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몽생미셸 가는 길 9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상(聖像)


중앙회중석을 돌아나와 성당의 입구이자 출구 쪽으로 다시 걸어 나오니 유리창 앞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다소곳이 서있다. 그러고 보니 베켈루앵의 수도원 교회도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교회다.


프랑스뿐 아니라 서구의 모든 교회는 초기에는 성 베드로 성당이었다. 성 베드로는 열 두 사도 가운데 으뜸이었던 예수의 제자이긴 하지만 갈릴리 호숫가 어부였던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된 것은 예수를 만나고서부터였다.


베드로는 예수 살아생전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한 인물에 불과했지만 예수가 설파한 믿음을 죽음을 무릅쓰고 로마 제국의 심장에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한 성인이다. 그가 순교당하고 묻힌 자리에 교회가 세워지고 이를 성 베드로 성당이라 이름 하였다. 그는 초대 교황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가 순교한 뒤 묻힌 곳에 세워진 성 베드로 성당은 교황들이 대대로 거주하면서 믿음을 전파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성지중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바티칸은 성 베드로 성당과 관련이 깊다. 성 베드로는 육화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신저로 구현된다. 베드로는 ‘돌’을 뜻하는 단어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의 반석으로 통한다. 한 마디로 부성(父聖), 즉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강조한 교회가 성 베드로 성당인 것이다.


이런 반면 성모 마리아는 불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이요, 영어로는 아워 레이디(Our lady) 또는 마돈나(Madonna) 역시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다. 나를 나아준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나를 영적으로 거듭나게 해 줄 어머니가 노트르담이다. 이는 모성(母聖), 다시 말해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2세기, 13세기에 파리 인근의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파리 주교좌 성당은 노트르담 대성당이며 프랑스의 영적 도시에 해당하는 샤르트르 대성당 역시 노트르담이다. 루앙, 아미앵, 랭스, 상스 심지어는 쥬미에쥬, 베켈루앵의 수도원 교회도 노트르담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를 낳아준 분이 어찌 아버지 한 분일 수 있으며 어머니 한 분뿐이겠는가?


미국의 비교 종교학자이면서 비교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의 말을 빌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륜적인 바탕 위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명상이 길어 올린 참뜻이기도 하다.


기독교와 성리학의 바탕은 이처럼 일치한다. 하물며 불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대체 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공존할 수 없을까? 다른 종교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있다고?”[1]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수사 안젤리코가 그린 「천상모후의 관을 쓰고 계신 성모 마리아」 그림말고도 이 피렌체의 수사가 그린 또 한 점의 그림 <수도원 벽화>는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다룬 무염시태(無染始胎)다.


무염시태란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를 가리킨다.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몸이 곧 잉태하리로다. 누구를? 거룩하신 분을! 석가모니도 어머니 옆구리 차크라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차크라라 하는 것은 가슴과 관련된 상징적 중심이다. 원이요 영역이란 뜻이다.”[2]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이시스 여신은 남신 오시리스의 시신이 담긴 관을 통하여 나일 강의 파피루스 숲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는다.


다시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로 돌아가면, 예수 살아생전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4대 복음서 가운데 무염시태를 언급한 복음서는 오작 「루가복음」뿐이다. 루가는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 전통에는 처녀수태 이미지나 신화나 전설이 흘러넘친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신화가 그리스 신화의 모티프가 되고 다시 히브리의 성서에까지 등장하게 된 이유는 뭘까? 예수의 사후인 서기 431년에 소집된 에페소스 공의회가 천명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 공표한 사실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히브리의 구세주 관념과 그리스의 구세주 관념이 흘러들어와 한 몸을 이룬다.


영적인 권능과 세속적인 권능의 통합을 상징하는, 가부장제적이고 유일신적인 히브리의 구세주 관념과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하는 어머니 가운데 으뜸인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그리스의 고전적인 관념이 만나는 그리스는 당시 부활하는 구세주 모티프가 가장 번성했던 곳이다.[3]


처녀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물학적으로 아메바는 분열을 통해 생식을 하지만 종교적 상황을 생물학적으로 그리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이 불확실성의 세계를 확실하고도 안전하게 동시에 모두가 참된, 복된 삶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어떤 이론적 해결방법을 제시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세상은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다.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한 태양의 사라짐과 같은 어둠 속을 21세기 인류 역시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했다거나 이집트 여신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관에서 뽑아낸 들보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거나 석가모니가 어머니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리아는 분명 요셉을 남편으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갓난아기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님 안에서는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육화한 말씀이기도 하다. 성서는, 이후의 모든 시대의 성자들은 우리에게 육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



모성(母聖)이란 무엇인가?



“어머니는 모든 자식을 고루 사랑합니다. 멍청한 자식도 사랑하고, 똑똑한 자식도 사랑하고, 말썽꾸러기도 사랑하고, 착한 자식도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에 자식의 성격 같은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그래서 여성 원리는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아닌, 포괄적인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엄격합니다.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질서나 사회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실제로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속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기능하지요. 어머니가 자식에게 본성을 부여한다면, 아버지는 자식에게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따라서 근본으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곧 어머니 원리로 돌아가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언제 또 가부장의 원리로 되돌아갈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의 모든 조직은 거대 규모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자체가 남성의 기능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차 어떤 경향이 나타날지를 예견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그 근본, 혹은 자연은 언제 돌아와도 돌아옵니다.”[4]


로마 가톨릭 미사통상문에 따른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하시며…….”라고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왜 노트르담인가?


동양에는 음양사상이 있다. 원 안에 검은 물고기 비슷한 형상과 흰 물고기 비슷한 형상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런데 검은 물고기 비슷한 형상을 자세히 보면 정 가운데 흰 점이 하나 있다. 물론 흰 물고기 비슷한 형상에도 검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 두 점이 있기 때문에 음양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에서 보면 모성을 희생시킨 초기의 기독교 전통에서 성모마리아(성처녀)와 함께 로마 가톨릭은 다시 모성을 획득함으로써 완벽한 조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조화가 이루어진 곳이 프랑스에서였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동양까지 아우르는 여신(女神)의 전통이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프랑스 성당에서만큼은 화려하고도 아름답게 꽃 피웠다는 사실은 노트르담(성모 마리아)이 표상하고 있는 모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반증하는 훌륭한 예라 할 것이다.


하물며 베켈루앵의 신학과 철학의 그 오묘한 조화는 인간세계에 대한 이성적이고도 명확한 영성의 기초가 되지 않았던가? 지혜의 성녀 소피아로부터 빈겐의 힐데가르드[5]에 이르기까지, 아니 노르망디 공국의 진정한 어머니이기를 자처했던 알리에노흐 다끼땐느에 이르기까지 중세 기독교 전통은 바로 그렇듯 ‘교회로 들어감으로써, 그리고 교회를 나섬으로써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6]




[1]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집, 『신화의 힘』에서.


[2] 조셉 캠벨, 같은 책.


[3] 위의 책.


[4] 위의 책.


[5] 중세 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의 근거를 확립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에게 영향을 끼친 수녀로서 나중에 성녀가 되었다.


[6] 서울의 명동성당 역시 성모 마리아(노트르담)께 봉헌된 교회다. 한국의 천주교는 예수회 소속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3명의 신부들로부터 전래되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명동 천주교회 역시 성모 마리아께 봉헌했으리라 짐작된다.