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알면 답이 보인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나는 회사의 성장 문이 닫힌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해법을 함께 찾아야 하는 회사의 구성원들의 대부분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의도로 시행한 자율 근무제와 수요일 조기 퇴근제는 무너지고 있는 회사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여행 상품을 판매하다 보면 시기적으로 바쁜 부서가 있는가 하면 한가한 부서가 있다. 그런데 구성원들은 서로 배려하지 않고 4시든 5시든 정해진 규칙대로 칼 퇴근을 했다. 또한 조기 출근과 수요일 조기 퇴근을 합해서 점심도 먹지 않고 12시에 퇴근하는 구성원도 늘었다.
모든 것이 회사가 정한 규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조기 퇴근을 하는 것에 모든 구성원은 꺼리김이 없었으며 당당했다. 그로 인해 회사는 일을 해주고 그만큼의 보수를 받는 직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율근무제와 수요일 조기 퇴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구성원들 간의 업무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있었다. 회사의 일은 서로 협력해야 하는데 일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한 시간에 퇴근하고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반대의 상황이 일어났다.
또한 바쁜 사람은 조기 퇴근하는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입장이 바뀌면 자신 역시 똑같이 행동했다. 이제 구성원들은 서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미워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회사의 일상이 되었다.
물론 회사를 챙기지 않고 미래사업에만 몰두하는 사장이 그 대상의 1 순위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모두의 불만 속에 지난 5년 넘게 시행했던 자율근무제와 수요일 조기퇴근제를 접어야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시스템과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보다 세밀한 업무 일지와 업무 규칙 그리고 인센티브 시스템을 준비하여 같이 실행하지 않은 사장의 잘못이 가장 컸다. 경영은 사장의 선한 의도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알게 되었다.
회사 내 시스템을 정리한 나는 그나마 열정이 남아 있는 구성원들과 함께 회사의 매출이 떨어진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가 집중해야 하는 핵심 고객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문제가 회사가 성장 못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회사는 너무나 다양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너무 많은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결과 고객의 만족도는 물론 회사의 전문성과 경쟁력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남미 상품을 접었다. 그리고 20대부터 50대 고객까지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다양한 유럽 상품을 정리해야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자유여행과 가이드 여행이 섞여 있는 우리 회사의 단체배낭여행 상품은 참가하는 고객의 연령층에 따라 그 요구가 달랐다. 20대와 30대 초반의 고객들은 가이드보다는 보다 많은 자유 시간을 원했고 30대 후반 이상의 고객들은 자유시간보다는 더 많은 가이드를 원했다. 당시 회사는 양쪽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왕좌왕하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만족을 못 주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쪽이든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격론 끝에 자유시간보다는 더 많은 가이드를 원하는 고객에 맞추어 상품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장기적으로 젊은 고객들은 여행 플랫폼을 이용한 자유여행을 점차 선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30대 이상 고객에 초점을 맞추고 나니 20년간 사용했던 <단체배낭여행>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최근의 트렌드인 <세미 패키지>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세미 패키지>의 이름에 맞게 호텔의 등급도 기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했으며 도심 별 특식도 추가해야 했다. 그렇다고 상품 가격이 턱없이 비싸서는 안되었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충족해야 했다. 상품이 확정된 후 실무와 마케팅에서 나보다 유능한 친구들을 중심으로 상품을 출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유럽의 주요 관광지와 박물관과 미술관을 직접 가이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상품을 출시하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고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상품이 2주 전에 마감되었으며 더 이상 인솔할 사람이 없어 추가 상품을 내지 못하였다. 그 덕분에 회사는 1년 목표 매출에 반을 1분기에 달성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모두들 놀랐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회사 내 구성원들의 눈빛과 신뢰의 분위기가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운명의 여신은 아직 우리 편이 아니었다. 4월이 되자 코로나가 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