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트르에서의 단상

몽생미셸 가는 길 82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샤르트르 대성당 뒤뜰


파리로부터 80킬로미터 서쪽에 위치한 샤르트르(Chartres)는 프랑스의 아늑하면서도 성스러운 중세풍의 도시다. 대서양 연안에 살던 셀트(Celte : 영어식으로는 켈트라 발음한다)족의 수도였던 이곳이 중세 고딕의 출발점이 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탓에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자 작정하고 대성당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중, 어느 이름 모를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한 노인네가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색유리창을 올려다보다가 그만 성당 바닥에 쓰러져 넘어져 죽었다는, 그래서 바로 오늘 성당에서는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술 취한 사내의 주절거림을 등 뒤로 쏟아 들으면서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에서는 장례식이 한창이었다.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가 시작될 찰나, 찰나의 한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있다.


성당 서쪽 파사드(정면입구) 한가운데에는 구원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가 스테인드글라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성당 내부 돌을 깐 바닥에는 미로가 새겨져 있는데, 그 한가운데가 최후심판의 날에 우리가 다다를 천국의 정점이고 신자들은 일렬로 서서 그 미로를 걸어간다. 중심을 향해, 천국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가간다.


이 기막힌 상징은 이로써 끝나지 않는다. 색유리창이 있는 서쪽 파사드 벽을 쓰러트려 눕히면 정확히 미로의 원형과 둥근 색유리창이 겹쳐진다. 건축가는 그걸 의도했다. 그 정점이 천국이고 예수 그리스도다.


샤르트르 대성당 내부 신자석쪽에 새겨놓은 미로와 서쪽 파사드(정문에 해당) 색유리창.


그러나 지금의 샤르트르 대성당은 중앙회중석 돌바닥에 새겨진 미로를 신자들의 의자로 가려놓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미로는 보이지 않는다. 성당을 지을 때 만든 미로가 후세에 와서 의도적으로 가려진 것이다.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은 오직 교리에 충실한 종교적 도그마로 해석된다. 이 같은 대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는 그 크기에 비해 숫자는 초라하기만 하다.


대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성당들은 미사 때마다 신자들로 꽉 차고 넘쳐났을 것이다. 이제 성당은 믿음을 전파하는 곳이 아니라 역사유적이고 문화유산이다. 단지 그렇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세 때에는 교회는 살아있는 믿음의 실체였고 현장이었다. 성당 제단 뒤의 후진에 전시되고 있는 마리아가 눈가에 흐르는 피눈물을 닦았다는 손수건도 성유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대혁명 이후로 글을 읽지 못하는 신자들을 재밌게 이끌던 성령의 도구(수단)들은 사라졌다. 신부는 오직 교리에 입각한 미사집전에 골몰하고, 신자들은 성서적 교리를 추종하는 유식한 믿음의 시대로 진화했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색유리창과 미로는 이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일 따름이다.


대체 처음 성당을 지을 때의 그 고결하고도 순수한 믿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나 같은 신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념화된 종교, 교리로 무장한 믿음, 구원과는 거리가 먼 신앙이 21세기에 나 같은 신자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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