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84화
[대문 사진] 쥬미에쥬 노트르담 대성당 입구
쥬미에쥬에 처음으로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서기 654년의 일로 이 지역에 새로운 수도원을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던 때, 프랑크 왕국의 왕비였던 바틸드가 건축비를 대고 이를 필리베르 성인이 수도원 건축을 착공하면서부터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 누르시아 태생의 베네딕투스가 베네딕트 수도회를 창설함과 동시에 ‘일하고 기도하며 영성을 전파하는’ 수도원 강령이 채택되면서 전 유럽에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뻗어나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기독교가 공인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부패한 수도원의 재건은 로마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도들에게 제일의 과제였다. 부패와의 고리를 끊고 독자적인 힘으로 수도원을 운영하려 했던 베네딕트 수도회는 이때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다.
그러나 841년에 이르러 프랑스 북서쪽 지역에 침공한 바이킹들에 의해 아름답고도 비옥한 세느 강가에 수도원을 세우려던 프랑크 왕국의 목표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바이킹들은 우연히 정말 우연히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으로 흘러 들어왔다. 소문에 의한 것이든, 정말 우연에 의한 산물이든 바이킹들은 노르망디와 세느 강 연안에서 겨울 눈 속에서도 파란 싹을 틔우는 밀과 목초와 풀들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이 경이로운 발견은 이 땅에 대대적인 바이킹들의 침입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대서양 연안과 세느 강 연안을 떼를 지어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을 일삼고 수도원들을 약탈하고 불 질렀으며 심지어는 이곳저곳에 정주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그 뿌리내린 거대한 나무가 줄기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 것이 롤로로 대변되는 911년 프랑크 왕국의 국왕 샤를 3세와 맺은 상호불가침조약인 생 클레흐 쉬흐 엪트 조약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롤로 이후 그의 아들인 긴 검을 찬 기욤(롱그 에페) 시대부터 바이킹들이 파괴한 기독교 문명을 재건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바이킹들은 프랑스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면서 그들이 부정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구원자로 여겼으며, 그들이 파괴한 수도원들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쥬미에쥬 수도원 역시 1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노르망디 공작들의 후한 배려와 후원에 힘입어 새로이 건설되기에 이르렀다. 노르망디 공국의 변방에 수도원들을 재건하고자 한 열정과 실천적 용기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11세기에 쥬미에쥬는 노르망디 공작령에서 가장 높은 종탑을 자랑하는 로마네스크 노트르담 성당 증축이 이루어졌다.
오로지 수사들만이 드나드는 안뜰 깊숙이 교회가 들어선 것은 9세기, 바이킹들의 침입이 있기 전의 일이다. 쥬미에쥬 수도원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바로 이 작은 교회에 해당하는 성 베드로 성당이다. 수도원 건물이 다 그렇지만, 수도원 안뜰에 폐허로 남은 성 베드로 성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쥬미에쥬가 기독교의 성소였음을 증거 해준다
이곳에 대성당이 들어선 것은 1040년에서 1066년에 걸친 시기였다. 대성당은 로베르 샹파흐 수도원장에 의해 착공되었으며, 1067년 7월 1일 노트르담 대성당 완공식에는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자 영국왕이었던 정복왕 기욤이 참석했다.
기욤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영국을 정복한 해는 1066년, 그 해 성탄절에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영국 국왕 대관식을 거행한 기욤은 윌리엄이란 이름으로 망슈 해협을 두고 양안에 걸친 두 왕국의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순간을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영국 국왕이 된 사생아 기욤은 영광의 정점에 섰다. 그는 기욤 휘츠 오스베흔과 자신의 이복형제인 오동에게 전하기를 새로운 왕국이 세워졌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3월에 노르망디에 갈 것이라는 전갈을 보냈다. 노르망디 전체가 축제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영웅을 맞을 준비에 노르망디인들은 사순절 행사까지도 중단했다. 1067년 4월 8일 부활절 축일 인파로 가득 찬 훼깡의 궁중에 정복왕 기욤 공작이 모습을 나타냈다. 궁정과 긴밀하고도 튼튼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수도원은 많은 재원을 지원받았다. 신께 감사드리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기욤은 중요하다시피 한 모든 재단에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할 것을 결심하고 세느 강 연안에 위치한 모든 수도원들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천명했다.”[1]
그 결과로 세워진 수도원 교회가 쥬미에쥬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이를 위하여 기욤은 막대한 재원을 아끼지 않았고 선조들이 파괴한 수도원 터에 노르망디 공국에서 제일 높은 종탑을 자랑하는 교회를 세웠다.
교회의 두 개의 종탑은 46미터에 달한다. 아랫부분은 사각형이지만 탑 꼭대기는 팔각형으로 마무리한 노련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축술은 노르망디 건축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함이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한 로마네스크의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쪽 파사드 정중앙 입구의 도드라지게 툭 튀어나온 건축양식 또한 노르망디 건축만이 지닌 특징이다.
툭 튀어나온 서쪽 파사드(정면 부분) 벽체 위쪽으로는 3개의 창이 일렬로 나있는데, 그 안쪽에 정복왕 기욤이 앉았음직한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다. 파괴되어 날아간 채광탑 역시 노르망디 건축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건축술이다.
제단으로 빛을 끌어들인 노르망디 인들만의 지혜라고나 할까? 그들은 제단 위쪽으로 채광탑을 올리고 탑신 맨 꼭대기에 구멍을 뚫어 자연광이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1] 『정복왕 기욤(Le conquérant Guillaum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