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0화
[대문 사진] 베켈루앵 수도원 니콜라 종탑
수도사의 저녁 들판이 어둠에 파묻혀가고 있다. 정월 초이틀의 어둠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푸르다. 예수가 태어난 때도 저러했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는 없다. 그러나 예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잡고 있다. 12월 25일 성탄절은 동지 전후, 그러니까 그동안 자꾸 길어만 가던 밤이 짧아지면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다. 말하자면 ‘빛이 부활하는 날’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니콜라 종탑이 어두운 밤하늘아래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어둡고 암울한 세상을 비춰주는 등대이길 꿈꿨던 탓일까? 종탑은 어두워져만 가는 밤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밝은 낮에 보던 종탑과는 또다른 빛이다. 마치 세상을 구원하려는,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빛의 솟구침처럼 종탑은 불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종탑을 밝히고 있는 조명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자연광과는 달리 인간의 의지로 밝힌 불빛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교회 구석마다 타오르는 양초처럼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밝히는 불꽃과도 같다. 그 불꽃은 하늘을 향해 있다. 하늘의 구세주에게 간구의 빛으로 타오른다. 이 기도에 하늘은 밝은 대낮의 색유리창에 햇빛을 퍼부어 그 영롱하고도 찬란한 색조로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빛과 어둠은 기독교의 오래된 상징이다. 그런데 벡 엘루앵 수도원 종탑이 왜 성 니콜라였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니콜라는 니콜라우스를 가리킨다. 서기 270년에 태어나 343년에 임종한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성직자로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인물이다.
라틴어로 성 니콜라우스를 뜻하는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를 네덜란드 어로는 산테클라스라 불렀는데, 이 발음이 영어식으로 변형되어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니콜라우스는 서기 270년 소아시아의 리키아 지방의 파타라에서 태어났다.
매우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자신에게 막대한 유산이 주어지자 그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하였다.
그의 행적 가운데 가난한 집안의 세 딸에게 지참금을 준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너무 가난하여 딸들을 시집보낼 수 없게 되자 이 세 딸을 사창가에 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연히 소식을 접한 니콜라우스는 가난한 집안의 여식들을 돕고자 했으나 워낙 겸손했던 이유로 대놓고 도와주지 못하다가 밤 이슥한 무렵 남몰래 창문으로 딸들이 출가하기에 넉넉할 만큼의 황금이 들어있는 자루 세 개를 던져 놓고 돌아갔다. 덕분에 세 딸은 사창가로 팔려나갈 위기를 모면하고 당당히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설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니콜라우스의 축일에 아무도 모르게 선물을 주는 관습으로 발전하였다.
343년 니콜라우스가 죽자 그의 명성은 곧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으며, 1087년에는 그의 유해가 이탈리아의 바리로 이전되어 교회가 세워졌다. 이후 니콜라우스 대성당에서는 무수히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1]
천 년 전에 에흘루앵이 창건한 베켈루앵은 명상과 묵상의 마을답게 수도원이 자리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적막감만이 감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에 관광지 등급을 매긴 꽃 두 송이가 그려져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만, 이 종교적 성지마저도 관광지화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마을의 상징은 그렇듯 니꼴라 종탑과 수도원 교회다. 짝짝이 탑 2개가 서있는 수도원 입구부터 종탑을 거쳐 수도원 교회에 이르기까지 정결하고 엄숙하기만 하다.
[1]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세워진 대한성공회 주교좌대성당 역시 성 니콜라우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정교회 성 니콜라우스 대성당 또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