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여행

어벤져스와 외인구단

누구나 슬픔은 있다.

by 손봉기

강의를 마치고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살면서 처음으로 걸어보는 조방의 뒷골목은 부산의 가장 화려한 서면의 맨얼굴을 보는 듯 솔직하다. 화려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탕자처럼 조방의 뒷골목은 을씨년스럽지만 편안하다.



골목길을 헤매며 마음이 차갑게 내려앉자 대학 시절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구나 슬픔은 있다.



생소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잠시 길을 잃기도 하지만 방향만 맞으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전혀 불안하지 않다.


골목길을 정처 없이 헤매다 보니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보았던 만화가 떠오른다.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야구를 하다가 좌절하고 포기한 선수들을 불러 모아 최고의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이다.



어른이 되어서 누구나 만화 같은 인생 역전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직해서 회사를 다니다가 IMF로 다니던 여행사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었을 때 만화 같은 세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지방에 있는 조그만 여행사에 일을 하겠다고 오는 사림들이 없어 주위에 후배들을 불러 모아 여행사를 운영했다. 다행히 후배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회사는 성장을 했다. 물론 성장의 배경에 운도 있었다.


패키지에서 개별여행으로 변해가는 여행 트렌드에 우리 여행사의 주력상품인 유럽 배낭여행이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최고의 인재로 뭉쳐진 어벤져스가 아니라 무엇인가 하나씩 부족한 공포의 외인 구단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회사가 성장하고 전국구가 되자 사장인 나부터 초심을 잃어버렸다. 어벤져스의 회사처럼 인재를 영입하고 성장에만 집착하자 회사 구성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으며 회사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와서 이 모두를 덮어버렸다.



모든 해외여행 길이 막혀 있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외여행 인솔자 양성과정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최하는 인솔자 양성과정 교육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열의는 예상외로 뜨거웠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부터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분까지 80시간이라는 교육 시간을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다.


인솔자 양성과정의 마지막 사간은 발표와 평가시간이다.


그동안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신입사원 면접을 보았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는 늘 긴장되고 어려웠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나면 변명처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 회사에서 뽑는 분들은 최고의 인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합격이 안되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마시고 어디에서든 건강하게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인솔자 평가 및 선발 과정은 단순하다.


교육 참가자가 30분간 PT를 하고 난 후 교수님과 강사진이 A를 주면 AA로 합격이고 AB가 되면 추가 합격자 명단에 오른다. 물론 BB 이하면 선발되지 못한다.


앞서 대학생 인솔자 선발과정에서 한 분이 AA였는데 나이가 어려 철이 없다는 이유로 선발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고민을 했지만 결국 그분을 선발했다.

심사자의 편견으로 공정한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편견과 자기 고집에 빠져 있는 지원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회사는 공감과 배려 속에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을 통해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자기다움은 가지고 있지만 세상과 사람들 앞에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면접자는 지원자의 자세와 태도를 유심히 살펴본다.


최근 80시간의 일반인 교육 과정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60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은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가이드 꿈을 좇아오신 분들 그리고 정신과 육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벤져스가 아니지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발걸음을 내딛는 수강자분들에게 좋은 결과를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삶은 늘 좋은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으며 아픔과 고된 버팀 그리고 주위의 관심과 사랑으로 완성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벤져스를 꿈꾸지만 우여곡절 끝에 외인구단의 일원이 되어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낀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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