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섬
아무도 모르는 부산의 구석진 섬에 태어나서 늘 그림자처럼 소외된 삶을 살다가 어머니의 치열한 삶 덕분에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도 갈 수 있었던 나는 어디 사냐고 물으면 영도라고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가장 가난했으며 그 덕분에 학교폭력으로 유명한 중고등학교가 있었으며 고깃배를 타고 한 번씩 들어와서 집안을 폭풍처럼 휘젓는 아버지가 많았던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도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 당신 모두의 삶을 투신한 부모님을 만나 나는 그 불행을 비켜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태종대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자살바위가 공존하고 일제 강점기에 의도적으로 고갈된 산이라 고갈산이라고 불렸지만 최근 신선이 산다는 원래의 이름을 찾은 봉래산이 중심에 있는 영도는 그림자 섬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온 말을 길렀던 이곳은 그 말이 얼마나 날쌘지 그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절영도라고 불렸다가 영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큰 배가 지나가면 다리를 올렸던 영도다리는 지금도 그 큰 다리를 올리며 영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어릴 적 부모님들이 말을 듣지 않고 생떼를 부리는 자식들에게 너는 영도다리에서 주워왔다는 협박을 할 정도로 영도 다리 밑에는 사창가와 점집이 많았다.
또한 다리만 건너면 시청을 비롯해 자갈치시장과 고급스러운 대형 극장 그리고 백화점이 있었던 영도는 가난으로 허기진 배를 움켜진 채 눈 앞의 욕망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영도는 시작부터가 가난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전국의 피난민들이 땅 끝 마을인 이곳으로 몰려와 1 지역 2 지역이라고 이름 진 곳에 판자촌을 형성하며 살면서 영도는 사람들의 안식처로 자리잡았다.
역사적 삶의 골이 깊은 영도에 태어나고 자란 나는 가난과 폭력의 속살이 부끄러워 다른 사람이 물으면 영도가 문화의 중심지라고 뻔뻔하게 우기며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도는 천진난만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에서 피난처를 제공했던 마지막 삶의 보루였다.
구석진 곳이라 발전이 늦었던 영도는 최근 아름다운 자연과 그늘진 삶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동물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변화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오륙도가 보이는 바다 배경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카페가 들어섰다.
어쩌면 영도는 내가 지금까지 우겼던 문화의 중심지로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치열한 삶의 역사가 담겨 있는 영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과 위로를 주는 관광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럽의 도시들처럼 빠른 변화 속에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영도가 보존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영도는 나에게 삶의 정체성과 원형을 부여한
고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