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쇠퇴
급격히 성장하는 여행사의 사장인 나로서 가장 감당이 안 되는 것이 돈 관리였다.
여행상품의 특성상 상품 가격이 높아 큰돈들이 회사 통장을 통해 들어온다. 하지만 이중 대부분은 고가의 항공권과 호텔 비용으로 다시 나간다. 그래서 한 해에 회사 안에서 흘러 다니는 돈은 몇 백억이 되지만 이 중 수익은 매우 적다. 그런데 많은 중소 여행사 사장님들은 이를 관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적으로 사용하다가 도산하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회계 상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몇 백억의 자금관리는 밤잠을 설치게 하였다. 나를 비롯한 구성원들 중 누구 하나 실수로 비용을 틀리게 정산해도 아무 표가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체계적이고 투명하지 않아 늘 불안했다. 더욱이 우리 회사의 관리부장은 학교 후배로 믿을 수 있는 친구지만 그 역시 이렇게 큰돈을 관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200인 이상의 IT 회사에서 CFO로 있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돈의 흐름을 잡고 투명성을 높이려면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그리고 현금흐름표로 만들어진 중소기업 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후 회사의 관리부장과 잘 협의해서 1년 만에 회계시스템을 사내에 정착시켰다. 당연히 돈의 흐름도 잡혔고 회사의 투명도도 높아졌다.
체계적인 회계시스템 외에 지속적인 회사의 성장은 회사 구성원들의 열정에서 나왔다. 당시 키워드 외에 별다른 홍보가 없었던 우리가 가장 크게 공을 들였던 마케팅은 입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한 번 다녀온 고객들이 만족하여 주위에 소개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마케팅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소문 마케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에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인솔자들의 능력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인솔자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인솔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인솔 교육을 진행하였으며 인솔자들의 고객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를 갖추기 위해 인솔비와 인솔 휴가 등 최대한의 복지에 신경을 썼다. 무엇보다 다른 여행사들과 달리 인솔자들을 모두 정직원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인솔자들은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고객을 인솔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고객을 리드하는가 하면 때로는 뒤로 물러나서 고객 스스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회사 홈페이지에는 고객이 직접 쓴 여행 후기가 1900개가 달리게 되었다.
여행후기는 우리 여행사를 선택하기에 망설이는 고객들에게 확신을 주는 마케팅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 단체사진과 개인 사진을 틈틈이 찍어서 여행을 다녀온 뒤 찍어둔 사진을 편집해 달력으로 만들어 모든 고객들에게 보냈다. 달력이 집마다 도착하는 날이면 기수별 단톡 방에는 고맙다는 인사와 여행의 즐거움 그리고 추억으로 다시 한번 웃음꽃이 폈다.
또한 여행을 다녀와서 한 달 안에 정모를 하는데 대부분의 고객이 참석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이후 분위기가 좋은 팀은 계속해서 모임을 이어간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신청 고객의 절반이 다녀오신 고객의 소개에서 나왔다.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회사의 몰락은 나의 조급한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회사가 높은 성장을 하며 30명이 넘는 회사 구성원이 생기자 나는 오히려 조급해졌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전쟁과 테러 그리고 전염병 등 대내외의 악재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행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새로운 사업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을 잘하는 구성원으로 전략 기획부를 만들어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해 나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남미 단체배낭여행>이었다
당시까지 우리는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만 전념했다. 우리의 원칙은 하나였다.
모든 여행상품을 팔겠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팔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자.
남미 상품은 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자라는 회사의 전통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전략 기획부와 사장인 나를 제외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새로운 사업을 반대했다. 그중 남미가 위험하고 스페인어를 못하면 인솔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던 나는 전략기획부와 함께 남미 사업을 밀어붙였다.
전략기획부의 엄청난 마음고생과 위험을 무릅쓴 노력으로 1년 만에 남미 상품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회사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후 이 성공이 회사의 가장 큰 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