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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25. 2022

1시간의 황홀함

부속품

주야를 번갈아가면서 공장의 부속품처럼 일을 하다 보니 귀가 멀기 시작했다.  청력과 더불어 자존감이 바닥으로 멀어질 무렵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처럼 복종하지 않는다고 나를 나가라고 말한다.


감훈의 <칼의 노래>를 필사할 목적으로 당근 마켓에서 구입한 만년필은 생활의 고단함으로 온 데 간데없다.


2주간 야간을 할 때는 몸이 녹초가 되어 그나마 술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주간으로 돌아가면 이틀에 한번 잠이 들기까지 술을 먹는다. 시차가 맞지 않아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바닥절감한다.


노동자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지방으로 가서 6명이 함께 쓰는 숙소이다.  


점심시간은 휴게실 대용으로 에어컨이 나오는 대형버스가 있어 그나마 견딜만 하다.


하지만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하러 가는 24시간의 시간 속에 개인적인 사생활은 없다. 가족이 새 아파트로 입주해 빌린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일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 아내와 아이가 약속이 있어 집에 혼자 남아 김광석 노래를 틀어놓고 황석영의 <장길산>을 읽고 있는 그 한 시간의 황홀함에 뜨거운 눈물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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