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과 삶의 이면에 귀를 기울이기

한정선의 스미는 목소리

by tout va bien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죠.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외치는 소리들, 타인을 설득하려 드는 날카로운 주장들, 그리고 공허하게 흩어지는 디지털의 소음들까지. 그 소란스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와 그것을 온전히 받아내는 ‘고요한 귀’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글들은 바로 그 지점, 말과 말 사이의 여백과 소외된 이들의 낮은 숨소리에 주목하며 독자의 마음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옵니다. 브런치 글을 통해서 알게된 한정선 작가의 글이 그렇습니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구석, 혹은 누구나 겪지만 쉽게 발설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들을 ‘스미는’이라는 단어로 포착해냅니다. ‘번지다’가 공간적인 확장을 의미한다면, ‘스미다’는 깊이의 영역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슬픔이 어느덧 옷깃을 적시고 살을 지나 뼛속까지 닿는 과정, 저자는 그 고통의 전이 과정을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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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적인 것은 ‘목소리’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입니다. 그녀의 산문집『스미는 목소리』에서 목소리는 물리적인 음성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세상을 향해 내비치는 가장 정직한 흔적입니다. 작가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이들의 눈빛에서 목소리를 읽어내고, 굳게 다문 입술의 떨림에서 서사를 발견하죠.


이러한 통찰은 작가 특유의 정교하고도 절제된 문체를 통해 빛을 발합니다. 과도한 형용사로 감정을 과잉시키지 않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그 상황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의 글은 또한 '기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스러져가는 것들, 잊히기 쉬운 찰나의 순간들을 문장으로 고정하는 행위는 고통스럽지만 숭고한 작업입니다.


살아내기 위해 잡히지 않는 빛살을 더듬고, 살아가기 위해 시뻘건 상처를 드러내야 했다. 그것들이 글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 다정일 수 있을까. 그걸 읽어 내어준다면 그게 담겨 있다면 조금은 덜 부끄러울까.


한정선 작가는 소멸해가는 것들에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서술자로서의 책무를 다합니.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내 안의 묻어두었던 목소리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도 이런 마음이었지"

"나도 이런 소리를 내고 싶었지"

이런 공감과 자각은 곧 자기 자신과의 화해로 이어집니다.


산문집 후반부를 관통하는 정서는 ‘연민’이 아닌 ‘동행’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아픔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위로를 건네는 대신 그 아픔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타인의 목소리가 내 안의 고독과 만나 공명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가 시작된다는 것을 작가는 몸소 보여주는 것이죠.


‘스미는 목소리’는 그렇게 치유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타인의 아픔이 내게 스며들어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역설적으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행위가 결국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길임을 작가는 나지막이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공감의 능력’에 대한 강력한 복원 선언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소음들을 음악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책. 책을 덮고 나면 비로소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창가에 부딪히는 빗줄기 소리, 곁에 있는 사람의 깊은 날숨, 그리고 무엇보다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진솔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까지.


한정선의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가늘게 핀 바늘자국처럼 남을 것입니다. 아프지만 그 자리를 통해 새로운 생의 에너지가 흘러 들어옵니다. 삶이 팍팍하고 스스로의 존재가 희미해진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은 독자의 영혼에 조용히 스며들어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넬 것입니다.


"당신의 목소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이미 스며들어 있다"고 말이죠.


이 책을 추천하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스미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심리와 육체 상태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조울증, 우울, 사회적 소외감 등 개인의 고통과 현실을 사실적이고도 내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독백에 몰입하는 순간, 독자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위안을 얻는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섬세하게 탐구된 ‘나’의 고통은 결국 우리가 직면한 정신적 불안과 정체성을 정직하게 응시한다._tout va bien



바늘로 촘촘히 상처를 덧내서 완성한 문신 같은 글.

아릿하고 아름답다.

바늘 같은 고통을 뚫고 나온 다정한 문신이 있다면 한정선의 글이 그렇다.

-이명수(부축 응원자·심리 기획자)


무덤덤한 아픔과 부지런한 기쁨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정선. 그의 단상이 머무는 현재란 미래의 담보나 과거의 유보로 정산될 수 없는 깊고 조용하고 단순한 틈새다. 무거운 처방약 앞에 의연하지만 사소한 슬픔을 마땅히 두려워하고, 힘겹게 몸을 세우지만 오타쿠 대사를 비장하게 읊조릴 줄 아는 틈새 속 마음들. 슬픔과 여유를 껴안은 그의 마음을 좇다 스며든 포근함이란!

-변재원(작가·장애인권 운동가)


작가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심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던 시절,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존재하기 위해서, 쓰면서도 다 헛되고 무의미하다고 한숨짓다가도, 그래도 나는 나를 기록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마음을 따라갔다.

슬픔에 민감하다.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을 때 단지 이기적인 분통인지 아니면 근원적인 슬픔인지를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세상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슬픔을 들여다보고 애통해하는 사람들 곁에 서려 애쓴다. 슬픔은 나쁜 게 아니다. 잔혹한 현실이 나쁜 것이기에 그로 인해 부서지고 무너지고 갈라지고 금이 가고 깨어진 존재들의 슬픔을 응시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사랑은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비인간 동물까지, 차별과 배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에게 가 닿아 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 될수록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가 커진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인 고통에서 사회적 시선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골몰의 근원은 같지만, 관찰의 결과는 다채로와서 그 하나하나가 몸을 관통하고 굴절해 투명한 스펙트럼이 드러나는 글쓰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정선 작가는 『헤드라인제주』에 칼럼 ‘작은사람 프리즘’을 연재 중입니다. 공저 브런치북으로 출간된 <전지적 언니 시점>(파람북,2022), <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길>(소명출판,2022)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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