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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08. 2022

런던 공항의 짐 분실

땀 눈물 그리고 허탈


깜깜한 어둠을 한 개씩 헤쳐간다. 어둠을 극복할 바코드는 HYERYON이다. 하지만 갈수록 어둠은 무리를 이루며 무한대로 뻗어간다. 그 안에 내가 찾는 바코드는 점점 소멸되어가고 외부와 연락할 핸드폰마저 마지막 칸의 빨간빛으로 깜빡인다.


13시간 동안 질릴 정도로 좁고 갑갑한 의자와의 사투 속에 서울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돈이 많으면 누워올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죄인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오는 자본주의의 첨단을 보여주는 비행기에  적응한 지 벌써 20년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늘 유럽에 도착할 때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 휴대폰을 켜는데 불길하게 메시지가 하나 뜬다.



당신의 고객 중
한 명의 짐이 길을 잃었다.



고객중 한 분의 캐리어가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캐리어가 왔지만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안 왔다는 이야기이다.


공항 안에 있는 짐 분실 창고로 가서 일하는 분의 친절한 안내로 검고 플라스틱 재질의 캐리어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분실신고를 했다. 또한 이틀 뒤면 파리로 가니 런던의 호텔로 그 안에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캐리어 없어 공항을 나서서 호텔로 향했다.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되었지만 캐리어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파리로 가야 해서 조급한 마음으로 직접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분실 증명서를 보여주자 모든 사람들이 기둥에 달린 전화기를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둥 위 편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자신의 캐리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확인이 되면 직원이 나와 캐리어가 있는 장소로 데려가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나 역시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2번 이상 전화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  


폭염에 1시간이 넘는 공항열차를 타고 다시 1시간 넘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절망을 넘어 분노가 일었다.


2층에 있는 해당 항공사 사무실에 갔지만 그들 역시 기둥에 있는 전화기로 가라며 자신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전화기로 와서 통화가 되지 않는 전화를 붙잡고 화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담당자가 나타나 연락이 된 사람의 이름을 외친다. 반사적으로 다가가 분실 증명서를 보여주니 함께 가자고 한다.


기적적으로 연락된 분 덕택으로 공항 시큐리티 지역으로 공항에 도착한지 3시간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화물은 해당 항공사의 하청업체에서 처리하고 있었으며 몇 안 되는 하청업체 직원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분실 짐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담당자를 따라 여권과 소지품 검사를 마치자 짐 벨트가 도는 구역으로 들어왔다. 곧바로 분실 신고를 한 창구로 가서 분실 증명서를 보여주니 기다리라고 한다.  


30분을 기다리자 7번 벨트 근처로 가면 가방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쁜 마음으로 7번 벨트로 갔으나 눈 앞이 깜깜해졌다.

벨트 양쪽으로 분실되어 버려진 가방이 200개가 넘었고 벨트에서는 계속해서 짐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분실 짐택의 바코드가 일치하는 가방을 하나하나 수색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짐 분실한 고객과는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고 휴대폰 배터리마저 빨간 경고등으로 변해 있어 전화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1시간이 넘는 사투 속에 검은색 플라스틱 가방을 수색했지만 내가 가진 바코드와 일치하는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 배터레는 이미 방전된지 오래이다.


다시 1시간의 수색에도 캐리어가 보이지 않자 다시 창구로 가니 담당 직원은 7번 벨트만 외친다.


시계를 보니 2시에 공항이 도착했는데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깜깜한 어둠에 길을 찾는 심정으로 다시 수색을 시작했지만 가방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낙심한 채 공항을 나서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재킷이 있는 가방을 뒤지는데 마침내 바코드가 일치하는 가방을 찾았다. 머릿속에는 환희의 찬가가 울렸다.


배고픔도 잊은 채 공항에 도착한 지 6시간이 지나있었다.


의기양양한 심정으로 가방을 찾아와서 고객에게 돌려주니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가방을 들고 방으로 간다.  


맥주 한잔으로 저녁을 대신하자 3년만에 찾은 런던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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