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 강변에서

몽생미셸 가는 길 8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쥬미에쥬를 향한 세느 강변길


이 특별하고도 고귀한 수도원 교회를 보려고 몇 날 며칠을 아파트 거실을 서성거리며 유리창에 쥬미에쥬 수도원 교회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파트 유리창너머로 바로 보이는 생 쉴피스 성당의 종탑까지도 쥬미에쥬 수도원 교회의 종탑처럼 보였다.


파리 생 쉴피스 성당의 두 개의 종탑은 네모난 탑신이 허공으로 쭉 뻗어 올라가 꼭대기 부분은 둥그런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쥬미에쥬 대성당의 종탑 같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 밤을 지새운 끝에 비로소 차 시동을 걸었다. 13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때늦은 점심을 들고 바로 루앙으로 향했다. 쥬미에쥬 마을은 명실상부한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였던 루앙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세느 강을 갈마들듯 이어진 길을 가야만 나타나는 곳이다.


이 길은 마치 퐁투아즈 마을에서 오베르 쉬흐 우아즈 마을로 이어진 강변도로와 흡사했다. 인상파의 그림 속 풍경 같은 세느 강변에 잠시 타고 온 차를 주차시켜 놓은 뒤, 달려온 길과 달려갈 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야 할 길은 아직 흐릿하기만 한데 지나온 길은 따사로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강변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세느 강을 바라보다가 달려온 길과 달려가야 할 길을 동시에 떠올려 보았다. 안개가 걷히면서 겨울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살은 물그림자로 가득했다.


이 따사로운 길을 정초에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2020년 새해벽두 그것도 정월 초이튿날 쥬미에쥬로 향한 세느 강변에 서있게 된 인생은 어떤 인생이란 말인가?


1991년 2월 10일 처음 파리에 발을 딛고 산지 어언 30년! 파리로부터 흘러온 강물이 굽이쳐 휘돌아 흐르는 쥬미에쥬에서 대체 인생의 기나긴 흐름은 언제쯤 바다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인생은 수정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한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대체 이 수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은 뭐란 말인가? 이제는 본래 생각하고 작정하고 나선 길을 걸어가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을 추스르는 나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이제야말로 나약한 존재를 일깨우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가? 길은 아름답게 펼쳐져있건만 운전대를 잡은 손은 자꾸만 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세느 강변에 부서지는 겨울햇살에 잠시 가야 할 길을 잊고 지나온 길을 떠올려보았다. 가야 할 길보다 지나온 길이 더 아름다운 까닭은 왜일까?


갑자기 길을 에둘러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고 올바른 길로 들어섰으면 목적지에 보다 빨리 이르렀을 것이다. 사잇길로 빠져 한참을 돌아온 탓에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세느 강이 반가웠을 따름이다.


이 길을 곧장 가면 쥬미에쥬가 나오리라는 확신, 강변의 눈부신 마을을 관통하자마자 세느는 다시 멀어지면서 쥬미에쥬 이정표는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도로 표지판을 무시하고 곧장 앞으로 뻗어나간 길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내비게이션과 씨름을 하던 중 깨달았다. 세느 강은 휘돌아 흐르고 강 연안 움푹 들어간 분지 같은 곳에 쥬미에쥬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 이리가도 되고 저리가도 결국 수도원에 이를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정표와의 숨바꼭질은 그러나 몇 분 간 더 이어졌다.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고 인기척마저 없었다. 경사진 언덕엔 마을 성당이, 그 앞 경사면에는 공동묘지가, 쥬미에쥬였다!


붉은 벽돌로 지은 우체국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팔각형 종탑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틀림없는 쥬미에쥬 수도원 교회 건물이었다.


반가움의 포만감에 어디 차 한 잔 할 곳이 없나 둘러보았으나 도로변 붉은 벽돌로 지은 카페나 식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주민 한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정적만이 감도는 마을, 한복판 목마른 사람처럼 폐 깊숙이 갈증을 일으키는 침 마른 상태에서 하는 수 없이 길을 건너뛰었다.


외관이 독특한 수도원 입구는 안내센터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입장권을 끊어야만 수도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수도원 안내서가 독특했다. 안내서에는 수도원 입구에 해당하는 현관은 14세기 때 지어진 것으로 우아한 고딕양식에 입각해 지어졌다고 적혀있었다.


입구 내부 천장은 네 개의 첨두형 교차궁륭을 하고 있으며 홍예 머릿돌은 식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고도 했다.


안내서에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니 다른 고딕양식 건축물들처럼 천장의 홍예 머릿돌 장식이 이파리문양 같기도 하고 식물의 줄기 같기도 하고 독특해 보였다.


현관에 인접한 건물은 유적안내사무소로 쓰이고 있는데, 원래는 마구간 건물이었다고 한다. 1853년 폐허유적을 매입한 르펠 꾸엥떼 가문이 건물 전체를 신 고딕 양식으로 개조하여 숙소로 사용했다고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