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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02. 2021

그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파리

평면성과 다양성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가장 감동하는 여행지는 에펠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에펠탑의 모습에 그동안 꿈꾸어왔던 파리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에펠탑 다음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는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비너스와 모나리자를 감상한다.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이 두 작품의 제작연도가 천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모두 놀란다.



서양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비너스는 금방이라도 옷이 흘러내릴 듯한 육감적인 몸매와 차갑고 이성적인 얼굴의 조화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지나 기독교와 봉건영주가 지배하는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이탈리아 전시관 입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중세시대, 기독교를 위해 존재했던 미술 작품에서 사실성과 입체성은 보이지 않고 오직 상징적인 성경 속 이야기만 보인다. 하지만 성화가 가지고 있는 기품과 색감은 어느 시대 작품들 못지 않게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천년 동안의 중세가 끝나고 15세기에 와서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예술을 꽃피웠던 최고의 걸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이다. 다빈치는 윤곽선을 지우는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으로 인간의 기품 있고 신비스러운 미소를 창조했다.



17세기 기독교가 세속화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가톨릭은 신교에 맞서 가톨릭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웅장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는 프랑스 절대왕정으로 와서 베르사유 등 화려한 궁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은 루벤스의 <마리의 일생>이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출생으로 앙리 4세와 결혼하여 파리로 온 마리는 앙리 4세가 요절하자 프랑스를 다스렸으며 오랜 다툼 끝에 자신의 아들인 루이 12세에게 왕권을 넘겨주며 스위스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루벤스 특유의 화려한 색과 웅장한 스케일로 그려진 <마리의 일생>운 그녀가 마치 신과 같이 살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18세기가 되자 유럽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원근법과 명암법 등 온갖 기법으로 화려한 장식을 하였던 왕과 귀족의 문화에서 탈피하여 자신들에게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기존의 지나친 장식과 기교를 배제한 심플한 평면성이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오르세 미술관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이다.



작품에서 마네는 원근법에 기초한 입체성을 버리고 트럼프의 여왕처럼 인물을 평면적으로 표현하며 근대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 신화나 역사가 아닌 현실의 모습을 과감 없이 그려내면서 당시의 신진 화단으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인상파의 문을 연 사람이 마네라면 인상파를 지나 현대 예술의 문을 연 사람은 세잔이었다.



그의 작품 <사과와 오렌지>를 보면 사과는 위에서 보이는 부분과 앞에서 보이는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사과의 색은 여러 가지 색으로 완전한 사과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를 계승한 현대화가가 피카소와 마티스이다.


파리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를 방문하면 두 화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피카소의 작품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에서 피카소는 사람의 앞면과 옆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주며 인간의 눈과 뇌는 사실 사물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세잔의 사과에서 여러 가지 색을 발견한 야수파 화가 마티스는 색만으로도 화가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작품 <루마니아 풍의 블라우스>에서 평면적이면서 단순한 색만으로 품위 있는 여인의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 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자신감이 넘치던 서방 세계는 전 세계를 재앙으로 몰고 간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백인과 남성 중심의 문화에 심각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인종과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가 주도하는 현대 미술을 창조시켰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성 소수자다.



고흐만큼의 강렬하면서 심플한 색감과 자신의 철학을 투영한 그의 작품에서 현대 미술의 주인공은 화가가 아니라 관객이며 관객 스스로가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이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임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퐁피두 센터를 방문하면서 서양 미술의 역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서양미술사는 형식적으로는 평면성을, 내용적으로는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면성과 다양성은 오늘날 시대정신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이폰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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