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81화
[대문 사진] 쥬미에쥬 노트르담 대성당
냉기가 가득하다. 전기난로를 켠다. 이틀 연속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징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젊고 건강한 탓에 한 겨울의 냉기쯤은 견뎌 내리라고만 생각한다.
포도주 한 잔으로는 체온이 올라가지 않는다. 나는 너무 간과한 것인가? 이 정도면 한기쯤은 이겨내리라 자신했던 것인가? 기침을 쿨럭이는 밤이 계속된다. 세상은 중국 우한 발(發) 폐렴으로 시끄럽다.
기침을 쿨럭이는 동안 나는 한 자도 써 내려가지 못한다. 써 놓은 글만 되풀이 읽고 있다. 세상은 점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1]의 공포에 사로잡혀간다. 견디다 못한 나는 드디어 방안 온도를 높이고자 전기난로를 튼다.
호텔방에서도 방안의 냉기를 좀 줄여보고자 히터를 틀었다. 그러자 기침이 잦아들었다. 건강은 노력한 만큼 회복되는 법이다. 노력하지 않는 자는 밥 먹을 권리도 없다는 냉혹한 말이 떠오르는 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1세기는 더욱 나누며 사는 세상이어만 할 것 같다.
이 시대야말로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어야만 한다. 따뜻한 온기를 안고 사는 세상,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고 살아야 할 필요성은 세상의 냉기가 가져다준 준엄한 명제다.
또다시 떠나야 할 길을 떠올린다. 915번 도로는 잊어버렸다. 오로지 13번 고속도로만이 희미한 잔영으로 남아있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일찍이 수많은 이들이 찾아갔을 길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모두 길 끝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명제를 하나씩 얻었을 것이다. “폐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유적.” 이 말은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나는 그 폐허를 보고자 길을 나선다.
폐허로 남은 절터를 찾아가던 이들은 폐사지에서 무엇을 보고자 함이었을까? 폐허뿐인 수도원 유적지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자 함일까? 또한 무엇을 얻고자 함일까? 길을 떠나기 전 의문은 계속된다.
이제도저제도 유럽인들은 유럽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로 향한다. 그들은 폐허유적을 돌아보고자 섬들 곳곳을 누빈다. 나는 지금 프랑스 폐허유적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쥬미에쥬를 향해 길을 떠난다.
이들이 확신하고 있는 중세의 가장 숭고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쥬미에쥬 수도원의 폐사지로 향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시작과 끝, 밀물과 썰물, 꽉 참과 텅 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떠올린다. 그 이중의 변주는 내 사고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법 없이 한데 용해되어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떠올려 줄 것이다.
[1] 세계보건기구(WHO)는 처음에 중국 우한발 폐렴으로 시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이나 우한이란 국가명 또는 지역명을 붙이지 말아줄 것을 전 세계 언론에 호소하다가 지쳤는지 ‘코로나19’로 표기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후로 언론들은 신종 전염병을 코로나19로 통칭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약자로 코비드(COVID)19라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