령과 여성 총리가 탄생하였으며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미술시장을 달구는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성소수자이다.


현대 미술은 다양성이라는 시대정신을 낳았으며 다양성에 기초하여 개인의 존엄성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정신을 보편화시켰다


오랜 시간끝에 서양 미술사를 정리했지만 내 안의 불안은 치유되지 않았다. 미술사가 신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다시 개인과 다양성으로 흘러왔지만 그 사실만으로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답은 주지 못했다.


그에 대한 지혜는 박물관에 있는 인류의 문명사에 있었다.


규칙적인 강의 범람과 매일 반복되는 밤과 낮의 변화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 뒤에 부활과 영생의 삶이 있음을 믿었다. 또한 죽음 뒤의 심판을 위해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는 삶을 살았다.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인 이집트와는 달리 사방이 확 트인 평야지대에 살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림들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카르프 디엠>을 외치며 지금 여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보여주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혜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인류 최초의 인문 소설가인 호메루스의 <오딧세이>에서 트로이 전쟁을 승리하고 그리스의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던 신들의 저주에 의해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홀로 고향을 지척에 둔 칼립소에 도착한다.


칼립소에서 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와 사랑에 빠져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지만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고향을 향해 다시 험난한 여행길에 오르고자 한다.


오디세우스와 이별을 앞둔 칼립소는 영원한 삶과 젊음을 보장하는 신의 음식인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건네며 오디세우스에게 신이 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영원한 젊음과 삶을 마다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한다.


신이 아닌 인간의 길을 간 오디세우스의 모습에서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준다.


오디세우스가 신이 되지 않고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을 추구한 이유는 신이 되어 맞이하는 영원히 반복되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느꼈던 사랑의 감정과 행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하면서 평화로운 삶 그 자체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오디세우스가 생각했던 고통보다 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영원히 젊고 영원히 사는 삶이 아니라 영원히 아프고 끝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칠흑 같은 절망도 지나고 나면 별처럼 빛나는 보석이 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산을 오르고 글을 쓰고 소주를 마신다.


이 고통이 언젠가 그리울 때쯤 되면 나 역시 존엄한 인간의 삶을 마감하고 고통이 없는 신의 세계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마음속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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