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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un 16. 2023

자기로 사는 삶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인 에르타미주 박물관을 방문하여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대학 때까지 교회를 다녔던 나는 고등부 크리스마스 무렵 <돌아온 탕자>를 가지고 연극을 했다. 반항심 가득했던 나를 비롯한 고등부 친구들은 탕자의 회개보다는 방탕하고 자유로운 생활에 중점을 두며 연극을 했다.


연극도중 장로님이 무대로 올라오셔서 사탄의 자식들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날로 우리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에르타미주 박물관의 <돌아온 탕자> 앞에 서면 깜깜한 검은색 배경이 먼저 사람을 경건하게 한다.


정적이 도는 검은 배경이 여인과 노인이 보이는 희미한 벽으로 점차 밝아지고 마지막 화면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탕자를 밝게 비추면 작품 속으로 관람자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술과 여자 그리고 노름 등으로 유산을 다 써버리고 돌아온 탕자가 수염을 기르고 반 실명 상태의 아버지의 품에서 후회를 하고 있다.


황금빛의 옷을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며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으로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온화한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는 누더기 속옷을 걸쳤다. 그리고 낡아 빠진 샌들 위로 벗겨진 상처투성이 왼발과 삭발한 머리는 그의 고난을 보여준다. 탕자와 아버지 곁에서 탕자의 형은 못 마땅한 듯 부자를 노려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빛으로만 사랑과 용서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서 있었다.


렘브란트는 젊어서 초상화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점차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사물의본질을 보여주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로부터비난과 미움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자신의 부인과 아들마저 먼저 죽고 많은 재산을 탕진한 그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그의 초상화에는 과장하지 않고 늙고 주름진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손에 들고 있는 붓과 팔레트는 늙고 병들었지만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렘브란트가 불행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았듯이 고흐와 베토벤 등 위대한 예술가들은 말년에 불행 속에서 살았다.


고흐는 죽을 때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한계에 이르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었다.


베토벤 역시 그의 역작인 <합창>은 귀와 눈이 완전히 멀어진 가운데 완성했다.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환희는 살아있을 때 영광을 누렸던 그 어느 음악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 <운명>에서 빠바바밤~ 이라고 울리면 어느새 모든 사람은 자세를 바로잡고 긴장한다.


렘브란트와 고흐 그리고 베토벤 등 인류의 위대한 걸작을 이룩한 그들은 자신의 생애에서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서 불행했지만 사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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