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야 멀리 간다.

바보야. 문제는 마음이야.

by 손봉기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남미 사업을 성공시킨 나와 전략기획부 구성원들은 흥분했다. 그리고 나는 인솔을 위해서 남미로 출장을 갔다. 그런데 남미 여행은 유럽여행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다.


첫 번째가 예방접종이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우유니 사막을 가려면 볼리비아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 접종 카드가 필수인데 이 주사를 맞으면 삼일 이상 머리가 아프고 몸살을 앓아야 한다.


두 번째는 비행시간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남미까지 직항이 없어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유럽을 경유하여 남미를 가야 한다. 그런데 비행시간이 무려 24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좁은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멕시코 항공이 우리나라에 취항을 해서 비행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막 힘든 점은 고산병이다. 남미 여행의 최고 여행지인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을 여행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그런데 이 지역들의 고도가 3천 미터가 넘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고산병을 앓는다. 현지에서 예방약을 먹고 산소통을 구비하지만 모두 산소의 결핍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현지 일정을 가능한 천천히 진행한다. 이 기간 동안 금주는 물론이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도 안된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남미 여행이 가능하다. 물론 여행경비도 비싸고 여행기간도 15일이 넘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미 여행은 일생에 한번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미 여행을 포기하기에는 남미에 세계 최고의 여행지가 너무 많다. 남미에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이 있으며 이과수 폭포와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있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우유니 사막이다.


소금 사막인 우유니는 우리나라 경상남도 만한 크기로 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오직 파란 하늘과 하얀 사막만이 나타난다. 그동안 도시에서 할 수 없었던 세상 끝까지 마음껏 달려볼 수 있다. 그리고 지치면 차를 멈추고 우유니를 걸으며 그 무한한 경치를 온몸으로 즐긴다.



우유니 사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여의도 크기의 호수이다. 이 곳은 우기에만 생기는 곳으로 하얀 사막 위로 무릎 정도의 물이 고이는데 그 물이 너무 맑아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장화를 신고 거울 안으로 들어가면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나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반사된다. 그 장엄하고 신비한 풍경에 여행자는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곧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유나 사막에 노을이 지면 그 형형색색의 붉은 노을이 남김없이 물 위로 펼쳐진다. 마치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한쪽면에 물감을 발라 다른 면에 그대로 찍는 데칼코마니 같다. 그 끝없는 황홀경에 내가 살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막 위로 어둠이 내리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면 호수는 여지없이 그 별들을 물 위에 펼친다. 그러면 나는 위와 아래에 가득한 별들 속으로 걷게 된다. 중력만 없으면 그 자체가 우주다. 그리고 여행과 인생의 모든 고단함을 보상받는다.



남미 출장을 다녀온 나는 전략기획부에 남미 사업을 영업부에 넘기고 새로운 사업을 다시 주문했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분히 시간을 가지고 전략기획부를 중심으로 남미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과 역량을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남미 사업을 반대한 구성원들에게 남미 사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했다. 그래야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함께 갈 수 있었다.


당시 새로운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장을 보면서 회사 구성원들은 마음을 많이 다쳤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닫은 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남미 상품은 물론 회사의 근간이었던 유럽 상품의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전략기획부에서 새로운 사업을 제출했다. 여행 플랫폼 사업이었다.


당시 여행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플랫폼 사업이 미래 사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숙박 플랫폼 사업인 <Booking. com>을 비롯하여 배달과 상품 등 가격비교를 하며 업체와 고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사업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었다.



전략기획부는 우리의 강점을 이용하여 전 세계에 있는 현지 도심 투어와 박물관과 미술관 티켓 그리고 유럽 현지 교통권 등을 파는 판매업자와 여행객을 연결해 여행자가 여행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여 상품을 구입하는 플랫폼 사업을 제안했다.


너무 방대한 사업이라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꼭 사업이 완수되지 않아도 중간에 어떤 돌파구가 나오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사업을 승인했다. 역시 대다수의 회사 구성원들은 반대를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밀어붙였다.


이후로 회사의 역량이 플랫폼 사업으로 집중되면서 당연히 기존의 배낭여행 상품은 지속적인 개선 없이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플랫폼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계속적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자 내부 구성원들은 당장이라도 새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략기획부는 남미 사업을 예를 들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버텼다.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새로운 사업을 단념시킬 수 없었던 나는 1년 동안 임금과 사무실 운영비용을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전략기획부를 분사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플랫폼 사업은 우리 회사 규모로는 감당이 안 되는 능력 밖의 무모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제대로 된 플랫폼 터미널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그것을 홍보하는데 최소 백억이 넘게 투자되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또한 사업의 주체들이 IT 전문가가로 채워졌어야 했는데 우리 회사에는 단 한 명의 IT 전문가도 없었다. 새로운 사업 외에 기존 마케팅을 담당했던 전략기획부가 사무실을 차려 나가자 회사의 공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회사에 남아 있는 구성원들은 힘이 떨어져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했다. 회사는 점차 마이너스 성장을 하며 회복할 수 없는 곳까지 추락하고 있었다.


회사가 생사의 기로에 서자 나는 분사한 전략기획부에게 돌아와서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이야기했으나 그들 역시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가자고 하였다.


회사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절반이 넘는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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