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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05. 2020

퐁피두 센터 2

세상의 주인은 나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하나는 실제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의자의 사진이며

또 다른 의자는 글로 적은 의자이다.

작가는 제목을 <하나이면서 세개의 의자> 라고 붙였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의자는 어느 것일까?

실제의자 아니면 사진속의 의자일까?

또는 언어속의 의자일까?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의자는 여기에 없다.


그러면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의자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우리 생각 속에 있다.



누구나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의자가 있다.

그래서 종이와 펜을 주고 그 의자를 그려보라고 하면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의자를 그린다. 하지만 모두 같은 의자를 그릴까?  


사람마다 의자의 크기와 색깔 그리고 질감이 다른 의자를 그릴 것이다. 심지어는 의자를 그리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소파와 사무실용 의자 그리고 학습용 의자까지 다양하게 그릴 경우가 많다.


의자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현대 미술의 한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데 바로 개념미술이다.


현대의 화가들은 근대의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가식이 없은  <평면성>을 완성했다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여전히 입체적인 형상이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잭슨플럭의 작품에서 먼저 뿌린 것과 나중에 뿌린 것 사이에서 높낮이가 존재하고 로스코의 빨간 색과 검은색 사이에 역시 입체성이 보인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이들 작품으로는 2차원적 평면성을 완전히 실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현대 화가들은 화가가 캔버스에 무엇을 그리는 순간 그 속에 사람들이 어떤 허상을 찾는다고 주장하며 물감과 캔버스를 버렸다. 대신 그들은 의자 같은 <사물>을 전시하였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눈에 비치는 실재 형상만 있을 뿐 거짓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평면성을 추구하며 가식적인 입체성을 없애려는 회화는 회화자체를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현대 미술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화된 의자 자체를 전시한 미니멀리즘에서 더 나아가 <의자>라고 쓴 글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실제 의자와 <의자>라고 쓴 글이 입체적인 거짓 형상을 제거하는데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로 인해 현대예술은 아름다움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언어마저 전시하면서 개념미술로 나아갔다. 근 현대 미술사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근대회화는
왕과 귀족을 위한 입체적이며 화려한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에서 벗어나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이 주인되는 사회에서
가식적인 입체성을 버리고 평면적인
사실주의와 인상파로 나아갔고
이는 야수파와 입체파를 거쳐 추상주의에 도달하였다.
이후 추상주의는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을 거쳐
개념미술이 되었다.


개념미술은 예술가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미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예술이다. 이는 1차세계 대전 이후 나타난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화가인 뒤샹의 생각과 완벽히 똑같은 주장이다. 이제 그들은 전통적인 조각이나 회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 후로 현대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무엇이든 제약없이 사용하였다.


우리가 아는 행위예술이나 설치미술은 개념미술의 한 종류이다. 물론 여전히 회화와 조각을 사용하는 현대의 예술가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많은 도구 중의 하나로 회화와 조각을 사용하였다.


한편 현대 미술은 개념미술이라는 형식적인 변화와는 별도로 내용적인 면에서도 혁신을 이루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컸다. 그 이전까지 서구문명은 백인 남성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합리적인 판단이 천만명을 죽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당시 예술가들은 더 이상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유색인종과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등이
주도하는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었으며
지금 현재 가장 인기를 누리는 영국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성 소수자이다.


이러한 현대 예술의 경향은 사회전반적 분위기로 확산되어 현대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미국에서는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또한 대중매체의 영화나 오락 속의 주인공은 더 이상 백인 남성이 아니라 흑인과 여성이 되었다.


내가 존중을 받으려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양성은
현대의 시대 정신이 되었다.


이제 5 층 전시실 복도에서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감상하자.




무제


작품을 보면 받침 없는 선반 열 두개가 벽에서 하나씩 튀어나온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전의 예술이 하나의 대상을 표현하는 일이었다면 여러 개의 대상들을 한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는 아연도금으로 만든 12개의 선반에 같은 붉은 산업용 페인트를 칠하여 하나의 개체로 보이게 하였다.


작품의 요소는 총 23개이다. 계단 12개 사이에 공간 11개가 있기 때문이다. 각 계단은 세로폭이 22.8센티미터이고 22.8센티미터만큼 떨어져 있다. 작품에는 기존의 조각처럼 달리 계층이 없다. 작품의 상부나 하부가 동등하다. 그러나 모든 계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결합되어 통일적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저드는 이 작품을 선보이면서 아직도 허위적인 입체형상이 보이는 추상표현주의가 보여준 감성적 회화와는 결별하였다.


그는 사물을 단순화하여 그 사물이 가지는 본래의 이미지만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관람객을 현혹하는 모든 요소들을 작품에서 제거했다.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손길이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으며 제목 또한 무제라고 붙였다. 이제 그의 작품은 근대 미술이 이룩하려던 목적인 가짜 형상은 사라지고 사물 자체에서 느끼는 질감만으로 단순화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미니멀리즘 화가들은 근대이전의 가식적이거나 장식적인 삶에서 벗어나 단순성을 추구하며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 4층으로 내려와 1번방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개념미술 작품을  감상하자.


코뿔소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이 만든 것으로 형태적인 디테일이 없어도 이 조각이 코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대상의 외형적 특성을 실재처럼 표현하기보다는 대상의 본질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그는 모든 디테일을 없앤 후 생략과 절제로 단순화시켜서 추상적인 본질만 남게 하였다. 남겨진 몸체는 심플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의 조각품으로 탄생한다  



4층 5번방에서 마르샬 레스의 작품을 감상하자.


그랑 오달리스크


이 작품의 원작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그 작품은 바로 신고전주화가인 앵그르가 1814년에 그린 <그랑 오달리스크>이다. 당시 앵그르는 여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오달리스크의 인체를 변형시켜 허리를 길게 그렸다. 당시 비평가들은 척추에 뼈가 세 개나 더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루브르에서 아직도 많은 관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마르샬 레스는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를 차용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앵그르가 그린 오달리스크의 얼굴부분을 1964년 처음 나온 복사기를 이용해 확대 복사하였다. 또한 오달리스크의 몸에는 녹색의 형광색채를 입혔으며 머리에 쓴 두건에는 실제 장식품을 달아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리고 검은색 윤곽으로 눈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작품을 통해 기존 회화에서 보여주는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고급예술을 풍자하며 비판하였다. 그의 풍자는 작품 속 머리 위에 앉은 파리에서 완성된다.


그가 작품에서 사용한 다양한 실제 장식품과 달콤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는 물질문명을 좋아하는 우리 삶의 이중성과 물질적 허무를 보여주고 있다.


4층 10번방으로 이동하여 아감의 작품을 감상하자.


살롱 아감


야코프 아감은 전쟁 이후 모든 일상용품을 근대적 예술적 디자인으로 채우려는 바우하우스의 훈련된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이다.


그는 197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퐁피두 대통령으로부터 엘리제 궁전에 있는 개인 아파트의 대기실을 디자인할 것을 요청받았다. 이 작품은 그 때 디자인한 것으로 살아 있는 그림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퐁피두 대통령이 사망한지 1년 후인 1976년 퐁피두 대통령의 미래 비전이 담겼던 퐁피두 현대 미술관이 완성되자 이 작품을 퐁피두에 전시하였다.



형형색색의 색감으로 디자인한 방의 벽과 천장은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움직인다. 벽의 색상은 900가지이며 각 색상은 점차 옆의 다른 색깔로 변형되어 잔 물결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살아 있는 이 색상들을 무지개라 불렀다. 특히 오른쪽의 벽은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별을 상징한다. 또한 천장의 유리 패널은 낮이 밤으로 가는 동안 하늘에서 변화하는 색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시각적 변화는 음악적 리듬을 가지며 <색상의 교황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공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4차원을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관람객들에게 존재하는 것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이미지가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4층 13번방으로 이동하여 주세페의 작품을 감상하자.


호흡기 롬브라


조각가인 주세페 페노네는 작품의 주제로 항상 나무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무를 통하여 자연과 생명을 소중함을 강조했다.


작품 속 황금비율로 지어진 방에 들어가면 중앙에 청동으로 만들은 앙상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 안에 자연의 향기가 넘쳐난다. 그 비밀은 네 면의 벽에 금속 그물로 고정된 수천 개의 월계수 잎에 있다.



수천개의 월계수로 장식된 벽에서 신선한 자연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월계수는 사랑하는 젊은 여성을 상징한다. 한편 벽의 한 면에는 황금 황동으로 만든 한 쌍의 폐 조각이 보인다.


작가는 방안에 있는 두 그루 나무를 인간으로 표현하였으며 벽은 자연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벽에 두개의 폐를 상징하는 금색의 청동 조각을 달아 자연은 우리에게가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는 작품에서 시각이 아닌 후각을 주제로 인간에게서 더 많은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 후각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21번 방으로 이동하여 커다란 거미조각에서 모성애를 담은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스 브루주아의 작품을 감상하자.


귀중한 액체


화가는 10미터 높이의 초대형 거미조각인 <마망>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을 지닌 <마망>은 배에 알을 가득 품고 가느다란 다리로 지탱하고 있는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에서 이 작품을 보면 엄마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밖에서 보면 알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강인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자전적인 그녀의 작품에서 작가의 불우한 어린시절을 연상할 수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니를 배신하고 자신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깊이 증오했다. 또한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그녀가 예술을 시작하자 천박한 직업이라고 했다.


그 이후 예술가가 된 그녀는 작품에 인간의 배신과 걱정 그리고 외로움을 담았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과 사랑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 등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풀어 냈으며 노년에는 치유와 화해의 의미를 담은 꽃 드로잉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녀에게 예술 작업은 개인적인 두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이자 치유와 용서의 과정이었다. 이제 작품안으로 들어가보자.



어둡고 폐쇄된 공간안에 소중한 액체가 담긴 유리 용기들이 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웅덩이가 있는 침대가 있다. 침대에 고인 물은 유리 파이프를 통해 내려가면서 증발한다. 침대 근처의 벽에는 젖통 모양의 두개의 공이 보이고 그 위로 거대한 남자의 옷이 보인다. 그 반대편에 소녀의 셔츠가 보인다. 소녀의 셔츠에는 <감사합니다. 머시>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출산을 상징하는 두 개의 공 위에 있는 남자의 옷은 억압적이며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상징하고 그 앞의 소녀의 셔츠는 자신의 모습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 동정심을 느끼는 아이를 상징한다. 그리고 액체를 담은 유리병에는 정자와 소변 그리고 땀과 눈물들이 담겨 있다.


이는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면 우리 몸에 흐르는 사랑과 두려움 그리고 즐거움과 고통을 상징한다. 작품의 입구를 나서면 입구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예술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한다.



현대의 주인공은 나.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대미술에서 주인공은 미술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보고 자신의 감각을 자유롭게 느끼는 개인이 되었다. 그래서 현대 미술의 최고의 가치는 작품과 그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와의 소통에서 나온다.


결국 현대 미술의 목표는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그 작품을 보는 관람자가 작품안에서 자신의 감각을 자유롭게 탐구하게 하는 것이 되었다.


현대의 시대 정신인 <다양성>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인종과 성별 그리고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시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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