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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4. 2020

가우디

신의 건축을 이해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사람이 가우디이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우디의 손을 거쳐 탄생한 건축물이 거리 곳곳에 있다.


가우디가 한창 활동하던 19세기 후반 바르셀로나는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으며 이를 보여주는 새로운 건축물들은 장미 빛 미래로 자신들을 데리고 갈 것처럼 반짝거렸다.


산업화의 주체인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부로 도시를 무한히 확장하며 건물들의 정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았던 가우디는 밝고 생명력이 강한 모더니즘의 정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자신의 건축세계를 이어나갔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신고전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자연을 닮은 건축물을 바르셀로나에 선보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이다.

 

<카사>는 스페인 말로 집을 말하며 밀라와 바트요는 건축을 의뢰한 주인의 이름이다. 바르셀로나의 최고 큰 대로인 그라시아 대로를 사이에 두고 같은 시기에 지어진 두 집의 형태는 판이하게 다르다.


동쪽 방향을 향해 지어진 <카사 바트요>는 갖가지 화려한 장식으로 빛나지만 서쪽 방향의 <카사 밀라>는 어떠한 장식도 없이 하얀 벽만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지중해 특유의 햇빛 때문이다.


해가 뜰 때만 잠시 빛이 들고 항상 해를 등지고 있는 <카사 바트요>는 화려한 장식으로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반면 하루 종일 해를 보고 있는 카사 밀라는 굴곡이 있는 단순한 벽으로 장식하여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도록 건축하였다.


만약 카사 밀라를 카사 바트요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였다면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카사 바트요


1877년 바르셀로나 섬유업계의 성공한 사업가인 조셉 바트요는 자기가 살고 있던 집의 개축을 가우디에게 맡겼다. 1904년부터 시작한 공사는 2년 만에 완성되었다.


건물을 새롭게 짓는 것이 아니라 개축을 해야 했던 가우디는 건물의 외관을 두고 한참 고심했다. 그리고 바트요에게 어린 두 자녀가 있음을 고려해서 전설 속의 나오는 <성 조지>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건축물에 담기로 결심했다.


<성 조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마을에 사나운 용이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용에게 매일 양을 바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용은 마을 사람들을 먹이로 요구했고 백성을 사랑했던 왕은 결국 공주를 괴물에게 바치게 되었다.


그때 성조지가 나타나 용과 엄청난 싸움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성 조지가 용을 창으로 찌르자 용의 피가 장미로 변하며 용은 죽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공주와 결혼을 허락하였으나 성 조지는 작은 교회 하나만을 지어달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성 조지>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가우디는 지붕을 용의 비늘로, 굴뚝을 성 조지가 용을 죽인 창으로 표현하였으며 지붕 아래의 테라스는 용의 피에서 탄생한 장미모양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아래의 기둥과 테라스는 용이 먹었던 짐승의 뼈와 해골 모양으로 표현하며 올록볼록한 외관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여러 가지 색깔의 유약을 칠한 색유리 조각을 입혀 반짝거리는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표면으로 장식하였다.  또한 옆집인 카사 아마르예르 집과 조화를 위해 원래 계획보다 탑의 높이를 줄이고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옮겨서 후 옆 집의 지붕과 이어지는 느낌으로 설계해 완성했다.



카사 밀라


<라 페드라> 채석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그라시아 거리에서 건축한 건물 중 마지막 작품으로 가우디의 건축 스타일이 가장 잘 요약된 작품이다.


카사 밀라의 주인인 페드로 밀라는 역시 섬유업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밀라의 아버지와 바트요의 아버지는 한 때 동업자였다. 카사 바트요에 매료당한 밀라는 공동 주택 건설을 가우디에게 부탁했다.


1906년 공사를 시작하여 4년 후에 완성된 카사 밀라는

거리의 코너에 있어 삼면으로 되어있었던 공간의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해 직선 없이 곡선으로 삼면을 연결시켜  입체적이며 자연스러운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건물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곡선의 건물 표면 곳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진 듯한 검은 선이 보인다. 이는 철제로 건물의 뼈대를 먼저 만든 후 그 위에 조각된 돌을 붙이는 최신 공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찰흙을 손으로 눌러서 만든 것 같은 물결치는 건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둥근 발코니는 휘어진 강철로 장식하며 건물의 완성도를 높였다.  



카사 밀라의 압권은 옥상에 있는 굴뚝과 출입구 그리고 환기탑이다. 로마 군인의 투구를 연상시키는 굴뚝은 하나 또는 서너 개씩 무리 지어 있다. 그리고 하얀색 타일로 장식된 비상구 계단 구는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환기탑이 옥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초록색인 샴페인 병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우디는 연기가 꼬여서 올라가기 때문에 환기탑을 나선형으로 만들었다.


카사 밀라는 가우디 평생의 경험과 꿈을 쏟아부은 곳이지만 건축과정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집의 구조를 두고 건축 내내 그와 밀라는 항상 충돌하였으며 심지어는 건축비를 지불하지 않아 7년 간의 긴 법정 공방까지 벌려야 했다. 결국 가우디는 카사 밀라를 끝으로 그 어떤 사적인 의뢰도 받지 않았으며 성 가족 성당 건축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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