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53화
생 레미 성당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지은 성당으로 루터와 칼뱅이 선도한 종교개혁에 상반한 가톨릭 신자들의 열정이 이룬 결실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파괴되고 허물어져 현재는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정면 부분에 자리한 성상들은 거의 날아가 버렸고 먼지가 빗물에 절어 새까만 때로 변해 성당 건물 외벽 전체를 시커멓게 뒤덮어 흉측하기까지 하다.
종탑은 원래 하나만 지었는지 고딕 성당에서 흔히 보는 파사드 정면에 자리한 두 개의 종탑 대신 종탑 하나만이 외로이 서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성당 내부 천장의 교차 천장과 천장의 무게를 떠받치며 위로 솟은 기둥들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거기에 더해 기둥머리 장식도 중세 조각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고딕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기둥머리 장식과 교차 천장은 어떻게 돌을 쌓아 천장을 이어갔을까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제단 한쪽 부분의 천장은 곧 무너져 내릴 듯이 손상되어 얼기설기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물들이 정신 사납게 다가오기도 한다. 19세기에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만이 온전한 상태로 영혼의 울림을 전달할 뿐이다.
영적인 성소라 할 수 있는 성당은 묵상과 기도와 미사가 치러지는 중세 가톨릭 신자들이 이른바 천국이라 여긴 성소에 해당한다. 이런 성당이 중세 때 곳곳에 세워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한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신자들은 매일 미사에 참석해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지은 죄를 고해해야만 했다. 그래야만이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었으며 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중세 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육신의 소멸을 뜻하면서 동시에 영혼이 천국에 이르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했기에 중세 신앙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천국에 이르는 것을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와 이제는 정반대 편 거리 끝에 위치한 생 자크(성 야고보) 성당으로 발걸음을 뗀다. 화창한 오후 햇살에 점심을 즐기던 이들도 사라진 채 카페 데 트리뷔노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광장 카페여서인지는 몰라도 저녁엔 문을 닫는다 했다. 어차피 저녁은 해안가의 식당에서 굴 요리를 즐기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한산해진 퓌살레 광장을 뒤로하고 생 자크 거리를 걸어간다. 길 끝에 위치한 성당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특유의 화염 양식에 기초한 돌 건축물이 위엄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순간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때 마지막 입가심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한다는 것이 그만 맥주로 대신했기에 커피 생각이 더 간절했다. 마침 문을 연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니 갹송[1]은 문 닫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도시는 모두가 일찍 문을 닫는구나 생각할 즈음, 낯선 여행객이 안쓰럽게 생각되었는지 일하던 청년이 실내를 정리하던 일을 멈추고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를 뽑아 낯선 객에게 내민다.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오래 지체하면 안 된다는 말 한마디뿐 더 이상 대꾸가 없다.
그 친절함으로 단숨에 커피를 들이마시고는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낯선 이방인에 익숙한 사람들, 영국인, 벨기에인, 독일인, 덴마크인, 심지어는 우크라이나 관광객까지 디에프에서 만났다.
개를 끌고 산책하듯 도심을 거닐던 남녀는 나와 아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옆을 차지하고 앉아서 핸드폰을 붙들고는 누군가와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모두가 두 남녀를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젊은 사내나 여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이 한적한 시골에 올 생각을 했을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분명 육로로 왔을 것이 분명한데, 이 한적한 도시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온 것일까? 그 순간 갑자기 호텔에서 마주쳤던 우크라이나 단체 관광객들이 떠올랐다. 조국이 전쟁터로 변한 상황에서 어떻게 단체 관광을 즐길 수 있었을까? 이건 또 어떤 상황인가? 의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
카페테라스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과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신들은 비즈니스 관련 일 때문에 프랑스를 찾아왔고 자신들의 개는 오로지 고기만 먹는다는 아주 기막힌 정보를 들려주었다. 오래 얘기하면 함께 망신살이 뻗칠 것 같아 대화를 단념한 채 식사에만 전념해야 했던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1] 예전에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을 부르던 일반적 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