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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an 08. 2021

옥토버 페스트

가을의 싱싱함이 감도는 10월에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 시즌이 되면 뮌헨은 꽃과 벌들의 꽃밭으로 변한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다양한 색감의 원피스로 구성된 드린딜을 입은 여자들과 빨간 체크무늬에 가죽 멜빵으로 만들어진 레더호젠을 입은 남자들이 뮌헨은 물론 인근 지역까지 넘쳐난다.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한껏 고무되어 숙소를 나선다. 세련된 외투와 선글라스만이 현대를 상징한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테레지엔비제 >로 중앙역에서 지하철로 한 구간이다. 테레제 공주의 잔디밭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곳에서 1810년 10월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여 경마 경기가 열렸다. 이후 이 잔디밭은 10월 맥주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맥주 축제를 위해 뮌헨의 유명 맥주 회사들이 세 달 전부터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빅 텐트를 세운다. 또한 축제에 참여하는 맥주는 시중에 유통되는 맥주보다 알코올 함량을 1도 높인 특별한 축제용 맥주를 준비한다. 축제 기간 동안 팔려나간 맥주는 평균적으로 약 700만 잔으로 1년 소비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옥토버 페스트는 화려한 마차와 악단이 뮌헨 시내 7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시가행진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지하철로 축제의 장으로 이동하는데 지하철역은 2012년 월드컵이 열리는 서울의 모습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만 2012년 월드컵과는 달리 지하철 역 안은 붉은 악마를 표시하는 붉은색 대신 울긋불긋한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로 총 천연색 꽃밭이 된다.


축제의 장소에 도착하면 뮌헨 소재 맥주 양조장들인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비롯하여 뢰벤브로이,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하커프쇼르, 슈파텐브로이 등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6곳의 빅텐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6개의 빅 텐트 중 슈파텐브로이의 텐트에서 뮌헨 시장이 첫 맥주통을 개봉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1397년에 설립돼 1807년부터 제들마이어 가문이 맡아서 운영하는 슈파텐은 1922년에 슈파텐과 프란치스카너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브로이가 되었으며 1997년에 뢰벤브로이와 합병해 슈파텐 프란치스카너 뢰벤브로이 그룹이 되었다. 대표적인 슈파텐 뮌헨 맥주는 맑고 청량한 맛으로 잔기교가 없어 100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을 깨끗함을 보여준다. 옥토버 패스트 기간 중 슈파텐 천막에서는 평소보다 1도 높은 알코올 농도 5.9도의 맥주를 판매한다.



다음 빅텐트는 아우구스티너이다. 1328년에 아우구스트 형제회 수도자들이 설립한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회사인 아우구스티너는 500년 역사를 이어오던 수도원의 양조장이 1803년에 민간으로 넘어갔고 1829년에 다시 바그너 가문에 인수되면서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바그너 KG 가 되었다.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아우구스티너 헬레스는 가벼운 맛에 섬세한 거품을 지니고 있어 갈증을 해소에 최고의 맥주이다. 9천 석 규모의 천막을 가진 아우구스티너 브로이에서는 알코올 농도 6도인 아우구스티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1417년에 문을 열고 수백 년 동안 역사를 이어오던 레스토랑 알테스 하커 하우스는 18세기에 이르러 딸 마리아 테레지아 하커와 주조장 직원 요제프 프쇼르가 결혼하면서 맥주 회사 하커 프쇼르 브로이가 되었다. 오늘날 하커 프쇼르는 파울라너 맥주 회사의 브랜드로 합병되었다. 하커 프쇼르 옥토버페스트 메르첸은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캐러멜 향이 느껴지는 맥주이다. 하커 프쇼르 천막에서는 알코올 농도 5.8도의 맥주를 판매하는데 이 맥주는 옥토버페스트에서 판매되는 맥주 중 가장 약한 것이다.



왕실 양조장으로 유명한 호프브로이는 1589년에 바이에른 대공 빌헬름 5세가 직접 세운 곳으로 현재 바이에른 주 정부가 운영하는 맥주 회사이다. 처음 이 회사가 설립된 장소에서 운영되는 비어홀 호프브로이하우스는 뮌헨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소이다. 18세기 후반에는 모차르트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당시 뮌헨에 거주하던 레닌이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또한 1919년에는 뮌헨의 공산당 정부가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당사로 삼았으며 1920년대 초에는 히틀러와 나치가 당의 주요 정책을 발표하는 장소로 이곳을 이용했다고 한다. 옥토버페스트 기간 중 호프브로이는 알코올 농도 6.3도의 가장 강한 맥주를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막에서 판매한다.



뢰벤브로이의 역사는 14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19세기에 브라이 가문이 회사를 맡으면서 뮌헨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독일어로 뢰베는 사자를 뜻하므로 뢰벤브로이는 사자의 주조장이라는 의미이다. 독일식 필스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뢰벤브로이 오리지널 맥주는 황금빛을 띠며 안정적인 거품과 고소한 보리향으로 기본에 충실한 맥주이다. 옥토버페스트에서 꼬리를 흔들며 포효하는 거대한 사자가 있는 천막에서 뢰벤브로이는 알코올 농도 6.1도의 페스트첼트와 쉬첸페스트첼트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성인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의 기사단 수도원이 1634년에 처음으로 맥주 주조를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파울라너 맥주로 발전했다. 수도원에서 소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파울라너의 슈타르크 비어는 숙성이 잘되어 빨간 색조의 탁한 호박색을 띄며 풍부한 거품과 몰트 향의 풍미가 좋아 도시의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질 때 뮌헨 시민들에게 판매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축제 기간 중 파울라너는 알코올 농도 6도의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판매한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축제에 참가해도 8개의 빅 텐트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보면 중간에 한 번씩 텐트가 열린다. 화려한 애드벌룬들이 천장을 수놓고 중앙에 브라스밴드가 홀이 떠나가라 연주하는 텐트에 들어서면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저마다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웃고 떠들고 마시고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노래가 나오면 테이블 위로 올라가 목청껏 노래 부른다. 마주하는 사람이 누구든 큰 웃음으로 맞으며 잔을 높이 들고 건배한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매년 이 시기 옥토버 페스트를 찾는 이유는 화려한 빅 텐트가 주는 흥겨움과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색다른 맥주에 있다.



빅 텐트 주위에는 빅 텐트에 입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회전목마와 대 관람차 그리고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 80종을 포함해 다양한 식당과 서커스, 팬터마임, 영화 상영회, 등 남녀노소가 함께할 수 있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 200여 개를 운영한다.



그중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에 들른다면 뮌헨의 명물 흰 소시지와 훈제 족발요리인 학센을 맛볼 수 있다. 흰 소시지는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소시지 특유의 고기 맛을 간직하고 있으며 족발은 겉은 딱딱하나 안은 부드럽고 훈제 특유의 향이 배어 있어 맥주와 곁들이기에 최고이다.


축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여행자라면 뮌헨 시내에 있는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추천하다. 1895년 빌헬름 5세에 의해 왕실 양조장으로 만들어진 호프브로이는 왕궁의 맥주를 제조하는 곳으로 이곳의 문양은 왕관 모양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홀인 이곳은 1층과 2층 그리고 정원을 포함해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깊은 술맛과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는 유명한 세 가지 맥주가 있다.



흑맥주와 오리지널 맥주 그리고 흰 맥주이다. 맥주는 발효균을 바닥에서 발효하는 하면 맥주와 위에서 발효하는 상면 맥주로 나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맥주는 하면 맥주이다.


호프브로이를 대표하는 오리지널 맥주는 하면 맥주로 처음 마시면 걸쭉하게 입안에 쫙 달아 붙으면서도 시원한 목 넘김이 좋다. 흑맥주 역시 하면 맥주로 오리지널보다는 진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반면 흰 맥주는 상면 맥주로 옛날 바이에른 군주들이 보리 맥아의 생산을 독점하고 가격을 통제할 때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밀로 만든 맥주이다. 흰 맥주는 밀의 부드러움과 함께 상면 맥주의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



호프브로이 역시 중앙에는 브라스 밴드가 있어 흥겨운 연주를 한다. 세계적인 맥주홀이라 독일민요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민요들을 신나게 연주하며 여행자의 흥을 돋운다. 여행자들은 자기 나라 음악이나 잘 아는 독일 음악이 나오면 모두 일어서서 합창을 하고 때로는 탁자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춘다. 호프 브로이하우스의 흥겨운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브라스 밴드가 보이는 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곳에서 세계인들과 함께 취하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독일의 밤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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